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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Dec 12. 2021

커피 없이 정말 못살겠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 테이크아웃이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 과제 때문에 인터뷰를 좀 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나였으면 좋겠단다. 보수는 없지만 간단한 인터뷰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며 부탁해왔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던 나는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주제는 <카페인 중독>. 자기가 아는 지인 중에서 제일 카페인 중독자 같은 사람이 나란다.


    - 언니가 생각하기에 언니는 카페인 중독자인 것 같아?

    - 솔직히 나는 카페인 중독 아닌 거 같아 ㅎㅎ

    - 아 조용히 해! 언니는 카페인 중독인 거야!

    - 아 알겠어...


대학생답게 적당히 과제를 조작해내는 친구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럼 그럼. 원래 대학생의 과제는 적당한 조작이 국룰이지. 나는 기꺼이 동조자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뒤돌아서 또 혼자 생각에 빠졌다. 내가 그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나? 솔직히 억울했다.

나는 중독은 아니지! 니들도 다들 이만큼 마시잖아!!






맞다. 나는 자타공인으로 커피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명실상부한 어른의 음료인 아메리카노는 신처럼 떠받들고 있다. 식사 후에는 꼭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한다. 그래야 속이 내려가면서 소화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맵고 짜고 느끼한 음식을 먹은 날이면 아메리카노를 무조건 마셔서 소화기관들을 개운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오 아메리카노님. 나의 빛, 나의 소화제, 내 일상 지킴이시어!


언제 한 번은 연구실 선배가 나한테 왜 하필 쓰고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 있었다. 나는 소화제 대용으로 마신다고 답했다.


    "마시면 속이 개운하지 않나요?"


단 음료는 맛있지만 개운하지 않아서 즐기지 않는다. 선배는 혀를 찼다. 거 담배 폈으면 골초였을 놈일세. 마치 니코틴 중독자들이 식후땡을 하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벌컥 들이키곤 하는 내 커피...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하루 중 가장 졸리는 시각은 오후 2시다. 2시는 배부르게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일에 집중해야 하는 시각이다. 햇볕은 따뜻하고 오전의 바쁜 일과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때.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십중팔구 꾸벅꾸벅 졸고 만다.


커피를 사러 가기 귀찮은 날에는 연구실에 비치되어 있는 카누 커피 스틱을 타 마신다. 카누 커피 두 스틱을 털어 종이컵에 넣는다. 뜨거운 물을 조금만 컵을 빙빙 돌려 내용물이 잘 녹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여기에 찬물을 탈지 더운물을 탈지 잠깐 고민한다.


오늘은 추우니 따뜻한 커피가 좋겠다. 농도는 대충 색으로 가늠한다. 적당히 연한 갈색이 되면 끝. 이러니 맛이 없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하면서 마시는 커피는 진정한 커피가 아닌 것을. 진정한 커피란 주말에 카페에 앉아 노곤하게 햇볕 받으면서 한모금 음미하는 그 커피라고 나는 늘상 주장한다. 지금 마시는 이 액체는 오로지 카페인 수혈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러니 맛이 중요할까? 잠에서 깨는 것만이 중요하다. 목 넘김만 수월하면 장땡이다. 오히려 비싸고 맛있는 커피는 사치다.

물론 이 모든 문장이 정신승리임을 안다. 으흐흑...


아무튼 나는 오늘도 카누 커피를 마신다. 으웩 오늘은 물이 너무 적어 떫기까지 하다. 사약이다, 사약. 중얼거리며 사약 커피에 찬물을 더 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후후 불어 목구멍으로 넘기면 뜨끈한 음료가 일에 지친 내 마음까지 토닥여주는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커피는 나의 바쁘고 피곤한 석사 생활을 지탱해주는 큰 축이다. 카페인 없으면 도무지 하루가 효율적으로 굴러가지를 않으니 말이다. 연구실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커피를 홀짝이는 시간은 나름의 힐링타임이기도 하다.


커피는 나에게 <일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커피를 마셔서 자리에 앉으면 '자 이제 진짜 일 시작이야'라고 나에게 신호를 주는 것에 해당한다.

하도 커피와 함께 일을 시작했더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커피=일> 공식이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버린 걸까? 마치 뇌를 깨우는 버튼 같다.


그러니 경건한 마음으로 커피를 타야 한다. 커피를 탄다는 건 이제 곧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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