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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Jan 31. 2022

아끼는 옷은 일터에 안 입고 온다

화장은 사치 중의 사치다

나는 원래도 불편한 옷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 때도 교복 블라우스를 참지 못했다. (어떻게 블라우스를 입고 생활을 하지?) 그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항상 학교 체육복 차림이었다.

긴 수험생활을 끝내고 대학생이 되자 이런 생활을 고수해온 나도 멋져 보이는 옷을 입고 싶어 졌었다. 진정한 멋쟁이들은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나는 4년 동안 대학생활을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옷들을 입으며 보냈다.


그리고 다시 대학원생. 지금 나는 제2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내 옷의 가짓수는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지만 연구실에 갈 때 입는 옷은 항상 정해져 있다. 연구실에서는 무조건 편해야 한다. 헐렁한 셔츠의 바스락 거림도 예민한 대학원생은 참을 수 없다! 무조건 고무줄 바지! 무조건 맨투맨! 그것도 모자라서 답답한 거 싫어하는 나는 얇은 티셔츠 쪼가리 하나 걸치고 휘적휘적 출근하곤 한다.


대학원생이 얼마나 오래 앉아있는지를 생각해보라. 우리 연구실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그렇게 퇴근하는 사람은 몇 없다. 그냥 하다 보면 밤 10시를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소화도 안 되는 허리에 딱 맞는 바지를 12시간 넘게 입고 있으라고? 나는 그건 진짜 못 참겠다.


그것뿐만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실험이라도 하는 날에는 잘못하면 그 옷과 영영 작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험이 많은 연구실에는 거의 버리는 옷들만 입고 오기도 한다.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연구실)에 귀한 분(옷)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화장도 마찬가지다. 일단 나는 오래 화면을 보면 눈이 뻑뻑해서 주로 안경을 쓰고 다닌다. 안경 쓰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안경을 쓰면 화장하고 싶은 욕구가 최소 5할은 떨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아침에 화장해서 출근하면 뭐하는가. 저녁이 되면 애써 한 화장들이 자연스레 번지고, 밀리고... 수정 화장도 하지 않는 나는 그저 화장실 가서 화장 상태를 살피며 '오늘도 밖에 오래 있었구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거울 들여다보는 것도 신경 쓰인다. 여러모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다.


사실 그나마 나는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단정하다고 생각할 정도까지! 그리고 지울 때 수고롭지 않을 정도까지. 최소한의 품을 들인다. 

내가 아는 많은 대학원생들은 연구실에 올 때 아예 화장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나와 비슷한 이유다. 

거기 하나 덧붙이자면 화장을 해서 잘 보일만한 사람도 없다. (사실 잘 보일 사람이 있으면 더 문제 되는 게 연구실 생활이다)






주중을 옷장의 3할도 쓰지 못한 채로 보내면 주말에는 나의 꾸밈 욕구가 폭발하고 만다. 내가 바란 어른의 모습은 맨날 추리닝만 입고 뛰어서 출근하는 모습이 아닌데... 블라우스에 슬랙스 입고 코트를 걸친,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인데. 


그런 마음이 들면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어도 멋진 옷을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카페에서 타자라도 몇 자 치고 책이라도 몇 자 읽어야만 한다. 

그래 이거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단 말이야! 

사회적으로 보이고 싶은 나를 그렇게라도 표현해야만 한다.

나를 쳇바퀴 같은 추리닝 지옥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주말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주말은 그 가치를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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