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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16. 2022

맘 아픈 맘(mom) x 어린 자녀 = 초고위험

엄마는 마음대로 아프지도 말라는 이유

<커버 이미지-북촌한옥마을 어느집 디딤돌 위에 올려놓은 딸과 나의 발>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이 건강하고 또 가정이 건강하다는 말은 진리이다.






엄마들


모두 각자 다른 이유와 사연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지금쯤 마음이 좀 편해졌을까, 많이 나아져 잘 살고 있을까 염려되는 그들.

나와 같은, 어떤 아이들의 '엄마들'.





마음이 아픈 엄마들


입원 후 이틀 째 날이 밝았는데 나는 여전히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심신이 불편했다. 마치 궤도를 이탈해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돌고 있는 행성이 된 것처럼,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못 버티고 튕겨져 나왔다는 자괴감.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굳건히 지켜야 할 ‘엄마 자리’를 이탈해 새끼를 떼어놓고 다른 곳에 와 있는 것과, 또 내 짐을 나의 엄마에게 대신 지우고 있다는 죄책감. 고장 난 내 상태에 이러한 감정들까지 덧붙어 그 자체로 스스로에겐 몇 배 더 무거운 형벌이 되었다.


아침 약 복용 후 다시 잠을 자는 환자들이 많은 오전의 병실은 고요했다. 또다시 심리검사지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는 중년 여인이 다가오더니 내 침대 한편에 걸터앉았다.


나에 대해 -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가 아프고 어쩌다 입원을 했는지 등을 먼저 물었다. 나는 덤덤히 모두 대답해 주었다.


듬직한 맏며느리 같이 둥글둥글하고 차분한 인상에,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그녀는 곧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2년 전에 핸드폰을 바꾸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그때 핸드폰 대리점에서 내 개인 정보를 유출해갔어요. 모든 개인 정보랑 또 몇 년 동안의 가족, 친구들과 카톡 대화 내용을 그놈들이 다 봤을 거고, 나의 모든 걸 빼앗아 갈 것 같아요. 걔네들이 우리 엄마랑 동생까지 온 집안을 싹 다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했어요. J 씨, 나 어떡하죠? 그놈들이 정말로 우리 가족들한테 큰일을 저지르면 어떡하지?! 난 그 생각만 하면 너무 불안해 죽겠어요. 병원에 온 지 3주나 됐는데, 내 마음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똑같아요.”


그러고 보니 핸드폰 사용이 허용된 시간에 모두들 간호사실에서 폰을 받아오는데, 그녀만은 혼자 침대를 지키고 있었다.


이어서 자기 집과 아주 멀리 떨어진 이 병원으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내가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서 물에 빠져 발견되었다는데… 나는 거기 간 기억이 전혀 없어요. 병원에 어떻게 온지도 모르겠고. 정신이 들고나니 응급실이었어요. 서울 사람인 것 같으니까 우선 구급차가 서울 쪽으로 오면서 받아줄 자리가 있는 이 병원으로 왔던 것 같아…”


그녀가 핸드폰 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으로 병원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이미 일 년 전 다른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고도.


불현듯 한참 전에 아는 후배의 지인 이야기를 건너 들었던 게 생각났다. 휴대폰 정보 유출에 대한 강박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다가 불안과 우울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땐 설마 다른 문제 없이 사회생활하는 성인 남자가 그저 휴대폰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될 수가 있나,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나 믿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과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됐다.


알고 보니 눈부신 정보 통신의 발전과 세상의 진화는 사람들에게 편리함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다. 고도의 기술과 그 관련 부정적 사건들이, 어떤 사람들을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커져 불안과 공포가 되면 결국 마음에 큰 병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냥 봐선 매우 느긋한 모습에 목소리도 차분한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있다는 걸 믿기가 어려웠다. 문제없이 잘 먹고, 잘 자고 또 웃는 그녀는 나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나를 붙들고 개인정보 유출과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은 종종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걱정을 했다. 벌써 다 커서 성인이 된 자녀와 아직 초등학생인 늦둥이가 있는데 그게 걱정이라고. 애들은 너무 예쁘고 착하게 잘 크는데, 엄마인 자기만 문제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자꾸 생각나는 그 일이 이전에 정말 일어난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아니란다. 그놈들이 분명히 정보를 유출해갔고 그런 말들을 했기 때문에 걱정되는 거란다. 그래서 나는, 정말 큰 일은 안 일어날 거고 또 혹시 일어나도 경찰이나 기관이 도와줄 테니 미리 염려 말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을 듣고 괜찮으면 마음의 병이 아니었겠지만.


