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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Mar 19. 2022

길 잃은 인생 ‘강제 멈춤’, 그 후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나아지기 시작했나?

<커버 이미지-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 서있는 이정표>

어느 날 새벽, 매일 출근길 버스를 갈아타던 곳에서 찍었다. 사방으로 다른 곳을 가리키며 뻗어있는 푯말이 꼭 길을 잃은 내 마음 같다.





몸과 마음의 병-갑자기 시작된 인생 하프타임


동생이 나로부터 회사 노트북을 빼앗아(!) 간 날, 컴퓨터 전원이 종료됨과 동시에 나의 17년 넘는 직장인 인생도 일단 ‘강제 멈춤' 되었다. 그렇게 셧다운 된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다시 회사 노트북을 켜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여름 정신건강의학과 첫 방문 후 2주간의 입원 대기, 또 2주간의 입원 그리고 현재까지 치료는 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약은 입원기간 동안 조절하며 처방받은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고혈압은 일시적인 증상이 아닌 지병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매일 아침 약을 먹는다. 마음건강 회복을 위해서는 아침에 항우울제 한 알, 취침 전에 비슷한 류의 다른 약을 세 알 먹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항우울제의 효능은 ‘신경전달물질 조절제로 우울증, 식욕 과항진증, 강박증, 월경전 불쾌장애 등 다양한 질환에 사용함’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들의 복약안내문에는 하나같이 동일한 문구가 경고하듯 다음과 같이 반복된다.


의사의 지시 없이 갑자기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약효 발현까지 수일에서 수주 이상 소요될 수 있으며,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증상이 좋아지더라도 처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복용합니다.


임상심리사 선생님과 교수님이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던 내용이다. 알고 보니 환자들 중에는 좀 나아진 것 같다고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끊음으로써, 체내 약물 효과에 대한 절벽현상이나 금단현상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병원 진료는 퇴원 직후 매주, 서너 달이 지나면서는 2주에 한 번으로 또 그다음엔 한 달에 한 번으로, 내가 나아지는 만큼 정기 진료일 간격도 점차 벌어졌다.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심장내과 교수님께 묻는다.


매일 먹는  고혈압 약을 언제 그만 먹게 될까요?”


교수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답을 하신다.


“고혈압인걸 알기 전 꾸준한 운동에 식이도 바른생활 하셨고, 비만도 아니고 흡연이나 과음도 안 하시던 분인데… 다른 생활습관에서 개선할 것이 없이 약을 드시면서도 혈압이 130 이상이 지속된다. - 이 상태면 약을 그만 드시라고 말씀 못 드립니다. 계속 드셔야 해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나의 같은 질문에, 역시 지금은 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대답을 듣는다.


“J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볼 수 없기도 하고, 현재는 스트레스 원인인 그 사람과 장소로부터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는지 알 수 없어요. 우선 그 상황에 다시 복귀했을 때 마음이 어떨지 실제로 보기 전 까지는 약 복용을 계속하는 게 좋겠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니다, 라는 설명으로 들려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살지


치료를 시작하며 곧바로 좋아졌던 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큰 문제였던 잠을 자는 것이었다. 한숨도 못 들던 잠을 좀 자게 되면서, 먹는 것도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이 맨 처음 진료실에서 “다 필요 없고 우선 먹고, 자고부터 해야 돼요!”라고 말씀하셨던 대로, 가장 시급했던 두 가지가 한 달 내에 상당히 많이 해결되었다.


하지만 밤에 취침 약을 먹고 누워 나도 모르는 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이 떠졌을 때 떠오르는 첫 생각은,


'  날이 밝았고, 나는 살아있네.

 막막한 마음으로 어떻게 다시 하루를  살지?'


이같이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보다, 암흑 속 같은 답답함과 절망감이 더 많이 들었다.

그렇게 한치도 달라지지 않는 ‘깜깜한 마음’은 꼬박 두 달 넘게 지속되었다. 그때는 혼자서도 그리고 또 애꿎은 엄마나 동생을 붙들고,


 어떻게어떻게 살지...?"


이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며,


"사람 다 살게 되어있어. 걱정하지 말어. 지금은 네가 마음이 많이 아파, 아파서 그런 거야. 시간이 가면 점점 좋아져. 걱정 마!”


