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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20. 2022

Stigma(스티그마; 치욕, 낙인, 오명)

왜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을까?

<커버 이미지-‘Mental Health First Aid’ (Emma Hammett 지음) 책의 앞표지. Copyright-First Aid for Life>

‘일터, 학교, 가족들, 친구들, 돌봄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신(마음)건강 관련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라는 책 소개가 와 닿는다.

우리네 역시 정신건강 관리 실용서도 분명 필요할  같은데 아직 이런 말이 생소하기만 하다.





Stigma(스티그마);
치욕, 낙인, 오명
*참고 [어원] 그리스어 stizein(찌르다, 표시하다)
(출처; 다음 영어사전)

Stigma Effect (스티그마 효과);
과거의 좋지 않은 경력이 현재의 인물 평가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또는 한번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면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현상.
특정인이 좋지 않은 과거 행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낙인찍혀 거래나 교류를 거부당하는 것을 두고 ‘스티그마 효과’라 부른다.
(출처; 우리말샘 / 서울 경제, 2003년 10월)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희한하게 임신했을 땐 내 눈에 그렇게 임산부만 보이더니, 출산 후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유모차 타고 다니는 아기들이 원래 이렇게 많았나?! 싶었던 기억이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린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어른들이 매우 많다는 것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새삼 알게 됐다.

대게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이 있는 만큼 눈길이 가게 마련임이 분명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병원에 간 사이 우리 아파트 바로 앞동에서 투신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몇 달 후 또 바로 그 옆 동에서 소동이 있었다. 혼자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데, 아파트 단지 안이 경찰차와 소방차 구급차까지 출동해 초긴장 상태였다. 놀라서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옆에 서 계시던 경비 아저씨가 귀띔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자살미수’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고.

이 모두가 여기 십 년 넘게 살도록 처음 듣고 보는 일이었다.


동생이 내 걱정으로 매일같이 집을 드나들던 지난여름이었다. 한 60대 정도 되는 아저씨가 며칠 동안 아파트 단지 정문 입구에 당신 차를 대어놓고, 밤낮없이 들어오는 차량들을 검문하듯 했다. 입주민들한테 도대체 왜 저러나 싶던 찰나, 스무 살 초반쯤 된 청년이 동생 차로 다가와 그분의 아들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사과했단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좀 아프셔서요. 그냥 몇 동 몇 호에 사신다고 말씀만 한 번 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이유인즉 '누군가 나를 해치러 온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24시간 내내 자동차 시동을 켠 채 운전석에 앉아있다고 했다. 아내와 아들이 함께 차 옆을 지키고, 그를 달래면서 집에 들어가자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그 차 연료가 다 바닥나 멈춰서 기름통에 받아 온 휘발유를 채우는 장면이었다.

그러던 끝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난 것이었다.


만일 그때 어떡해서든 그분을 병원으로 옮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 가족들은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정신이 없던 그때, 이웃에서 그런 일까지 벌어지니 얼마나 심란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아이고... 정말 그건 가족들이 너무 대처를 잘 못 했어. 그 아저씨를 그냥 그렇게 집에 두면 안 되는 거였는데..."   


식구들은 그날 그 사건이 저녁 뉴스에 나왔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며 다시금 안타까워했다.



며칠 전에는 중학생인 딸이 내게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있잖아, 학교 친구 하나가 방학 시작하고 바로 모든 애들이랑 연락이 두절됐었는데, 알고 보니 살찌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까지 오게 됐대.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폐쇄병동에 입원했었고, 그래서 연락도 안 된 거였어. 안 그래도 그 애가 항상 조금 먹어도 살이 막 찐다고, 뭐 먹을 때마다 신경 쓰고 음료도 칼로리 없는 걸로만 마시고 그랬었거든. 그래도 그렇게 심각하게 마음이 아프게 될 줄은 몰랐네!”


어머 그 아이 어쩌니 걱정을 하니까, 다행히 이제 퇴원해서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낼 만큼 좋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에 생각보다 마음 아픈 친구들이 꽤 있어서 종종 상담을 받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다니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들끼린 그리 심각하고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TV에 나오는 오은영 쌤이 좋겠지만, 거긴 너무 비싸서 못 가는 거지 뭐.”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한편은 아직 어린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또 한편은 마음건강에 대한 의식이 어른들보다 낫다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가 그 친구 줄 선물을 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생일+퇴원 축하를 하러 집에 놀러 간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괜찮아져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내 마음을 함께 들려 보냈다.






주저하는 마음의 이유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스스로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면서도 또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 막은 미련한 자가 됐다.


잠 못 잔다고, 기분이 좀 오래 우울하다고, 평소보다 무기력하다고, 전보다 의욕이 없어졌다고… 그렇다고,


‘정신과가 웬 말이야?!’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스로를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도 나의 상태가 무척 심각해질 때까지 문제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혹 알았던들 뭔가 현실적인 대책의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막다른 곳에 다다라서도 나는 가족들과 절친이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지지리도(!) 안 듣고 버텼다.

그러다 결국 그 사달이 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다치거나 고장 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잘 모르거나 무관심하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일까.