그러다 나는 참으로 아찔한 말을 듣게 됐다.


“그 생각 때문에 사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우리 집이 아파트 14층인데… 집에 있으면 자꾸 베란다로 가게 되더라고요… 우리 애들 나 없으면 안 되는데… 나 없이 못 사는데… J 씨, 가끔 난 이렇게 힘들면 그냥… 애들이랑 싹 같이.. 그래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럼 고통도 다 끝날 텐데.”


애들이랑 ‘같이 그래 버릴까’라는 말이 무슨 말이지? 하던 찰나, 아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하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강원도 바다로 향한 건 아마도 죽음의 욕망에 이끌려 갔던 것이었겠다는 추측이 들었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한 ‘아이 엄마’는 병동에서 유일하게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몸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한 후 힘든 과정을 겪으며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성인 30년 인생 중에 반 이상을 병원에서 보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곳에서 가장 밝고 사교적이었다. 스스로 조현병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정도로 활발한 사람이었다. 매일 남편, 아이, 부모님, 형제자매들과 통화를 하느라 제일 바빴고, 인정도 넘쳐서 늘 가족들이 사 온 과일이며 간식들을 병원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몸과 마음이 아팠어도 늘 치료받으며 관리했고, 그렇게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아 살다 보니 많이 괜찮아졌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묻혀있던 괴로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결국 수면제 100알을 차곡차곡 모아 한꺼번에 먹어버렸다고 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서.


그런데도 살아났으니 참 사람 죽는 것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쉽게 안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다들 빨리 나아서 퇴원하고, 인생 순간순간 즐겁게 살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잔소리처럼 하곤 했다.

원치 않았든 원했든 이미 여러 번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갔던 사람의 그 말이 난 그저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부모-아이들의 우주 


십수 년 전 내가 아이를 낳고 며칠 후 신생아 황달 검사를 하러 친정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 연배의 어떤 아주머니가 갓난아기를 혼자 안고 와서는, 나와 엄마를 계속 바라보면서 '너무 부럽다'고 했다. 어떤 영문인가 하니, 당신 딸이 출산 직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 스스로도 아기도 돌보지 않는 상태로 있어서 너무 애가 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갓난 손주는 분유를 먹이며 당신이 돌보고 있고, 황달 검사도 혼자 오셨던 거였다. 한참 동안 우리 3대 모녀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아주머니가 참 안타까웠었다. 그와 동시에 난 아주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차원의 생각으로, 가끔 새끼를 낳은 동물들이 위협을 느끼면 자기 새끼들을 다 물어 죽이거나 방치해 둬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들에게 '몸과 마음 건강한 어미'가 그 새끼들한테는 절대적으로 중요하구나란 생각을 재차 했었다.  



예전에는 간혹 뉴스에서 '모자 동반자살' 소식이 들리면, 저 어린것들이 무슨 죄라고 같이 그랬을까 싶었다. 그러나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된 후에는 정말 어느 엄마가 도저히 삶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절망했을 때, 다른 아무 방법을 모르겠을 때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겠구나 싶다. 정말로 엄마는 아이들 세상의 전부이고 그래서 그 세상이 안전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병원에서 나를 포함한 그 맘 아픈 맘(mom)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의 자녀들은 원치 않아도 어느 순간 자동적으로 초고위험군이 될 수 있겠다는 걸.

그들의 자녀 수만큼 위험은 몇 곱절이 되어 증폭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세상 그 누구보다 더 건강해야 하는 게 어린 자녀들을 둔 엄마들이라는 걸.



전에 읽었던 법륜 스님 책의 한 구절이 오늘 더욱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친애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여,

우리 언제나 몸과 마음 건강하자!

특히 맘 아픈 맘(mom)은 되지 말자.     

당연히 아빠들도, 몸과 마음 아프지 말자.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라 하니.

우리는 존재 자체로 아이들의 우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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