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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03. 2022

타인과 하루 한 번 말없이 함께 ‘걸어주기’

외로움 장관이 있는 나라의 희한한 자원봉사

<커버 이미지-나에게 ‘살아낸 자격증’을 보내준 영국 사는 친구가 나를 생각하며 그렸다는 그림 선물>

예술가인 그녀의 섬세한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토록 섬세한 사람이니 하늘에서 떨어진 고통 앞에 마음의 상처는 더 깊을밖에.

‘My Sunshine(나의 햇살)’ - ‘Sunshine(선샤인;햇살)이라는 내 애칭을 써 놓은 걸 보니, 더욱 반짝반짝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녀의 삶에도 더 밝고 따뜻한 햇볕이 들기를.





인생의 불친절과 억울함


'유리 가슴을 품고 사는 삶'을 나보다 먼저 경험했던 친구는 내 소식을 들은 후, 멀리 영국에서도 마치 나를 초집중 관리하듯 수시로 연락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자긴 언제든 한 번쯤 마음을 크게 앓을 게 예견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뒤늦은 고백을 했다.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버거운 고통이 닥칠 때를 대비해 미리 관리하지 못했고, 참고할 매뉴얼이 없었던 탓에 병을 키운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도 그랬듯 대부분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아가기도 바쁜 세상살이 도중에 그 누가 내일의 문제를 미리 알고 충분히 대비하며 살 수 있을까.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교통사고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 인생은 우리에게 언제나 친절만을 베풀진 않는다.

그런 인생의 불친절과 불공평에 대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묻고 또 묻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탓할 곳도 없이 풀어지지 않는 그 마음을 그저,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운명'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기도 한다. 그래라도 해야, 또다시 삶과 직면하고 내일을 감당할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친구도 그랬다. 그래서 억울하다 말한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진’ 듯 자신이 원한적 없는 일들로 아픔과 슬럼프를 겪었다. 워낙 말수가 적은 친구이기에 나는 대략 짐작만 할 뿐 속속들이 다 알 수 없었을뿐더러, 몇 년째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친구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긴 어둠을 통과하며 그녀가 다시 제 자리를 찾는 데에는 수개월이 아닌 수년이 걸렸다고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정말 다시 걸음마를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대로 그녀는 예술가인 자신의 본분을 되찾아가려는 듯 다시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블루-우울 그리고 치료받을 용기


전 세계에 코로나가 덮친 후 너나 할 것 없이 재앙을 뚫고 지나는 시대를 살아내고 있지만, 직접 전해 들은 영국의 생활은 우리나라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우리가 K방역을 자랑하던 코로나 초창기부터 이제까지 한국은 단 한 번도 국가 전체가 멈추고 완전 격리를 한 적이 없었지 않나. 그러나 영국과 기타 유럽의 국가들은 외출 제한과 상점들의 영업중단까지 한 전면 락다운(lockdown; 봉쇄)이 여러 번 내려지기도 했다. 하루 한 번, 가족 중 한 사람만 필수 식료품 또는 약품 구입 등을 위해 외출할 수 있던 시기에는 당연히 유럽 내 물류도 원활하지 않아 슈퍼마켓에 가도 달걀이나 고기 등이 없어서 사지 못 하는 일도 겪었다고 했다. 그런 엄격한 통제하에서도 친구네 부부와 어린 딸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때마다 코로나 확진이 되어 수일 씩 앓는 것을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직업을 잃는 사람들도 넘쳐나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네 부부도 2년간 일을 하지 못 한 채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생활했단다. 특히 많은 노인들이 사망했고, 그들의 유산이 직업을 잃은 성인 자녀들의 임시 생활 방편이 되어주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많다 했다.


