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종강과 함께 끝나고 또 잔잔하게 바쁜 나날의 지속. 그 사이에 나는 첫 해외 학회를 다녀왔다.
나는 국내 학회는 몇 번 가봤지만 해외는 처음이었다. 아주 설레고 떨려서 몇 날 며칠을 학회 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라면 좋았겠지만 으레 그렇듯 시험과 과제와 업무로 아주 시름시름 병을 앓고 다녔다. 출국 전날에도 나는 조교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하지만 잠을 덜 자도 좋다. 해외 학회! 나 같은 초짜 연구자에게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지. 심지어 요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학회 일정이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어서 정말 오래간만에 열리는 해외 학회였다.
학회장에 들어가 수많은 포스터 앞에 서서 가장 처음으로 느낀 점은
- 와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필드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거지?
라는 것이었다.
- 내가 해결하고 싶어서 안달 나 있는 연구가 나만의 고민거리가 아니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는 거야.
연구를 하고 있으면 가끔 불안하고 외로울 때가 있다. 내가 어딘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치 없는 연구를 하고 있는지 같은 생각 말이다. 신규 논문을 읽어도 활자로 적힌 이름들이 나에게 큰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학회장에 들어가 실체가 있는 사람들을 보니 나만이 외로이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논문에서만 보던 얼굴 없는 이름들이 내 앞에서 걷고 강연하는 걸 보니 비로소 이들이 환상 속 인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학자라는 게 실감 났다.
참 신기하고 위안이 되는 경험이었다.
구두발표 (oral session)에서는 우수 포스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대부분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이거나 포닥 (post doctor) 과정생이었지만 간혹 석사과정 학생도 있었다. 다들 어쩜 저렇게 흥미로운 연구를 하는지, 어쩜 저렇게 조리 있게 잘 설명하고 질문에도 멋지게 대답하는지 신기했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큰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될까? 저기 서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부러웠다.
눈여겨봤던 포스터 몇 개에는 질문도 던졌다. 대답해주는 저자들의 눈이 자부심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너도 다음에 구두 발표해,라고 함께 온 연구실 선배들이 놀렸다.
웃으며 손사래 치면서도 잠시 저 몇십 명 앞에 서서 발표하는 나를 그려보았다. 과연 내가 저기 설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