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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May 21. 2023

대학원생 인터뷰 #3

야망 있는 뽀로로 박사

세 번째 만남은 아주 다재다능한 매력을 지닌 대학생 때 만난 동기였다. 학부 때도 취미도,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그는 어느새 대학원생이 되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도 밝음을 잃지 않는 그와 만나보았다. 나는 서울, 그는 지방에서 연구실 생활을 하였기에 줌을 통해 비대면으로 만나게 되었다.







감자: 현재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 저는 석박통합과정 3년 차에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감자: 가명은 뭐로 하실 건가요?

???: (고민) 어렵다. 이게 제일 어렵네요. 어려워요... 제 취미를 고려해서 뮤직이즈마이라이프로 하겠습니다.


감자: 대학원 전공은 무엇인가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저는 생명과학부 소속으로 신경과학 전공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뇌에서 가치를 어떻게 표상하는지,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감자: 전공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뇌과학 전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전공이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결심했고요. 그 후로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라는 책에서 거짓 기억이 형성되는 실험을 본 적 있어요. 그 연구에서 세계적인 사건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설문을 진행한 뒤에 2년 반 후 다시 동일한 질문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절반 이상이 아예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며 내가 믿고 있는 기억이 진짜 내 기억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어떻게 이렇게 가짜로 기억할 수 있는지. 애초에 기억은 어떻게 생기는 거지? 그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기억에 대한 건 뇌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토픽이잖아요. 이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감자: 저도 꾸준히 같은 전공에 흥미를 가졌지만 세부주제는 계속 바뀌었거든요. 흥미가 유지되는 게 신기하네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계속 흥미도 있었고, 사실 그 사이에 많은 공부를 하지 않은 것도 있었어요. 계속 공부를 했다면 다양한 다른 흥미로운 것들도 알게 되었을 텐데, 저는 그거에만 사로잡혀 있었죠. (웃음)

감자: 하지만 대학생활은 재밌게 보내셨더라고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너무 즐겼죠. 아직도 덜 즐긴 게 아쉽습니다. 저는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많았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한 게 한입니다.


감자: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가치의 표상과 기억의 저장입니다. 서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토픽이에요. 가치의 표상은 경험에 의거하여 만들어지지만 완전히 기억 그 자체는 아니에요. 관련이 있지만 분리되어 있죠. 뇌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유전자부터 뇌의 구조 단계까지 다양한 레벨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 뉴런들 간의 관계와 뇌 영역의 기능, 그러니까 뉴런보다 하나 윗 단계를 주로 봅니다.


감자: 실험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줄 수 있다면?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쥐에게 물을 주는 실험을 해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고, 물이 확률에 따라 다르게 주어져서 쥐가 경험에 의거해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의사결정을 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뇌에서 세포들이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보려고 합니다. 기억과 가치에 대해서는 전전두엽 피질과 해마가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사이에 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역을 연구 중입니다. 중요해 보이는데 아직 밝혀진 게 많이 없는 곳이에요.


감자: 학위과정 중 가장 좋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사실 딱 떠오르는 건 4학기 때쯤에 춤동아리 들어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춤추고 싶어서 아이돌 커버댄스 소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좀 아쉽더라고요. 4년은 더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혼자 춤추거나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 싶어서 동아리를 들어갔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들어가 보자! 하고요. 너무 재밌고 지금도 공연 준비한다고 바빠요.

감자: 취미는 참 중요한 거 같아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스트레스 분출하는 곳이 필요한 것 같아요. 춤 안 출 때는 오히려 랩 권태기가 심했어요. 실험도 안돼, 공부도 하기 싫어, 무기력해... 춤을 추면서 활기를 되찾았어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취미지만 연구에 도움이 됩니다.


감자: 일적으로는 어떤 게 좋으셨나요?

뮤직이즈라이프: 제가 1~2년 차에 뇌에 전극 넣어서 스파이크 잡아보는 실험을 연습했는데 처음 수술했던 쥐에서 신호가 굉장히 잘 잡혔어요. 일반적으로는 뇌에 뉴런이 많이 있으니까 전극을 넣으면 당연히 스파이크가 잘 잡힐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이게 잘 안되거든요. 처음에는 성공하기 어려운데 저는 처음에 잘 됐습니다. 그게 되게 기분이 좋고 뿌듯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쥐에서는 망했습니다.

감자: 역시 초심자의 행운이 있네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제가 원래 처음 배웠을 때 제일 잘하고 두 번째부터는 망하는 편입니다. (웃음) 이게 수작업으로 세밀하게 하는 작업이 많아서 처음에는 조심조심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안 그래서 망한 거 아닐까 생각해요.


감자: 학위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는 게 어렵네요.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고. 일단 <내 연구 구려> 병이 있죠? 제가 주제를 정한 지 1년 정도 되었어요.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실험을 진행했는데 뭔가 이것저것 다 해봐도 효과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몇 달 동안 애를 먹었고 지금도 그 상태예요. 빨리 뭔가를 해봐야 할 텐데 실험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몇 주 동안 쥐를 학습시키고 장치 셋업하고 할게 많습니다. 그래서 미루기도 하고 당장 급한 일부터 해치우다 보니까 몇 달이 훌쩍 지나가고 3년 차가 되어 버렸네요.

감자: 너무 공감됩니다. 한 곳에서 막히면 빠져나오기가 힘든 것 같아요. 결단을 딱 내리는 게 필요한데 그게 무섭죠.

