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 이즈 마이 라이프

나는야 말하는 감자

by 웨지감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추가로 대학원 인턴 경험 다수, 대학원 n 학기 차. 시간은 흘러가고 내 가방끈은 길어진다.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세상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공부를 사랑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 생각할까? 그러나 전자는 맞고 후자는 틀렸다. 내게 대학원 과정은 항상 나의 무식(알지 못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하나를 알게 되면 두 개의 모르는 부분을 확인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건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뿐. 읽어야 하는 논문들과 들어야 하는 강의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나는 더닝 크루거 그래프의 절망의 계곡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래, 학부생보다는 내가 이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더닝 크루거 효과



나는 대학 졸업 때도 내 학위장에 대해 의심했던 것 같다. 나는 학업 과정을 다 이수했기 때문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사실 나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이 전공을 졸업했다고 말해도 되는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학부 수업 조교를 할 때도 나는 내가 채점자가 되는 게 아니라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쩌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성적을 좋게 받은 학생이 이 분야를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제 좀 알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올까? 기껏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드넓은 학문의 바다 중에서 내가 연구한 티스푼만큼의 지식에 대해서겠지. 그마저도 아직 논문 한 장 내지 못한 내게는 과분하다.


그러나 수많은 논문을 내신 교수님들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냥 학자란 끝까지 <말하는 감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하기야 다 알았으면 연구가 진행될 리 없겠지. 이미 오래전에 종결되었을 것이다.

나는야 말하는 감자. 아마도 평생 감자 신세일 우주의 먼지. 그렇지만 뭐 어떠냐. 세상을 탐구하는 감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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