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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24. 2022

국제질병분류기호F34.2 적응장애 F32 우울 에피소드

정말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커버 이미지-몇 년 전 전시회에서 직접 찍은 그림 액자. Roy Lichtenstein(로이 리히텐슈타인)의 1963년 작품. 제목 ‘Crying Girl’(우는 여인)>

표정으로 보아 분명 기뻐서 우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여인은 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웃을 일만 있는 삶이면 좋겠지만 어느 인생이나 눈물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아프게 되면서, 웃는만큼 눈물도 흘리는 것이 ‘잘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 질병분류기호 F34.2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
정의;
경제적 어려움, 신체 질환, 또는 대인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 후에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적 증상이나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 적응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증상은 보통 스트레스 후 3개월 이내에 발생하며, 스트레스가 사라진 후 6개월 이내에 증상도 소실된다. 유병률은 일반 인구의 2~8%로 추정되며,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더 많지만, 소아·청소년의 남녀 유병률은 같다. 전 연령 대에서 발생 가능하지만, 청소년에게서 가장 흔히 진단되고, 독신 여성이 가장 적응장애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소년은 학교 문제, 부모와의 갈등, 부모의 이혼, 물질 남용 등이 흔한 스트레스 요인이며, 성인은 결혼 문제, 이혼, 이사, 경제적 곤란 등이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다. 적응장애는 신체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정신과 질환으로, 한 연구에서는 병원 입원 환자의 5%가 적응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특정 신체 질환이나 스트레스를 가진 사람의 절반 정도까지, 정신과 외래 환자의 10~30%, 정신과 자문이 의뢰된 종합병원 입원 환자의 12%에서 적응장애 진단이 가능하였다.
(출처;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중에서)

F32 우울 에피소드(depressive episode)
F32 전형적인 경도, 중등도, 중증 우울병 에피소드에서 환자는 기분의 저하, 정력 감퇴, 활동력 감소를 받게 된다. 흥미, 즐거움이 감소하고 집중장애와 최소한의 노력에도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며 식욕이 없고 자부심이나 자신감이 결여되고 죄책감이나 가치 없음도 느낄 수 있다. 기분저하의 정도는 매일 다르며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흥미나 즐거운 감정의 소실, 평소보다 몇 시간 먼저 일어나기 등의 소위 “신체적” 증상이 동반된다. 우울병은 아침에 더 심하고 뚜렷한 정신운동 지연, 안절부절, 식욕 소실, 체중감소, 성욕감퇴가 동반될 수 있다. 위와 같은 증상의 심도와 수에 따라 우울병의 에피소드는 경도, 중등도, 중증으로 나뉜다.
(출처; 한국 표준질병. 사인분류 제1권 중에서)





고장난 몸과 마음 그리고 치료


입원 후 내 이름 아래 병원 의무기록지에 공식적으로 세 개의 병명이 기록되었다.


심장내과 협진 고혈압.

극심한 불면 동반 적응장애, 우울 에피소드.


언제나 건강으로 둘째가라면 서운했던 나는, 어느새 몸과 마음 둘 다 아픈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탄스러웠다.


매일 회진을 오시는 담당 교수님은 내게 밤잠은 잘 잤는지, 오늘은 기분이 어떤지,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잠을 좀 더 자고 밥도 더 먹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게 된 기분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교수님 외에 전공의 선생님이 또 한 분 있었다. 나보다 한참 동생뻘일 앳된 모습의 그도 역시 매일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약을 두세 번 바꾸어 보는 동안 ‘신세대 쌤’ 답게 최신 폴더폰을 펼쳐 보여주며 처방된 약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또한 머리가 다 담지 못할 넘치는 생각들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도대체 이런 암흑 속에 있는 듯한 마음이 정말 나아는 지는 건지, 그렇다면 언제나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마도, ‘정확한 때는 며느리도 의사도, 그 아무도 모른다.’라는 게 서로가 암묵적으로 아는 답변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원들과 그 분야 전문 의료진이 있다는 건 마음의 병도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상태일 때는 전문가에게 손길을 청해야 한다.


나를 비롯한 다른 입원 환자들을 보면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기간은 ‘최소 2주’부터 잡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2주 이상, 많게는 수개월 째 병원 생활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데엔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어려움에 빠진 환자들은 단지 기분만 터널 안에 갇힌 듯한 게 아니라 실제로 ‘터널 시야(tunnel vision)’를 갖게 된다고 한다. 즉, 터널 안에서 운전을 할 때 저 멀리 점 같은 출구만 보이고, 주변은 온통 어두워 아무것도 보지 못 하는 것처럼. 마음이 오로지 괴로움에만 집중된 상태로써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여, 다른 상황에 대한 인지력이나 파악 능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들은 치료 중인 사람들이 무엇이든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을 극구 만류한다. 나의 경우, 회사를 복직할지 그만둘지 등에 대한 생각은 지금은 아예 그냥 하지도 말고 접어두라는 조언이 내려왔다. 지금, 여기만 생각하고 어떤 생각이든 10분 이상 이어지면 일부러 다른 일을 하면서라도 끊어낼 것, 을 주문받았다.


한편 이미 통제력을 벗어난 마음건강 상태를 다루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는, 단지 심리적인 것만이 아닌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이해와 처치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즉, 뇌와 우리 몸속 화학물질들 사이의 작용에 기능적인 오류가 생긴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오류가 당장 스스로 자연 수정/회복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면 ‘인위적인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조절을 돕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약물이다. 혈압에 문제가 생기면 혈압약을 먹고,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 약으로 혈당 조절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 호르몬 분비에 균형이 깨졌다면 맞춰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체의 신경전달물질 중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사람의 ‘감정’ 문제에 있어 빠짐없이 등장하는 친구들이다. 아래의 그림처럼 이들은 우리의 뇌에 분비되면서 각각 여러 가지 기능에 관여한다.


세로토닌 신경계(빨간색) 도파민 신경계(파란색) *출처: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인간이 ‘잘 살기(well-being)’ 와 ‘행복감’ 등을 느끼는 데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은 사실상 우리의 기분(mood), 기억 처리과정(memory processing), 잠(sleep), 인지(cognition) 등의 기능에 관여한다.


한편 ‘도파민’은 동기부여-보상(motivation-reward), 기쁨-희열(pleasure-euphoria), 운동 기능(motor function), 충동(compulsion), (말, 몸짓, 행위의) 고집-반복(perseveration)등을 조절한다.


불면과 우울에 장악된 사람의 뇌는 결국 이러한 신경전달 물질들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지 않은 상태에 빠진 것이라 보고, 약물을 통해 조절을 하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약물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일에서 수개월까지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나 입원은 2주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약물도 경구용부터 주사에 이르기까지 수백 종류가 있기 때문에, 각 사람마다 더 잘 맞고 효과가 있는 약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스스로 체감하기에 전혀 개선된 것이 없는 마음 상태였음에도 나는 그 ‘최소 권장기간’인 2주 만을 채우고 퇴원 결정이 내려졌다. 아직까지도 나는 ‘도대체 뭐가 나아진 건가?!’ 싶은 생각에 매몰되어 있을 때였다.



하지만 퇴원  하루  하루시간이 쌓여가며, 신기하게도 조금씩  많은 빛이 드는 출구로 향하고 있음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신생아가 태어나 눈을 뜨고, 희미하게 보던 것을 점점  선명하게 보게 되는 것처럼.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어느새 앉고-기고-서고-한걸음  한걸음 떼고 걷기 시작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나아질 수 있다.

분명히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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