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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Oct 03. 2022

야근, 야근, 그리고 또 야근

새벽에도 불 켜져 있는 건물들

저녁을 먹는다. 커피를 한 잔 산다.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 어디야?

- 응 나 연구실 가려고.

- 밥은 먹었어?

- 맛있게 먹었지

- 그래,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사랑해

- 응응 엄마 나도 사랑해.


이 날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않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돌아오는 길, 연구실 건물은 밤늦게까지 군데군데 불빛으로 반짝거린다. 저기도 또 누군가 열정으로 불을 밝혀내어놓았겠지, 생각해본다. (더 높은 확률로는 낡고 지친 대학원생이 좀비처럼 실험을 하고 있을 터다.)

대학원 생활은 언제나 야근의 연속이다.






대학원에서 야근이란... 슬프게도 너무 당연한 일처럼 행해진다.

우리 연구실은 9 to 6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야근을 하는 이유도 참 가지각색이다.


시약이나 생물 연구를 하는 곳에서는 정해진 시각에 실험을 꼭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시약을 투여한 뒤 5시간 뒤에 꼭 경과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친구의 경우에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까지 실험하는 경우도 본 적 있었다.

또는,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래도 정시 퇴근으로는 기한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을 때, 대학원생들은 손쉽게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택한다. 보고서/제안서 시즌이나 논문 작성 시기가 주로 그렇다. 가끔은 교수님이나 사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일을 주시는 경우도 있다. 그럼 참을 인을 마음속에 백 번 새기면서 다시 꾸역꾸역 자리에 앉게 된다.

가장 좋은 야근은 "연구에 대한 의욕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인데, 자주 보이는 유형은 아니며, 주로 대학원 저학년 차에 많이 관찰된다.

 

초보 대학원생인 나도 지금도 자타공인 연구실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는 소리다. 병명은 "의욕과다". 조금만 더 해야지, 이것만 해놓고 가야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어 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더 이상 카페인도 내 집중력을 깨워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가방을 싼다. 불이 다 꺼진 복도를 걸어가면 내 발자국 소리만이 울린다. 이 건물에 깨어있는 사람이 나 혼자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 묘한 감상에 젖기도 한다.

가끔은 새벽에 퇴근하면서 다른 연구실에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음속으로 누구인지 모를 사람을 위해 어서 하던 일 끝내시고 조심히 들어가시기를 빌어 준다.






지난 학기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회사 생활은 어때? 좀 할 만하니?

- 힘들지만...

- 대학원 생활이랑 비교해서 말해줘

- 회사 일도 힘들지만 대학원이랑은 비교가 안되지

- (웃음) 회사는 뭐가 달라?

- 일단 회사는 정시 퇴근이라는 게 있으니까. 나는 6시면 퇴근하는데 그게 다들 자연스럽고

- 그렇지.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반 밖에 없어

- 게다가 대학원 때는 주말에도 당연히 나와야 했으니까


친구와 나는 서로 전공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달랐는데, 그래도 대학원 생활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대학원생의 생활이란 다 그런 것이었다.

친구도 나도 의욕과다형 인간이라 밥 먹듯 야근했었지만 역시 건강이 우선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학원 생활. 좋아하는 공부에 힘을 쏟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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