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Nov 14. 2022

어느 대학원생의 소비 습관

엥겔지수 대폭발

나는 근검절약하는 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그렇게 배웠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할머니께서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경험한 세대라 그런지 아끼고 또 아끼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무엇이든지 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곤 했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러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나는 절약하는 걸 넘어서 <써야만 하는 곳>에도 돈 쓰기를 주저하는 어른이 되었다. 돈을 모으거나 버는 것은 참 어려운데 쓰기는 왜 이리 쉬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부모님께서 내가 푼돈을 벌기보다는 공부에 더 집중하시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용돈으로 생활하느라 조금 더 쪼들린 면이 없잖아 있다.)


현재, 나는 반(half) 사회인인 대학원생이 되었다. 처음으로, 얼마 되지는 않지만, 꼬박꼬박 월급도 받고 있다. 반 경제적 독립을 해버린 것이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개 짠순이 대학원생의 소비습관은 어떻게 되는가?






엥겔지수란 전체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왜 이 말을 설명하느냐. 내 소비 목록을 쭉 뽑아보면 그야말로 엥겔지수가 9할은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대충 알만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돈을 먹는 데 다 써버리곤 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나는 먹는다는 행위를 무지무지무지 좋아한다. "먹기 위해 산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생 때 나는 정말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만일 기대를 품고 먹은 밥이 내 마음에 들 정도가 아니라면 무조건 디저트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기분을 망쳐버리니까.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생각을,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생각을, 자기 전에는 다음 날 뭐 먹을지 생각했다. 대학원생이 된 지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둘째, 보통 엥겔지수는 저소득층에서 높다고 알려져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크흐흡) 이 부분은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도 조금 차이가 날 것 같다. 더 여유가 있는 연구실에서는 월급을 많이 주어 어쩌면 여유롭게 살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셋째, 다른 낙이 뭐 있나?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집-학교-집-학교의 굴레에서 유일하게 하루에 두 번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을 나는 꼭 알차게 즐겨야만 했다. 밥도 대충 먹으면 안 된다. 무조건 행복하게! 알차게!


아, 그리고 건강과 관련해서 돈이 엄청 나간다. 만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정말 건강에 신경 쓰기를 꼭 당부하고 싶다.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주변의 모든 대학원생이 나빠진 건강상태를 돈으로 어떻게든 복구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진료비, 약값, 건강보조제 지출이 생각보다 많이 나가고 있다.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 돈을 추가로 결제했다. 바보 같게도, 몇 달치를 한꺼번에 끊었다. 할부로 할 걸.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또, 자취를 하기 때문에 자취 관련 비용들이 많이 나오곤 한다. 월세, 전기요금, 가스요금, 수도요금이 그렇다. 그리고 샴푸, 린스, 주방용품 등등도!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고부터는 통신요금도 내 몫이 되었다. 소소하지만 거의 월급의 1/3을 홀랑 가져가 버리는 아주 무시무시한 녀석들이다.


조금 특이점으로 치자면 나는 무언가를 배우는 데 돈을 좀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악기를 배우거나 외국어를 배우는 데 말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자유로운 취미생활을 즐기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지출을 조금 줄여서라도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지 않으면 숨이 막혀서 안된다.






지출비용이 크지 않은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카페 값, 옷값, 술값, 교통비.

모두 대학생 때에 비해 소비가 줄은 부분이다. 공통점으로는 어딘가를 <나가>야 한다는 점이 있다. 대학원생의 나는 어딘가로 잘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동네 골목골목을 다 누비면서 예쁜 옷을 입고 인스타 감성 디저트를 자르던 내가 이제는 학교 주변의 가성비 좋은 백반집만 찾아다니고 쉬는 시간에는 어딘가에 쓰러져 자는 평범한 공대 대학원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는 가끔 "제발 학교만 가지 말고 나가 놀아"라고 하신다. 이게 대학원생에게 할 말인가 싶지만, 너무 좋은 나이에 청춘을 썩히고만 있지 않느냐는 엄마의 걱정스러움이 담긴 한 마디이리라 싶다.


하지만 돈이 굳는 건 좋은 일이다.






나는 얼마 전, 대학원생이 되어 처음으로 제대로 예적금을 들었다. 이전에도 적금은 푼돈으로 들긴 했지만 진지하게 앞날을 준비하며 드는 건 처음이었다. 슬슬 미래를 준비하는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 늦게 느껴버렸나?)


많다면 많고, 어리다면 어린 나이인 나.

돈을 잘 쓰기에는 너무 적게 벌고, 또 마냥 안 쓰기에는 벌이가 있긴 한 이상한 시기.

대학원생.


나는 점점 돈을 번다는 게 어떤 무게감을 지니는지. 어디에 돈을 써야 하고 쓰지 말아야 할지를 배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걷고 뛰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