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Jan 23. 2023

친구들과 사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

시절인연

친했던 이들과 세계가 달라지는 때는 매 삶의 분기점에서 찾아온다.

소울 메이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와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진 것처럼. 한 때는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삶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떠나보낸 사람이 많다.


나는 항상 인연을 붙잡고 싶어 하는 쪽이었다. 한때 친했으나 멀어지는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정에 기꺼이 먼저 연락하고 약속을 잡곤 했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게 인간관계인 법이라는 걸 나는 어릴 때 알게 되었다. 나는 친구라는 단어를 아주 무겁게 사용했는데 더 이상 그와 나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지 않을 때 나는 깊게 상처 입었다. 내가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른이 되어 새로운 또 다른 분기점을 만났다.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 다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지향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그러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직업과 목표 그 자체로써의 노동에 대해.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그러기 위해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사회인으로서 1인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대학원생이다. 나는 아직 돈을 버는 미래를 제대로 그려보지 않았으며, 그저 학문의 바다에 빠져 졸업을 향해 둥둥 떠내려가는 사람이다. 내 친구들 중 일부는 취업과 시험 준비로 잠적했고 일부는 대학원에 갔으며, 나머지는 취업을 했다. 다들 자기 앞가림하느라 정신이 없다. 서로 어쩔 수 없이 멀어지게 되는 분기점에 서 있다.


각자의 상황을 넘어 지속되는 관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다.


나는 같은 강의를 듣고, 시험 기간에 열람실에서 밤을 새우며 야식을 먹던 친구들을 뒤로한다. 이번에도 학점이 아주 망해버렸다며 캠퍼스를 빙빙 돌며 교수님 수업 방식에 투덜대고, 종강하면 학교 앞 낡은 술집에 모여 소주병을 까고 코인 노래방에 가서 열창하던 나날들을 뒤로한다. 캠퍼스에서 철없이 연애하고, 자신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생각해 마지않았던 때를 뒤로한다.


인생 최대의 고민이 연애 동아리 활동이었던 그 친구들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날이 오다니.






- 대학원 생활은 좀 어때?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나에겐 <언제 한번 밥 먹자>와 다를 바 없는 형식적인 질문같이 들리는 때도 있다.


나는 대학원 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내가 얼마나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지, 요즘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는 무엇인지, 일하다가 마주하는 불만은 어떤 게 있는지 나불나불 털어놓곤 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지인 중 일부는 몇 마디 더 물어보곤 금세 흥미를 잃곤 했다. 지금 당장 내가 잠을 줄이고 끼니를 대충 챙기면서까지도 매달려야 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시키는데 실패하곤 한다. 그리고는 침묵. 전에는 침묵조차 편안했던 것 같은데.


기계적으로 하는 반응과 마주하면 굉장히 머쓱하다. 아차. 내가 또 눈치 없이 나만 즐거운 얘기를 떠들었구나.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스스로가 그 친구의 이야기에 이렇게 반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회사 직급도 모르고 결혼이나 주식은 너무 먼 얘기 같으며, 하물며 2세 계획은 더더욱. 그러니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어쩌면 심드렁하게 받아들여버렸을지도.


우리는 다시 과거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몇 년 전인지도 가물가물한 그런 이야기들.

그래. 그때 그랬지. 아 너 그랬을 때 정말 웃겼는데. 맞아. 그 사람 정말 재수 없었는데 그렇지? 요즘은 뭐 하고 지낸대? 아 정말? 잘 됐네.


생각보다 빨리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아주 다른 세계에 살게 되었구나. 사실은 본디 달랐던 것이구나. 각자의 길을 걸어가다가 잠깐 마주친 사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어쩐지.






우리는 아마도 함께 공유하는 시간보다 다른 길을 걸을 시간이 더 길 것이며, 서로의 생활패턴, 흥미와 고민, 그 외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겠지.


시절인연이란 쓸쓸하지만 따뜻하다. 누가 처음 사용한 표현인지 마음을 울린다. 시절을 함께하였으나 이제는 자연의 섭리대로 놓아주어야 하는 인연이란.


달라진 것에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시절에 함께한 추억 덕분에 나는 그들에게 더욱 애틋한 응원의 마음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멀어지고, 또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나고. 다시 멀어졌다가 연락이 닿고. 언젠가 나의 파동이 그들의 것과 중첩될 때 다시 만나게  것이다.


삶은 고독하다. 영원한 관계란 없으며 오직 나 자신만이 함께할 뿐이다.

하지만 고독하지 않기도 하다. 인연은 다시 주기를 거쳐 내게 찾아올 테니까.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한 때는 속상하게만 느껴졌던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이 서서히 마음 깊이 와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은 해외 학회 준비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