라고 말씀하시며 어린아이 달래듯 보듬어 주셨다.

엄마는 매일매일 나를 데리고 나가 함께 산책을 시키셨다. 어느 날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으로 데려가서 간식이며 반찬이며 이것저것 먹어보고 장을 봤다. 이거고 저거고 별로 생각 없다고 하는 나를 맛집으로 끌고 가시기도 했다. 활기가 넘치는 시장에서 만나는 인생들은 모두 나와는 달리 생생하게 펄떡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땐, 나만 빼고 세상은 모두 열심히 돌아가고 있구나 싶어 이상한 괴리감과 이질감이 들었다.


동생은 자주 집에 들르면서도 또 매일 아침저녁 전화와 문자로 컨디션은 어떠냐고 물었다.

‘회사원이 회사를 안 가고 이렇게 자빠져(!) 있으니 패배감이 든다고, 실패자가 된 것만 같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동생도 엄마랑 똑같이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누나, 평생 조직생활 한 번을 안 해보고, 개인사업자로 늘 외줄 타기 하듯 사는 나도 있잖아. 이런 나도 사는데, 누나가 왜 못 살아. 그리고 직장이라는 건, 회사도 나도 언제나 서로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회사를 안 다니면 패배자고, 실패자야? 회사가 인생의 전부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회사 다니면서 사는 거 아니잖아. 누나 진짜 17년이 넘게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쉼 없이 달려왔어. 지금 그냥 잠시 휴식이라고 생각해. 푹 쉬는 휴가 받았다 치고, 마음을 편히 먹어.”



병원 치료와 함께 지치지 않는 우리 가족들 사랑의 ‘햇볕 정책’이 서서히 나의 어둠을 거두고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도 녹여 내리기 시작했다.

‘강제 멈춤’ 후 딱 세 달여가 지난 시점이 되면서부터 였다.


혼자서도 산책을 나가 한 시간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메아리 없이 내 이름을 부르던 절친한 친구들에게 밀린 대답을 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지 않던 TV를 보고, 책과 신문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한동안 하나도 듣지 않았었는데, 다시 음악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스스로 다시 찾기 시작했다.

터널 한가운데 매몰된 것 같던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였고, 원래의 내 자리를 되찾기 시작한 희망의 신호들이었다.


그즈음부터 나의 자문-질문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못 살겠는데) 어떻게, 나 (도대체) 어떻게 살지?!’


에서,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어떻게  (잘) 살지?


로.

표면적으로는 똑같은 말이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 반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병가중인 직장인


누군가 인생은 전력질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했던 것처럼, 살다가 넘어졌을 때 그리고 몸과 마음이 상했을 때에도 그 회복을 조급해하면 안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입원 당시 매일 면담을 하던 전공의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J님, 우리는 누구나 살다가 어디든 다치고 아플 수 있잖아요. 그럼 모두 내려놓고 쉴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절대로 치료를 서두르고 조급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그의 말이 맞았다. 치료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상당히 긴 치료를 요하는 진단이 내려졌고, 진단서는 회사에도 전달되었다.


오리발과 모르쇠로 일관하던 회사는 산재 승인 결과로 인해서였는지 태도를 바꾸었다. 그래서 일단 나에게 회사 컴퓨터가 셧다운 된 날로부터 1년의 유급병가를 주기로 결정했다. 나의 일에 회사가 책임을 느끼고 취한 조치로 보인다.





경로이탈과 재탐색


여전히 나는 아직 모르겠다. 저 사방으로 펼쳐진 이정표의 어느 길을 택해서 가야 할지. 여전히 고민한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렇게 다시 고민하고, 글을 쓰고, 일상을 회복해 가는 만큼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나는 십수 년간 달리던 한 길로부터,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신세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경로를 재탐색하는 중입니다.”


하고, 다시금 방향을 잡아가려 하고 있다.




나는 결국 어디로 향해 가게 될까?





*어느 누구라도 넘어지고 깨졌다면, 벌떡 일어나려 하지 말길. 몸이건 마음이건 다치고 아프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치료해 나가길.

길을 잃어 헤매고 있다면 잠시 그 자리에 멈춰 둘러보며 또 다음 갈 길을 찾자. 그럼 된다.

그대여, 아무 걱정 말자.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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