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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27. 2022

‘스텐수저 부잣집 딸’ (정신)질병 산업재해자

마음을 다쳐도 산재가 되나요?  

<커버 이미지-가족이 직접 찍은 서울 내 한 근로복지공단 건물 사진>

17년 넘게 근로자로 살았는데 근로복지공단 이라는 곳이 어디에 왜 있는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사람은 정말 내게 닥친 일 외에는 무관심하고 무지하기가 십상이다. 마흔 중반에도 아예 모르는 것들이 그리 많으니, 지금이라도 세상의 더 많은 것에 눈을 돌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재해;
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 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출처; 두산백과-요약)


 




산업재해를 신청하다


십수 년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사무직인 나는 스스로 ‘산업재해’와 관계가 있는 근로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매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회사에서 진행하는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그다지 피부로 와닿는 내용은 아니었다.


‘산재’는 그저 직장인들이 가끔 회사일로 너무 힘들 때 농담처럼 “아, 이거 정말 산재 아냐, 산재?!” 하는 소리나, 혹은 뉴스에나 나오는 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랬으니 내가 '산업재해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정신적인 피해’로 인한 것이라고는 더더욱.



나는 다른 개인적인 이유 없이 오롯이 회사 내에서의 사건이 발단이 되어 병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산재 신청을 할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산재는커녕, 잠을 못 잔 지 세 달이 넘어가자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가족들에게 헛소리에 가까운 말을 했다.


, 제발 그냥 조용히 퇴사만   있으면 좋겠어. 내가 회사에 피해를 입혀서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 걸면 어떡해!”


가족들이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에는 그런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가스 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을 심하게 당한 사람 같아 보였다고 했다.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겠으니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간 거다. 그리고, 무단결근이 아닌 병가 처리를 하기 위해 동생이 직접 회사 인사부를 찾아갔다. 그와 동시에 그는 누나가 그렇게 된 이유와 책임을 회사에 물어볼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물론 나는 생각 근처에도 못 미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이 몇 달 동안 잠 한숨을 못 자고 그 지경이 되었는지, 나한테 먼저 심문했다. 나는 세 달 전에 팀장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최근 2-3년 동안 회사가 돌아가는 모양새와 최근까지 내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새 팀장과 문제의 첫 미팅이 충격적이었어서, 두 번째 미팅은 녹음을 했다고도 일렀다.


안타까운 마음의 식구들은 반문했다.

십 수년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도 주말도 없이 출장을 다니며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그 회사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게 말이 되느냐고. 원래 업무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일을 막 시킨 것은 또 무엇이냐고.

그에 나는,


원래 월급쟁이란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그냥 닥치고(!) 해야 하는 것이 맞아. 회사 계속 다니려면.”


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한 거라 여긴 일들을, 지켜보고 전해 들은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병가 신청을 하러 처음 회사를 다녀온 후 내부 처리를 위한 다음 절차를 논의하자는 이유로 회사는 동생에게 다시 만남을 요청했다.


그 자리에 인사부 헤드와 팀장이 함께 나왔다.

그들은 먼저 이야기에 선수를 쳤다.

 

"J님 집에 무슨 일이 있으신 거예요? 한동안 살도 너무 빠지고, 말수도 없어지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있으실 줄로 생각했는데. 몸 상태가 얼마나 안 좋으신 건지…”


회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기에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식이였다. 이에 동생은 회사와 팀장이 더욱 괘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까지 오리발을 내미는지, 조금 더 대화를 이어나갔다.


곧 그들은 ‘J님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지만…’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ERP(Early Retirement Program; 조기퇴직 프로그램)를 고려해 보실 수도 있다는 말을 흘렸다. 아픈 사람은 ERP 대상이 아니지만 ‘특별히’ 본사 승인을 받아볼 수도 있다고, 선심 쓰는 듯한 말도 덧붙였다.


도저히 더 못 들어주겠다 싶어 결국 동생이 터뜨렸다.


"누나는 회사를 그만  의사가 없고, 컨디션 회복하면  복귀할 겁니다.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퇴직 여부를 논의할 수는 없을  같고요.

그런데, 십수  자기 맡은 업무가 있는 사람이 갑자기  그런 생뚱맞은 다른 부서 일을 하게  건가요? 그것도 성과 없이 중도하차하고. 그리고,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하면서 회사 생활한 직원에게 ‘부잣집 딸이 왔다 갔다 하듯이 회사를 다닌다' 그런 말은 무엇인지요?”


인사부 헤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팀장 역시 당황했다. 하지만 팀장은 곧바로 맞받아 쳤다.


"저는 절대 우리 직원들 그 누구한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녹취록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으니 당연히 모르쇠가 답이었겠다. 게다가 자기와 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룹장이나 인사부 헤드에게 상세히 공유했을 리 없을 터였으니까.


그런 반응과 태도에 속으로 더 화가 나기 시작한 동생은 바로 폭탄선언을 했다.


"저희 산재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회사에 책임을 묻기로 작정을 했나 보았다.


다 지나고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내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혹시 다시 원래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고 했다. 때문에 반드시 산재 진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단다.

내가 입원한 후부터 이미 동생은 지체 없이 행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담당 교수님과 의논을 하고, 직장 내 상사의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밝혀진 것에 대해 진단서를 받았다. 그리고, 공단에 제출해야 할 의료진 작성 서류와 치료 계획서 역시 작성해 주십사 부탁했다. 산재 진행으로 인해 어쩌면 앞으로 더 번거롭고 귀찮을 일이 많을 텐데도, 교수님은 충분히 공감하시고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내 복이었다.