한편,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 봉쇄를 하니 집 안에 함께 갇힌 가족들 사이의 스트레스와 불화로 가정폭력이 성해지기도 했단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뉴스에서, 영국 BBC 생방송 뉴스 앵커가 가정폭력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손등에 적고 방송을 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던 게 기억났다.(아래 참고 사진)

<2020년 4월 7일 SBS 국제뉴스 보도 장면>


내 친구는 본인 스스로의 문제뿐 아니라, 가까운 영국인 친구 중 나와 똑같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아프게 된 사람을 곁에서 지켜봤다. 그는 문제 상황을 너무 오래 숨겼고, 또 알고도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해서 결국 치료가 몇 배 더 길어지고 고생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보다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인식이 훨씬 나을 것 같은데도 그 영국인 친구는, '의사인 내가 어떻게 정신건강의학과를 가? 혹시라도 내 환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라며 전문적인 도움을 거부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약물치료를 하며 컨디션이 좀 나아졌다 싶을 때, 임의 판단으로 약을 중단했다가 더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 직/간접 경험 때문인지 친구는 내가 너무 늦지 않게 알아채고 병원에 갔다는 그 자체를, 가족과 나의 지혜롭고 용기 있는 대처였다고 칭찬했다. 평소에 항상 건강을 잘 관리하던 사람이고 근본적으로 바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으니, 빠르게 회복될 거라고 격려했다. 비교적 빨리 다시 예전처럼 운동을 하게 되고, 글쓰기도 하는 것에 정말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몸


내가 맘밍아웃(?!)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는 시차를 거슬러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J야, 내일 아침 6시에 아파트 계단 한층만 올라갔다 내려와 볼래?

그리고, 인증사진 한 번 부탁해요.

내 친구가 걷기 하면서 회복하는데 도움 많이 되는 걸 확실히 느꼈어. 한동안 항상 다니던 길도 혼동할 정도였는데.

몸이 나아져야 자연히 기분도 나아지고, 뇌도 예전처럼 움직이는 것 같아. 그러니 몸상태 회복이 최우선이야.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이 크겠지만…조급해하지 마.

너, 지금은 좀 쉬는 게 맞다. 이제 깁스 풀고 재활 단계야. 걷는 연습부터 하고 달려야지."  


불안해하는 나에게 친구는 본인이 겪은 일들과 보고 들은 일들을 공유해 주며, 시시각각 나를 다독이고 응원했다. 혹시라도 내가 더 아파질세라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해외 주문을 해서 읽은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 응급처치)'라는 책에서도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영국 사회의 열의를 엿볼 수 있었지만(참고 글; 아래 링크), 친구도 역시 “영국은 전방위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어. 애들 학교마다 오은영 박사 같은 사람이 한 명씩 있고.”라는 말을 했다.


https://brunch.co.kr/@e8474647f0b24ea/29


그러면서 나에게 그곳 봉사팀의 직무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여기 심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하루에 한 번씩 강제로 산책시키는 봉사활동이 있어.

그냥 말도 안 시키고, 하루에 한 번씩 밖으로 데려 나오기.

가족이 아니니까 거절 못 하고 따라 나오게 된대.

그러다 서포터 그룹에 들어가서 세상으로 조금씩 더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거."


순간 ' 희한한 자원봉사도  있네',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 역시도 겪어보니,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을 다지는 데 있어서 사람이 우선 ‘무조건 몸을 일으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문 밖을 나설 생각조차 들지 않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처음 10분을 시작으로 조금씩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예전에 하던 다른 활동들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만큼 활력이 커지면서 삶의 다른 것들에 대한 욕구도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있어야 몸을 움직이는게 아니라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따라 오는 것이었다.


언제나 운동의 중요성과 순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겠지만,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에게 운동은 어쩌면 약물이나 치료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스스로 임상시험(!)을 하게 된 내가 경험을 토대로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다.





일어나 나와 함께 걷자


지금 당신이 침대에 누운 채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면, 우선 몸을 일으켜 앉아보는 것부터 하면 좋겠다. 앉은 후에 괜찮으면 일어서 보는 거다.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을 내어 집 밖으로 나가 보자. 처음부터 많이 욕심부리지 말고, 10분-15분만 천천히 걷기를 시작해보자.


유난히 어둡고 추운 겨울을 지낸 당신이라면, 더욱더 기운을 내어 밖으로 나가보면 좋겠다. 어느새 계절도 따사로운 봄이 되었고, 여기저기 꽃들도 피어나고 있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살아있음을 느끼고,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이지만, 당신이 필요하면 함께 걸어주고 싶다.

하루 한 번 그냥 아무 말 없이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밖으로 나오게 해 곁에서 함께 걸어주겠다.


내 온 마음을 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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