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Mar 27. 2022

소소한 실패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는 방법

그래도 연구는 계속된다

짧게나마 연구 생활을 한 나도 깨달은 게 있다. 연구는 절대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척하면 척, 하기만 하면 뚝딱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절대! 절대로 연구는 순순히 흘러가지 않는다.


결과는 언제나 기대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떤 때는 원인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단순 실수를 했을 때였다. 예컨대, 코드를 한 줄 잘못 썼다거나. 그러면 짜증은 확 나지만 꾹 눌러 참을 수 있다. 실수는 바로잡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많은 경우 원인조차 알 수 없다. 힘든 과정을 거쳐서 겨우 결과를 봤는데 완전히 가설과는 반대로 나왔던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어느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든 심폐소생술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 그날은 멘탈이 박살이 난다. 정말 "때려치우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선 생각해야 할 점. 실패는 누구나 한다.

실패하지 않는 연구란 없다. 이것은 어떤 교수님이라도, 어떤 대학원생일지라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어렵지 않고 쉬운 연구는 연구가 아닌 거 아니야?" 언젠가 내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동료가 얘기한 말이다. 지당한 말이다. 쉬운 게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우리는 세상에 없었던 지식을 발굴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벽에 부딪치고 넘어진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둘째. 실패로부터 알게 되는 점은 무조건 있다.

나는 최소한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부 쓸모없는 시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적어도 한 가지 선택지가 걸러졌으니 말이다. 왜 내 결과가 망했을지 이유를 생각하면 또 새로운 접근방법이 떠오른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위대한 발견은 때때로 실패로부터 비롯되곤 하지 않는가. 가설과 달라도 과정이 옳았다면 결과를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혹시 모르니까!!






이 모든 걸 알아도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이럴 때는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연구실을 나간다. 내게 불행한 감정을 들게 한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좋다. 맛있는 커피를 사러 가기도 하고, 친구를 불러 잠깐 수다를 떨기도 한다. 멍 때리면서 산책을 하기도,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괜히 도서관에서 책도 한 권 빌려본다. 

(물론 더 힘들 때는 술도 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힘들 때 알코올은 자제하려는 편이다.)


가장 효과가 좋았던 방법은 산책이다. 

산책하러 나가면 많은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운동복을 입고 파워워킹으로 걷는 어르신들. 3분에 한 번씩 샛길로 빠지는 강아지들과 그런 강아지에게 끌려다니는 견주들. 조잘조잘 수다 떠는 친구들, 연인들. 

내가 모르는 새 색이 더 짙어진 풀빛. 눈 깜짝할 새 바뀐 계절. 

모두 연구실 안에만 앉아있어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연구실 건물 안에서는 내 연구가 삶의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 조금만 나와 보면 여전히 밖에서도 삶은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실수를 하거나 연구 결과를 망쳐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된다. 연구는 실패했지만 내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또 실패하고 또 방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연구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에 따라 내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더라도.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악을 지르더라도. 어떤 때는 진짜 다 때려치우자며 소주병을 까게 만들더라도. 그래도 한참 걷고 나면 또 기운 내서 도전하는 게 나의 석사 생활의 전부다. 망망대해를 걷다 보면 언젠간 보석을 건져 올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패배감에 나를 침잠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님, 그 미묘한 관계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