퇴원 후 집에 돌아오자 동생은 내게 산재신청서를 내밀었다. 마음이 조금 힘들더라도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사실대로 작성을 해 보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리고, 안절부절 망설이는 나에게 녹음 파일을 빼앗듯이 가져가 공증문서로 만들었다. 그것을 증거로 산재 신청서류들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산업재해 판정위원회


대부분의 행정적인 절차가 아주 빠르고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역시 몇 달 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여름 끝에서 계절이 두 번 지나고, 12월에 막 들어선 무렵 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근로복지공단]
***고객님(사건번호 2021-xxxxxxx)께서 요양급여 신청하신 질병은 '21.12.16(목요일) 14:00 서울판정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입니다. 지사에서 조사한 내용 외에 추가 또는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위원회에 참석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코로나19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하여 가능한 동영상, 서면 등으로 의견 제출을 부탁드리며, 반드시 참석 진술이 필요하신 경우에는 위원회와 사전협의 후 요청사항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 홈페이지…
.
.


반드시 참석 진술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건, 회사 측이 공단에 제출한 답변서 내용을 알게 되고서였다.

회사가 당연히 부인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그래도 다시 뒤통수를 한대 더 후려 맞은 듯이, 아팠다.


이렇게 시작을 한 이상, 그리고 처음부터 서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긋기 시작한 이상 반드시 사실 관계를 밝혀야 했다. 정말 내게 아무 일도 없었고 모든 직원들이 다 같은 입장인데, 혼자만 유별나게 반응을 해서 산재까지 신청을 한 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내야 했다.


사내 변호사가 있고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회사를 파트너사로 가지고 있는 우리 회사를 상대로, 개인인 내가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판은 벌어졌다.



판정위원회가 열리는 날 나는 근로자 인생 17여 년 처음으로 ‘근로복지공단’이라는 곳에 가보게 되었다. 긴장하는 나를 위해 엄마와 동생이 동행했다.


공단 직원분이 나를 “(정신)질병 산재판정위원회"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회의실로 안내했다.

 

내가 앉을자리 정면 끝에 위원장으로 보이는 분이 계셨고, 양쪽으로 서너 명씩의 위원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계셨다. 이런 산재 판정위원회는 전문의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다고 들었던 생각이 났다.

실제로 법정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위원장은 개회를 하시고는 바로 내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라고 마이크를 넘겨 이야기할 기회를 주셨다.


나는 신청서에 썼던 내용을 상기하며 담담하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진술했다. 그러지 않으려 애를 써도 심장이 떨리는 만큼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병가가 5개월 여로 접어들었고, 한창 스스로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정말 아프지 않은 것 같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들어가 있었던 일을 다시 꺼내어 마주하니,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았다.

, 이거  나은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떨려서 조금 힘들었을 뿐, 그냥 있었던 사실들과 겪고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싶어, 후회나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


이제 나나 가족들이 아무리 억울해도 판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니, 그냥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그 해가 다 저물기 며칠 전 드디어 공단에서 결과 통보 문자가 왔다.


[근로복지공단]
***님의 요양신청서 승인
....
사용자는 산재근로자가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2항) 산재근로자의 원직장 복귀 등 지원 요건을 갖춘 사업주께 대체인력 지원금, 직장복귀지원금을 지원합니다.  


<공단에서 보낸 요양 승인 통지서 >


이렇게 판정위원회는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하마터면 아무런 사건도 이유도 없이, 저 혼자서 나자빠진 이상한 근로자가 될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일단은 회사에 과실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 공식화된 상황이 되었다.

이 결과를 역시 통보받았을 회사는 이제 어떤 입장을 취할까?



산재 승인이 난 후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입원, 치료 비용은 모두 산재보험으로 처리가 되었다. 병원 안에 산재 전담 담당자가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단이 요하는 부분들 중 가능한 것은 병원에서 바로 처리해 주었다.

나를 도와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불현듯 산재판정위원회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십여 년 전 가정법원 이혼 법정이 떠올랐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난생처음 겪는 일들은 매한가지로 긴장되고 떨렸다.


그날도 동생은 나를 차에 태우고 법원에 데려가 내내 기다려주었다. 그리고는 오후에 출근해야 하는 누이를 사무실에 데려다준다고 가는 길에 유명한 설렁탕 집에 들렀다.


"누나, 잘 먹어야 잘 이겨낼 수 있는 거야!"    

 

그 한 마디 하고는 뚝배기에 밥 한 그릇을 가득 말아줬다. 나는 그런 동생의 따뜻한 마음을 남김없이 퍼 먹었었다. 든든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헤어지는 것조차 그냥 못 하고 소송으로 진을 빼며 고생하는 딸 곁에 누워 잠 못 이루는 밤을 함께 지새웠다.

그때 어둠 속에 누워 엄마가 하신 말씀은 내 뇌리와 가슴에 깊이 박혀, 살면서 힘들 때마다 생각이 나곤 한다.



딸내미야, 넘어지는 것을 창피해 마라.
다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창피해해야 한다.



언제나 가족이 있어 살았고, 가족으로 살고 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족은 제일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인생길에서 태산같이 높은 오르막을 만나 그저 막막하기만 할 때도,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위태로이 서서 아찔할 때도,

가족은 언제나 내게 손을 뻗어 나를 밀어주고 또 끌어주었다.

  

나는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스텐수저’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정말 ‘부잣집 딸’이 맞았다.

분명 난 가족들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사랑 부잣집’ 딸내미이다.




*그대여, 넘어지는 게 창피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넘어져도 괜찮다.

혹시 넘어지면, 창피해하지 말고 그저 다시 잘 일어나면 된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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