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Oct 30. 2022

걷고 뛰는 밤

건강 지켜! 멘탈 지켜!

대학원생이 되면 절대적인 운동량이 부족해진다. 나른하게 꾸벅꾸벅 졸다 깨서 커피 한잔 마시다 보면 몇 년 전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대학생 때는 어쩜 그렇게 빨빨거리면서 잘도 돌아다녔는지 이제는 까마득한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이란. 어림도 없지. 한 뼘만 한 책상 앞에서 꼼짝도 않는 게 미덕이다.

본디 체력이 없는 나와 같은 대학원생이라면 일과 후 집에 와서 쓰러져 자느라 운동을 할 수 없고, 운동을 하지 않으니 다시 또 체력이 후달린다. 이렇게 되면 늘 피곤에 절여져, 깨어있는 시간마저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게 되는 끔찍한 악순환에 빠져버리게 된다.


물론 나 같은 게으른 학생들만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이 예시로는 연구실 동료 중에는 소위 말하는 "헬창"인 친구도 있는데, 이 친구의 하루 루틴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내가 지각하지 않으려고 세수만 겨우 하고 학교로 뛰어가는 날에도 그 친구는 새벽같이 운동을 하고 아침밥까지 챙겨 먹고 오더라. 마치 그의 삶이 일과 운동으로 일정표가 짜여 있는 것 같았다. 날 때부터 운동을 싫어하던 나와는 다른 종족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운동을 피할 수는 없다.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어른들은 "살기 위해" 운동한댔는데, 내가 그 어른의 전형인 셈이었다. 운동을 시작한 이유로는 20대인 지금 체력이 이 정도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하는 두려움 반, 지금 체력이 떨어져 일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데서 나오는 경각심이 반이었다.


처음에는 필라테스를 다녔다. 할인 쿠폰을 사용해서 운 좋게 아주 저렴한 가격에 몇 달치를 끊었다. 그러나, 필라테스는 너무 지루하고 귀찮은 운동이었다. 우선 집에 돌아와서 레깅스로 갈아입고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아주 고역이었다. 집과 필라테스 학원 사이의 거리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집순이인 나는 집에 오자마자 모든 것을 던져놓고 바닥에 일단 눕고 보는데, 그러면 정말 정말 나가기 싫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필라테스 때문에 일에 몰입해 있을 때 흐름이 끊기는 일이 잦아질수록 이건 내 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나에게 꼭 맞는 운동을 찾았다. 바로 산책, 그리고 러닝이었다. 운동 초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운동을 선택했다.


산책은 여러모로 좋은 활동이다. 산책은 정신을 단련해준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는 나는 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하염없이 걸으러 나선다. 쉴 틈 없이 시끄러운 머릿속이 멍하게 걷고 있으면 점차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마치 명상한 것처럼, 요동치던 수면이 잠잠해진다.


가끔은 뛴다!

런데이라는 달리기 어플이 한창 유행한 후에서야 나는 뒤늦게 합류했다. 떨어질 것 같은 다리!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 볼성사납게 큰 헉헉대는 소리! 허우적거리는 팔다리! 그러나 30분이 지났을 땐 너무나 개운한 감각이 돌았다. 와 이 맛에 달리곤 하는구나. 그때부터 속절없이 러닝에 빠져들었다.






나는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 러닝에 많이 의지했다. 연구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문제와 씨름하다 결국 패배한 날이면 나는 집에 돌아와 가방만 던져놓고 러닝화를 신고 공원을 뛰었다. 나에게 남아있는 온갖 일, 과제, 인생과 관련한 걱정을 떨쳐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나는 힘들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좋았다.

달을 보면서 달리는 밤들이 많았다. 뛰는 걸음걸음마다 걱정을 덜어놓은 채. 대학원생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학생들? 난 조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