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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Mar 10. 2023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불안은 이미 나의 곁에

대학원 입학 직전 나는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보냈다. 몸과 마음의 안녕을 위해서는 적어도 새벽에는 잠에 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괜히 핸드폰으로 대학원 준비 사이트에 들락거리곤 했다. 정신을 차리면 동이 트고 창틈으로 새벽빛이 들어오곤 했다.


갑작스럽게 전공을 틀어버린 나는 지독하게 겁에 질린 상태였다. 나의 지난 대학 생활을 돌아보았을 때 대체 남는 게 무엇이었냐는 회의가 들었다. 마냥 즐거웠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워 청승맞게 눈물 뚝뚝 흘리던 밤들이 있었다.


나는 철없이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 각종 고시,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정해진 길을 따라서만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훗날 무엇을 하게 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앞에 놓인 게 절벽인지 돌부리인지 알 수조차 없는 두텁게 안개 낀 길을 걷는 것 같았다.


내가 대학원에 가서 학문의 길을 는다면 나는 앞으로도 이 같은 불안에 떨며 생활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나는 대학 입학 이래 처음으로 대학원에 가겠다는 의지가 꺾였었다.


졸업 후 한 학기 수료 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일단 석사만 해보고 다음 일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천성이 겁쟁이에 엄살쟁이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는 나에게 참 버거웠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일어나게 될까 봐 떨었고,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루트에서 벗어나게 되는 조그마한 좌절에도 인생이 끝장난 듯 굴었다.


나는 한국식 사고에 너무 길들여져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감각에 너무 예민한 것 같았다. 이 나이에는 이런 걸 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질색하면서도 그에 어긋나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러니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대학원 입학은 나에게 도전이었다. 장녀로서 빨리 졸업해서 취직하고 돈을 모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집안 어른들의 바람에 반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주하고 싶은 나의 욕망을 거스르는. 나는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면서도 꿈을 꾸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연구실에 앉아있다 퇴근할 때면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나중에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지는 고민들이지만 대학원생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알 도리 없는 생각들이다.


불안하고 걱정 많은 나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는 청춘의 고민을 하고 있노라고. 젊은 시절에는 원래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으니 모두 두려운 것이라고.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어 살아갈지를 결정하기 시작하는 나이라 당신도 정말 많이 고민했더라고.

엄마는 이 고민이 청춘의 특권이라고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도 슬퍼진다. 다들 이 불투명한 미래를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길이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이 자주 부럽다가도 지금의 삶을 포기하기 싫은 건 이게 내 오랜 염원 이어서일까, 아니면 어떤 종류의 오기일까.


어쨌거나 나는 아직 포기할 마음이 없으니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대면서 계속 걸어가야겠다.


너무 비관하고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에 논문 한 줄이라도 더 쓰고 운동하고 잠을 자기로 했다. 이미 이 파도에 내리지 않기로 해버린 나에겐 고민할 시간조차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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