왜 한시라도 더 빨리 치료받고 고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주저할까.

(정말, 설마 나만 그랬을까?)



다른 여러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 응급처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던 중 나는 같은 이름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 기관에서 발행한 것은 아니었다.  

2021년 4월에 출간된 아직 따끈한 책으로, 영국에 있는 간호사 ‘Emma Hammett’라는 분의 네 번째이자 가장 최근의 저서였다. 한국에서는 구매할 수 없어 바로 해외 사이트에서 주문을 했다.


엠마(Emma)는 영국 런던에서 ‘First Aid for Life’(삶을 위한 응급처치)라는 이름의 기관을 설립하여, 일반인들에게 이름 그대로 삶을 위한 응급처치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아래 웹사이트 참고)


https://firstaidforlife.org.uk


그녀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만나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지식과 능력의 중요성을 책과 미디어 그리고 교육을 통해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인 위험에 대한 응급 처치에서부터 반려견들을 위한 응급처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거기에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고, 특히 코로나 발생 이후 더욱 위험해진 마음/정신건강 이슈에 대한 관심이 더해졌다. 그야말로 우리 삶 전반의 안팎 모두를 위한 응급처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심리서나 에세이와는 다르게 가이드북 같은 형식이라 직관적이고 실용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정신건강 관련 문제에 대해 하나씩 짚어가면서, 자신 스스로 그리고 누군가의 주변인으로서 대처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내게는 특히 두 개의 챕터가 인상적이었다.


책의 맨 마지막 부분 'USEFUL RESOURCES and REFERENCE SECTION'(유용한 정보와 참고 섹션)에는 영국 내에서 정신 건강 관련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웹사이트와 기관들이 무려 25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어 있다.


중독, 불안,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 공황, 아동학대(+학대받고 자란 어른들), 자해, 섭식장애(+섭식장애 남성들), 자살사고, 정신증, 기분장애 등등 각각 다른 문제들을 세분화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에 더해 같은 문제라도 대상별로(성별, 어린이 및 청소년, 성소수자, 소수 인종 등으로) 분류한 정보원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직업과 직장 즉 산업안전 측면에서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안전에 대해서도 따로 다루는 기관이 존재했다.


과연 ‘외로움 장관'까지 있다는 그 나라다웠다. 얼마나 많은 공공과 민간이 힘을 모아 사람들의 정신 건강 웰빙에 관심을 쏟으며 서로의 마음을 돌보고 있는지가 엿보였다. 나는 실로 그 다양하고 수많은 영국 내 기관들과 정보에 놀랐다.


한편, 책의 서문과 소개 그리고 정신건강이란 무엇인가의 개요 부분 다음에 가장 먼저 등장한 챕터의 제목은 'Stigma'(스티그마)였다. 우리말로는 치욕, 낙인, 오명 정도로 해석된다.


Stigma(스티그마)

불행하게도, 정신건강에 대해 상당히 잘못된 정보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근거 없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정신적으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경멸하는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필요한 도움을 찾는 것에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은 치료가 불가능하고, 결국은 어떤 보호시설로 가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통제불능이고, 폭력적이며 위험할 것이라는 사실 무근의 사회적 신념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회적 신념으로 인해 실제로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종종 도움받아야 할  때를 놓치고 있다. 사람들은 정신 질환을 앓는다는 '딱지'를 붙이고, 오명을 얻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대게 친구들, 가족들, 동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감추려고 한다. 때때로 그들은 스스로를 낙인찍고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이야기 나누고, 더 나아가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한 걸음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족, 친구, 직장 그리고 기관들이 사실상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이하 생략)
(출처; Emma Hammett,  'Mental Health First Aid' 17페이지 중에서. *자체 번역)


마음건강 문제를 살피는 데 있어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스스로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음/정신건강 문제 관리의 가장 큰 장벽은 사회적인 ‘낙인’과 ‘부정적 인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높은 장애물 같은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하고, 또 정신건강 관련 문제들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지키고 또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우리 개인들과 사회 그리고 나라가 모두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었다.





도움구할 용기


신체적으로, 정신적-감정적으로 뭔가가 평소의 자신 같지 않다면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혼자 감당이 어려우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시면 좋겠다. 괜찮다고, 참을 수 있다고, 시간이 약이라고 혹은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서’ 그냥 혼자 판단하고 뭉개는 것이 문제를 훨씬 더 키울 수 있으니까.


아울러 곁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들이 평상시와 어딘가 달라 보일 때,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한 걸음 다가가 자세히 살펴주면 좋겠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파이팅 넘치게 해 주려는 마음에 우리는 종종,


‘멘털이 그렇게 약해서 어쩌냐. 정신 차려!’

‘마음을 다잡고, 훌훌 털어버려!’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일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다리가 그렇게 약해서 어쩌냐. 다리 차려(?!)!’

‘다리를 다잡고, 탈탈 털어버려!’


라고 하진 않는 것처럼.


다리를 다쳤다고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어서 병원에 가서 더 깊은 상처가 없는지 확인해 보고, 필요한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할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한 걸음,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생명줄’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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