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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Mar 30. 2022

아는 것. 모르는지 아는 것. 모르는지 모르는 것!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 투성이

<커버 이미지-몇 년 전 SNS에서 보고 무릎을 치는 심정으로 저장해 둔 그림>

둥근 지구 파이에서;

초록색 조각-당신이 아는 것.

파란색 조각-당신이 모르는지 아는 것.

얇은 두 조각을 제외한 나머지 온 세상-당신이 모르는지 모르는 것!

이 한 장의 그림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판단하지 않고 듣기


나이를 먹으며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이는 만큼, 내 이 정도 살았으면 세상 이치 돌아가는 것이나 웬만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꽤 많을 것이다. 먼저 살아보고 겪어봤기에 너무 잘 알아서, 상대에게 도움이 될 테니 얘기해 주는 거라 자신하고 말하는 경우도 상당할 거다.


당연히 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지혜가 그 세월만큼 더 넓고 깊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어른들 말씀 들어 손해 볼 것 없다는 것도 이제껏 살아보니 대부분 맞았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의 나도 어린 사람들에게 자꾸 같은 말을 하며 ‘라때’를 권하게(?!) 된다.

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태어났고, 제일 먼저 결혼했고, 일등으로 임신-출산했고 그래서 아이의 모든 육아과정을 앞서 겪고 또 이혼마저 먼저(?!)한 나는 자연스레 친구들에게도 훈수를 두는 입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나 경험이 많다한들 절대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


잘 안다 내세워 이야기하기 전에, 누군가 겪는 ‘어떤 상황’과 ‘감정’은 오롯이 그 사람만의 깊이로 받아들이고 겪어낸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유로, 또 잘 안다고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이럴 거야, 저럴 거야. 그럴 땐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고 섣부른 충고나 조언을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앞선 글(아래 링크)에서 소개했던 ‘정신건강 응급처치 매뉴얼’에 언급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편견 없이, ‘판단하지 않고(non-judgementally)’ 듣는 것이 소통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함을 되새긴다. 특히 한 사람의 감정은 그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 다른 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이해가 쉬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정말 모르기도 하고, 혹은 알아도 종종 잊는 것 같다.


‘뭘 그까짓 거 가지고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냥 잊어버려.’

‘시간 지나면 다 해결되고 괜찮아져.’

‘다들 그러고 살아. 유난 떨지 마.’


따위의 말들을 주변에 위로랍시고 때때로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https://brunch.co.kr/@e8474647f0b24ea/42





무엇도 담을 수 없는 부서진 마음


예전부터 평소에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모두 자기중심적이어서, 옆에 누군가가 죽을병에 걸려 고통스럽다고 해도 당장  손톱 아래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겠지.”


그러니 내가 힘들어 보일 때라도, 너에게는 네 아픔이 가장 클 테니 언제든 내 귀가 필요하면 편하게 털어놓으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본성은 진리이기 때문일까.

나는 내가 직접 겪기 전에는 마음이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 오롯이 다 알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며 살아왔다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공감능력도 이 정도면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누군가 마음이 힘들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고 여겼다. 우울함과 슬픔을 안 겪어본 사람이 세상에 어딨나, 에 더해 나름 많은 아픔을 겪어봤으니 정말 잘 아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공중전뿐 아니라 갑자기 푹 꺼지듯 추락해 ‘지하전'을 치루어보니, 그건 정말로 내가 '모르는지 모르는 것'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이후 가슴 아픈 일을 나보다 더 크게 겪었거나, 그 종류가 다른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자주 떠오른다. 내가 안다고 생각해서 다 헤아려주었다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모르는지 모르는 것이었겠다 싶었다.



아플 줄은 알았지만 얼마만큼인지 내가 다 몰랐을 게 분명해진 영국 사는 친구가 매일매일 생각났다. 한참 힘들었을 때, 모두 알아주지 못한 게 뒤늦게 미안했다.


친구야, 요즘 매일  생각을 한다. 불쑥불쑥.

내가 뼛속까지 너를  이해하지 못했을 , 너는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고 그래서.”


이런 내 메시지에 그녀도 답했다.


“사랑하는 내 친구야~ 누가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야말로 동굴에 숨어 있었는데…

내가 존경하는 숙모가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러셨어.


‘지금은 누구의 어떤 위로의 말도 응원도… 너를 사랑해서 걱정해서 하는 말들도 무슨 이유에서든지 너의 마음을 상하게 할 거야… 죄책감 느낄 필요 없고. 네 마음이 부서져 있음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어서 그런 거야…’


가끔은 존재만으로도 어떤 이유로 형태로라도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고, 너는 나에겐 그런 식으로 격려와 응원을 해줬어.


나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시간과 사연 속에서 그들만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데 최선을 다해서.. 누가 감히 더 힘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걱정해서 하는 말들도 마음을 상하게 할 거야, 라는 그 말이 가슴에 콕 와서 박혔다.





아는 것. 모르는지 아는 것. 모르는지 모르는 것.


어쩌다 내가 유리 같은 마음을 품게 된 후에야, 안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아는 게 아닐지도 모를 게 많다는 것을 - 그래서 함부로 안다고 말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당신과 내가,


‘모르는지 모르는 것’


이, ‘아는 것’ ‘모르는지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나와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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