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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Oct 14. 2022

안녕, 학생들? 난 조교야

조교도 과제가 싫다

시험기간에 커피와 박카스를 들이키는 사람들은 대학생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대학원생인 나도 평일 새벽 2시에 박카스를 두병째 까고 있으니. 그 이유인즉슨, 조교 업무로 인한 것이다.


조교가 하는 일이란, 늘 말하듯 이것도 참 가지각색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우선 내가 하는 일은 품이 별로 들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수업하시는 강의가 꽤 대형 강의어서 채점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점 빼고는 연구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가끔 수강생에게서 문의 메일이 왔지만 이는 바로 교수님께 포워딩하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실질적으로 시험 감독과 답안지 채점만 하면 되었으니 중간고사, 기말고사 딱 이틀씩만 투자하면 되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가.


제일 문제는 그 기간에는 나도 시험을 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시험공부도 하고 누군가의 시험지 채점을 하면서 혓바늘로 입 안이 다 헤졌다.

산처럼 쌓인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돈만 아니면 안 했다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러나 푼돈이라도 돈은 돈. 들어가는 노동에 비해서는 많은 값이니 오버 떨지 말고 열심히 하기로 매번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정말 업무가 빡센 조교일도 많기 때문이다.

연구에까지장이 가는 조교 업무는 다음과 같다: 과제가 많은 수업, 학생이 많은 수업, 조교가 강의를 해야 하는 수업.


대학원생 친구의 경우에는 조교를 맡은 강의에 수강인원은 적지만 교수님께서 너무나 많은 과제를 내주시는 바람에 그 과제를 채점하느라 늘 허덕였더란다. 채점 말고 연구를 하고 싶다며 친구는 술잔을 기울였다.


조교가 강의를 해야 하는 대표적인 수업은 바로 실험수업이다. 이공계열 등록금의 꽃(...)이라고도 여겨지는 학부 실험 학점은 전적으로 조교의 권한에 놓인다. (적어도 우리 학과 실험 수업은 그랬다)

실험 수업 조교는 커리큘럼에 따라 실험 준비를 해야 했고, 실험 시범을 보이며 수업을 진행하고, 실험 전, 후로 학생들의 리포트를 받아 채점하고, 시험문제도 출제했다.

이때, 왜 학점이 전적으로 조교의 권한이냐 하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실험 리포트들을 조교가 자의적으로 (그러나 나름의 기준을 세워)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부 때 실험 수업 리포트에서 항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서 불만이었는데, 막상 내가 리포트를 평가하는 입장에 놓이니 그 점수가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리포트에 들어간 노력과 시간이 안 보이려야 안 보일 수가 없었다... 대학원생 친구가 "이건 좀 심하지 않냐"며 보여준 그 리포트가 옛날 내 리포트와 쏙 닮아 있어 부끄러웠다. 조교 눈에는 다 보인다는 사실을 학부생이었던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수업 조교들은 조교 장학금을 받는다. 학과 규정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등록금 정도를 지원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학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또한 연구실마다 다르며, 장학금을 받을 시 인건비가 어떻게 변동될지 또한 다 다르다. 모든 것은 교수님의 원칙 아래 놓여있다.


돈 문제는 대학원에서 꽤 민감한데, 가끔 지인 이야기를 들어 보면 불합리한 경우도 발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발언하기 어려운 사정이 많은 게 대학원생이므로... 같이 투덜거려줄 수밖에.





이번 학기에도 나는 조교다.

아직 졸업하지 못한 학부생 친구를 만나면 너 지금 조교랑 밥 먹는 거야~라고 농담을 던지곤 한다.


조교는 귀찮다. 하지만 돈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또 조교를 한다. 열심히. 채점해야 하는 과제물들과 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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