뮤직이즈마이라이프: 딱 그 느낌이에요.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두려운 거죠. 내 시간과 내 연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는 점이 무서워요. 그러니까 미루는 거예요. 좀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을까? 그 사이에 뭔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감자: 교수님께서 피드백을 많이 주시지 않으시나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많이 주시죠. 그런데 그것도 제가 이것저것 해봐야 결정을 내리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그리고 저는 선배들이 3년 차였을 때 제가 봐온 모습과 제가 3년 차일 때 저를 볼 때 갭이 너무 큰 것 같아요. 3년 차인데 아직 이 자리라는 게...

감자: 너무 슬퍼.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시간이 빠르다는 것, 내가 아직 이것밖에 안된다는 점... 그게 힘듭니다. 가끔 마음을 다잡고 이것저것 해보고 공부해야지 생각하지만 잘 안됩니다! (당당) 뒤돌아보면 놀고 있거든요! 나만 이렇게 누구보다 많이 노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지만 참 마음잡기 힘드네요. 의지박약인가 봐요. 갑자기 왜 이렇게 비관적이 되었지? 어떻게든 되겠죠.

감자: 급하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항상 발이 불탈 때쯤 시작합니다. 학부 때도 이미 발은 다 탔는데 이젠 해야 해! 이런 느낌이었어요.

감자: 지금은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불은 항상 날아오고 있죠. 거의 발에 착지 직전이에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일단 내 발등의 불보다 나의 피로와 우울함이 먼저라서요. 그래도 어떤 날은 열심히 살고, 어떤 날은 설렁설렁하고 그럽니다.

감자: 그렇지만 제가 지켜봐 왔던 뮤직이즈마이라이프님은 항상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잘 해내실 거예요. 지금 너무 달려서 지쳐버리는 것보다 어쩌면 나을 수도 있어요.


감자: 대학원생이 가장 중요하게 갖추어야 할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MBTI로 치면 T가 강한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실험에 실패해서 속상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잘 분리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 결단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원래 F였는데 대학원 가고 나서 약간 T스러워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실패에 대해서는 유리멘탈인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좀 더 저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볼 수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감자: 연구가 잘 안 되는 시기는 진짜 누구나 있잖아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제가 주제를 정하던 당시에 매 미팅 때마다 주제를 들고 가도 리젝되던 때가 있었어요. 기대와 좌절의 반복이었죠. 대학원에 오는 사람들이 다들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 가고, 인생이 크게 좌절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대학원에 갔을 때 처음으로 좌절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잘만 살다가 마주하는 첫 좌절. 당연히 마주하는 거고, 나만 맞이하는 좌절은 아닌 거죠. 이 좌절을 잘 극복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감자: 대학원 연구실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일단 분야에 대한 흥미, 교수님의 인품, 생활에 대한 조건들 순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연구실의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걸 질문하셨는데 제가 지금 몇 가지를 얘기한 거죠? (웃음)

감자: 그래서 현재 랩에는 전반적으로 만족하시나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연구실 자체는 만족합니다. 교수님도 좋으시고 시설도 좋아요. 지역도 지방이지만 익숙하고요.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관계 문제는 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순조롭게 연구실을 택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감자님은 무엇이 중요했나요?

감자: 저는 진짜 무조건 분야 보고 왔습니다. 제가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딱 그 당시에 너무 하고 싶었던 과제가 시작되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게 운명의 데스티니라고 느꼈어요. 고난과 역경의 시작인 줄은 모르고.


감자: 대학원 과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싶다면?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갈지 말지 고민인 건가? 그렇다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커서 당연히 갔는데요. 누군가 고민 중이라면 내가 얼마나 알고 싶은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단순이 취업을 위해서라면 버티기 힘들어요. 재미있어도 힘들거든요. 대학원을 가야만 한다면 마음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가거나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하기를 추천합니다.

감자: 저도 보통 재밌어도 힘드니까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게 조언이었어요. 또 전공 분야가 좁아지기도 하잖아요? 취업하기에 사실 단점일 수도 있거든요 이게.

뮤직이즈마이라이프: 그리고 저는 또 취업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저는 대학원이 당연했기 때문에 다른 길을 생각 안 했는데 이제 와서 주변을 보니까 다들 취업해서도 잘 살고 다른 전공도 살리기도 하고. 석박보다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요.

감자: 그래도 기술이 있으니까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동물 실험 경험이 있으면...

뮤직이즈마이라이프: 다른 걸 해야 취업이 잘 되긴 하지만 어디든 길이 있긴 할 거예요. 저는 근데 교수까지 하고 싶어요! 제 연구실을 차려서 뭘 알고 싶습니다! 저는 야망이 큽니다!

감자: 멋있어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실천해야 멋있지


감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대학원 진학을 하실 건가요?

뮤직이즈라이프: 그렇죠. 이걸 알고 있어도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과거로 돌아간다면 춤동아리는 좀 더 빨리 시작하려고요.


감자: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으세요?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어차피 모르는 거니까 행복회로를 돌리자면 일단 졸업을 30살 전에 할 거고요. 포닥을 가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한국에서 교수를 할래요! 물론 운이 좋아야 합니다.

감자: 다 운이죠. 논문 내는 것도 운이고, 어떤 리뷰어를 만나는지도 운이고.

뮤직이즈마이라이프: 잘 따라주면 감사한 거고, 그렇지 않으면 좀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고.

감자: 우리 둘 다 열심히 해서 나중에 학계에서 만나면 좋겠네요. 가능하면 협업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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