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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Sep 11. 2022

첫 해외 학회를 다녀와서 (2)

이것은 학회인가 여행인가 엠티인가

내가 참석한 학회는 거의 아침 일찍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었다. 고대했던 해외 학회라고 해도 꼬박 5일 동안 쉬지 않고 듣고 싶은 주제를 들으러 장소를 옮겨 다니고, 강연을 듣고, 포스터를 구경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연락처를 교환하는 일은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특히 이 모든 걸 영어로 해야 한다면 더더욱. 

MBTI가 부동의 I로 시작하는 나는 똑같이 말수가 적은 상대와 스몰토크를 해야만 했을 때는 딱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회가 진행되는 낮동안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제가 관심 있는 주제를 쫓아 흩어졌다 모였다 하기를 반복했다. 단톡방에서는 쉬지 않고 같이 강연 들을 사람을 구하는 구인 톡이 올라왔다. 단 음료를 싫어하는 나조차도 학회에서 제공하는 커피나 차에다 설탕을 잔뜩 뿌려서 당과 카페인으로라도 뇌를 깨워야만 간신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시간을 보내고 학회장에서 나올 때쯤에는 함께 간 랩원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학회를 가서 공부에만 충실했냐,라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올시다.


학회보다 내 기억에 더 인상 깊게 남은 건 낮보다 더 긴 밤동안 놀고 마셨던 시간들이었다.

랩 원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이 학회를 계기로 완전히 마음이 무장해제되었다.






내가 학회를 다녀왔던 시기에 한국에서는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방문했던 나라의 분위기는 너무나 달랐다. 학회장에서는 마스크를 꼭 착용하는 등 다소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도시는 마치 코로나가 종식된 양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학회 시간이 끝난 우리는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어 거리로 뛰쳐나갔다.

우선은 허기를 달래줄 맛집을 찾는 것부터. 주로 걸어갔지만 때로는 택시를 타는 과감함도 보였다. 발 닿는 곳 모든 풍경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의 유명 관광지부터 디저트 가게, 기념품 가게까지 학회에 참석한 그 어떤 연구실보다도 알차게 걸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일몰시간이 한국보다 늦어서 조금 더 늦게까지 놀곤 했는데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술을 마시면 마치 낮술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매일 바에 출석했고, 새로운 술에 도전했다. (이렇게까지 즐겨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이내 사라졌다)






어떤 날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몸이 아팠다.

이 기분을 언제 마지막으로 느꼈는지 생각해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엠티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술병이 났을 때 꼭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이 먼 타지에서 술병 같은 게 걸리다니? 심지어 나는 공부하러 왔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혀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조금 시름시름 앓긴 했지만 오후쯤 되어서는 완전히 회복하여 다시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곤 했다.


나중에 다른 학회 갔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하나같이 학회만 가면 술에 절여져서 온다고들 하더라.


나중에 사진첩을 정리해보니 온통 놀았던 흔적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첫 학회의 추억이고, 대학원 생활의 묘미려니 하고,

마음속 추억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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