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Apr 04. 2022

크게 아프지 않되, 성한 곳 없어라

졸업하면 건강해지겠지?

유독 일이 갑자기 몰리는 때가 있다. 몇 주 연속으로 발표를 준비하고, 강의를 듣고, 세미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조교일을 했다. 보고서를 드디어 업로드하고 집에 가서 쓰러져 잠든 그다음 날. 어라, 입 안쪽이 어쩐지 뜨끔거린다. 아, 어쩐지 요 근래 몸이 너무 피곤하더라니. 결국 또 혓바늘이 돋았다. 혓바늘로부터 쭈욱 이어진 목구멍까지 따끔거린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십몇 년 간 쌓아온 빅데이터에 의하면 분명 몸살의 징조였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조용히 유자청을 찬장에서 찾았다.






대학원생은 아프다.

한 친구는 호르몬 조절에 이상이 생겨서 한 때 병원을 다녔더랬다. 

다른 친구는 늘 건강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디가?라고 물으면 병원!이라고 했다)

슬픈 일이지만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언제 한 번은 사수 선배가 말씀하셨다.


    - 대학원생은 크게 아프면 안 돼. 실험 일정에 지장이 가거든. 연속으로 실험해야 하는 때도 있고 실험 시기가 중요할 때도 있잖아.

    - 아 그렇죠. 건강 관리 잘해야죠.

    - 그렇지만 대학원생은 자잘하게 성한 곳이 없어야 해.

    - ???


그때 나는 연구실 인턴이었고 근무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제대로 된 실험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어딘가 시름시름 아프던 연구실 선배들을 생각하자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크게 아프면 안 되지만 성한 곳이 없는 대학원생" 이란,

크게 아프면 (실험 일정에 지장이 가니까) 안되지만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성한 곳이 없는

대학원생...


그러는 선배도 대학원에 들어와 디스크가 재발하신 분이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결심했다.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해야겠다고.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고 연구실 생활을 한 지 6개월 만에 목디스크가 생겼다. 원래도 디스크가 있었는지 아닌지, 연구실 생활 때문에 악화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즈음에 디스크를 발견한 건 분명하다.


어디 디스크뿐인가? 살도 쪘다.

체중 증가는 어지간한 대학원생이면 다 경험한다. 그래 매일 의자에 앉고 스트레스는 먹는 걸로 푸니 살이 안 찔래야 안 찔 수가 없다. 원래는 허리가 남았던 바지가 이젠 꽉 낄 때 진짜 눈물이 핑 돈다. 매번 "다이어트해야지" 결심하지만. 스트레스 많은 연구실 생활에서 먹는 것까지 조절하라고? 기력이 너무 딸린다.


워낙 화면을 보는 일이 잦아 안구건조증도 생겼다. 시력 저하는 덤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입학한 동기도 요즘 시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라섹했던 다른 대학 동기도 요즘은 안경을 쓰고 나타난다. 그렇다고 화면을 안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비타민과 루테인, 오메가 3을 경건한 마음으로 복용하며 제발 더 이상 눈이 나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빌어본다.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까꿍 하고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다가 소화불량도 새로 생겼다. 한마디로 내 위장은 너덜너덜해졌다. 평생 먹어본 적 없는 소화제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하기에는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시작된 증상이라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마음의 병인 듯하다)


거기다 나는 원래 잔병치레가 잦다. 피곤하면 금세 감기가 생겼다, 몸살이 생겼다 한다.


사람 살려!






여기서 내가 취한 방법은 바로 영양제에 의존하는 거다. 물론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제일 좋다는 거 안다. 나름 노력은 한다.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하고, 운동도 하려고 노력한다. 야채도 최대한 먹고 군것질도 줄이려고 시도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도 한다. 눈도 피로하지 않게 틈틈이 의식해서 쉬어준다.

하지만 자유에 제약이 있는 대학원생은 인공적인 방법에도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더 빨리 좋아지지. 적어도 덜 나빠지지.


주변을 보면 다들 먹는 비타민, 약, 즙도 다양하다. 다들 다양하게도 아프다.

그나마 졸업한 선배 말을 들어보면 연구실에서 딱 나오자마자 거짓말처럼 건강이 회복되었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저 밖에는 자유와 건강이 있을 거라고!

서로 더 아프지 말자고 옆자리 애랑 토닥이며 오늘도 버티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한 실패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