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Jan 08. 2023

무식 이즈 마이 라이프

나는야 말하는 감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추가로 대학원 인턴 경험 다수, 대학원 n학기 차. 시간은 흘러가고 내 가방끈은 길어진다.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세상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공부를 사랑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전자는 맞고 후자는 틀렸다.


내게 대학원 과정은 항상 나의 무식(알지 못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하나를 알게 되면 두 개의 모르는 부분을 확인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 세상에 이렇게 공부할게 많다니!


공부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건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뿐. 읽어야 하는 논문들과 들어야 하는 강의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더닝 크루거 효과


흔히 말하는 더닝 크루거 그래프의 절망의 계곡에 내동댕이쳐버린 것 같다. 그래. 학부생보다는 내가 이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긴 하지. 그렇지만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교수님, 저는 말하는 감자가 맞다니까요.






나는 대학 졸업 때도 내 학위장에 대해 의심했던 것 같다. 내가 학업과정을 다 이수했기 때문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지만, 사실 나는 아는 게 없는데. 이 전공을 졸업했다고 내가 말해도 되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학부 수업 조교를 할 때도 이 과목은 내가 채점자가 되는 게 아니라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쩌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성적을 좋게 받은 학생이 이 분야를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제 좀 알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올까?

기껏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드넓은 학문의 바다 중에서 내가 연구한 티스푼만큼의 지식에 대해서겠지. 그마저도 아직 논문 한 장 내지 못한 내게는 과분하다.


그러나 수많은 논문을 내신 교수님들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냥 학자란 끝까지 <말하는 감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하기사 다 알았으면 연구가 진행될 리 없겠지. 이미 오래전에 종결되었겠지.


나는야 말하는 감자. 아마도 평생 감자 신세일 우주의 먼지. 그렇지만 뭐 어떠냐. 세상을 탐구하는 감자가 되자.


매거진의 이전글 세미나 공포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