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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Mar 27. 2022

연락 준 것 만으로 고마운 사람

사람 때문에 사는 게 꽃 같네(2)

<커버 이미지-멀리 영국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가 몇 개월 만에 나와 다시 연락이 닿은 뒤 내게 보내준 ‘살아낸 자격증’(김미경 강사의 MKYU 제공)>

모두들 오르락내리락하는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느라 애쓴다. 그런 삶을 이제까지 살아냈고, 또 지금을 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우수 살아낸 자격증’을 나누어주고 싶다.





저 깊은 해저에 가라앉다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연락을 나누고, 서로 집이 멀지 않아 아이들을 데리고도 자주 만나는 여고 동창들과 조차 소통의 끈을 놓아버린 시간이 있었다.


안부 메시지에 대답도 없고 전화도 연결이 되지 않자 그들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고 했다.  연락을 못 할 만큼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나 보다 생각한 친구들은,


“J야, 네 상황과 마음이 편해질 때를 기다릴게.”


하고는 더 캐묻지 않았다.


아무리 그랬어도 그런 시간이 두어 달을 넘어가자 뭔가 문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친구들은 애가 탔다.

소식 없는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응원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늘 같은 안부를 묻는 도움 안 되는 연락도 어쩐지 미안해서 그저 생각만 한다는 메시지가 쌓였다.


그런 나의 단절로, 내가 회사를 못 나가게 되고 입원을 했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친구들은 마치 모든 걸 알았던 듯 마음으로 병문안을 했다. 또한 나 모르게 딸에게 간식 기프티콘 등을 보내주며 아이까지 챙기고 있었다.


“오늘 집으로 택배가 갈 거야.

퇴근하면 받아볼 텐데…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니 남들 신경 쓰지 마.”


퇴원하고도 여전히 밤낮없이 깜깜한 나날들을 보내며 집 안에 틀어박혔을 때, 한 친구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디저트를 보내왔다. 며칠 사이 또 다른 친구는 예쁜 꽃을 보냈다. 계절도 모르고 똑같이 빛이 들지 않는 매일을 보내던 나에게 가을이 깊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은 가을꽃 한 다발이었다.


<집으로 배달된 친구들의 마음>


스스로도 감당이 되지 않았던 무서운 마음의 변화와 그로 인해 겪은 일들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저 깊은 물속 아래 바닥에 가라앉은 채로 떠오르지 못하고, 또 시간은 흘러갔다.


 




연락줘서 고마워


사람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내려가면 바닥을 차고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한참 믿기지 않던 그 말을 사실이라 증명하듯 나는 서서히 떠오르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을 시작으로 지인들, 친한 회사 동료들 그리고 비즈니스로 만났지만 십수 년을 이어 온 인연들에게 밀린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해외에 사는 친구들은 내가 코로나나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했다. 거래처 중에선 휴대폰으로도 회사로도 연락이 안 되고,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모르게 갑자기 자취를 감춘 나의 소식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다는 이도 있었다.

그런 잠적의 시간은 내가 친하다 여기고 지낸 사람들 중 전혀 ‘안물 안궁(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인 사람들을 자연히 솎아냈다. 그래서 내가 원치 않았어도 서로의 인간관계 목록이 또 한 번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너무 긴 시간 제가 연락을 드리지도 받지도 못해서 죄송해요.
지난여름 몸과 마음 모두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지면서 급기야 입원도 했었고… 깊고 어두운 동굴에서 웅크리고 지낸 몇 달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망설인 시간이 길었어요. 그렇게 걱정만 끼치고 이제야 연락드리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닌 것도, 염려 많이 끼친 것도 죄송하고… 늘 마음 써 주시는 거 알기에 또 감사해요.
어째 그냥 안 살고 이렇게 꼬부랑길을 골라서 가는지... 그래서 면목 없고, 송구하네요.
그래도 이렇게 다시 연락드릴만큼은 좋아졌다 생각해 주시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정말로 다시, 얼굴 보고 웃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 함께하게 될 그날을 소망합니다.



이런 나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첫마디는 놀랍게도 하나같이 약속한 듯 똑같았다.


“J! 연락 주어 고맙고, 반가워요. 정말 정말 감사해요!”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건 나인데, 모두들 내게 고맙다고 했다. 연락 줘서 고맙다는 말을 왜 내가 듣는 걸까 순간 의아하기도 했다.


오랜만의 내 인사에 어떤 친구는 눈물을 흘렸고, 또 어떤 친구는 다음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전화를 걸어왔다. 또 다른 친구는 아침 댓바람에 집 근처로 달려왔다.

사회에서 만난 선배님들은 위로의 말 대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들을 보내주셨다.

영국에 있는 친구는 ‘살아낸 자격증’을 보내준 후 자주 위로의 글과 음악, 좋은 강연 영상들을 보내주고 있다.


내가 뭐라고… 모두들 나의 메시지 하나에 아끼던 무언가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사람들처럼 고마워했다. 안도하고, 반가워했다.


그 수가 많지 않더라도, 서로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라고 새삼 생각했다.





Welcome back!(돌아온 걸 환영해!)


매해 나무 가지마다 연두색 잎이 돋고 꽃망울이 맺힐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것 같은 새봄에 나는 생일을 맞이한다.


정신없이 두 계절을 훌쩍 건너뛰고 돌아온 듯한 올해 생일에, 나는 진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또다시 감사히 살고 있음을 느꼈다.


한 지인의 생일 축하 인사 카드를 열었을 때, 눈에 띈 글귀에 가슴이 울컥했다.




Welcome back!!!
돌아온 걸 환영해요!!!






나는 내 사람들과의 끈을 다시금 단단히 이어 묶으며

‘사람 때문에 사는 게 꽃 같네.’

라고 또 한 번 생각했다.


꽃 같은 사람이여, 우리 함께 꽃같이 살아가자.




*누군가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의 한마디 인사가 너무나 반갑고 고마울지도 모른다.

당신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재 그 자체만으로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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