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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May 29. 2023

대학원생 인터뷰 #4

대학원생이여, 깨어있으라

초등학생 때 만나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나에게는 아주 생소한 어문계열 전공을 하고 있는 그는 현재 무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나른한 일요일 아침, 나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잠옷만 입고 그와 줌으로 만났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흡사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맹구 같다며 자신의 가명을 맹구로 적어주기를 요청했다.







감자: 현재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맹구: 저는 박사 1학기입니다. 대학원 3년 차 학생이죠.


감자: 대학원 전공은 무엇인가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맹구: 저는 국어국문학과 국어학 전공생입니다. 한국어의 문법을 연구하고, 어떻게 문자를 구성하는지, 원리는 무엇인지, 다른 언어랑 비교했을 때 독자적인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합니다.

감자: 이공계 입장에서 참 신기한 전공인데, 재미있으신가요?

맹구: 도대체 이걸 왜 하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마냥 추상적인 건 아니에요. 한국어는 말하고 사용하는 거잖아요. 그걸 누군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요. 외국인에게 가르칠 때도 필요하고요. 말도 자꾸 변화하니까 왜 우리가 이런 말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할 때 우리 학문이 필요합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꽤 재미있죠.

감자: 약간 역사 전공 같기도 하네요.

맹구: 그렇죠. 현대 국어 문법을 전공하려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도 빠삭하게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부적으로는 국어사도 있는데 이건 과거의 언어에 초점을 두는 학문이에요.


감자: 전공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맹구: 원래는 겨레말큰사전이라고 하는 남북한 공동 사전을 만드는 사업에 대해 접하고 나서 우리말을 연구해서 사전 편찬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걸 계기로 국어학을 전공하게 되었죠. 문학 쪽은 원래 관심이 있었지만 학문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감자: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요?

맹구: 지금까지는 '나'에 대한 내용을 말할 때와, 타인에 대한 내용을 말할 때 달라지는 표현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령, 나의 마음을 말할 때는 '기뻐'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걸 말할 때는 '저 사람은 기뻐하네'라고 달리 말하는 것처럼요. 이런 것처럼 같은 의미를 여러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한 표현을 선호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등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감자: 말하기 방식에 있어서 무엇을 강조할지 선택하는 것과 관련 있는 건가요?

맹구: 그렇죠. 단순히 규칙을 상정하는 식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언어 외적인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인지 측면에서 살펴본다던지, 왜 그런 표현을 사용하려고 했는지 이유를 밝히려고 합니다. 다른 학과랑 걸쳐있는 측면이 있죠. 너무 인간의 언어를 규칙으로만 설명하려고 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감자: 저도 잘은 모르지만 언어심리학이라는 분야도 있더라고요. 협업하면 재미있겠네요.

맹구: 저도 협업도 해보고 싶어요.


감자: 학위과정 중 가장 좋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맹구: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도 제가 관심 있는 전공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게 참 많지 않습니까? (웃음)

감자: 정말 찐 학자 마인드시네요.

맹구: 그리고 지도 교수님을 만난 것도요.

감자: 엄청 의지가 되시는 분인가 봐요.

맹구: 여러모로 학생 생각을 많이 해주시고 따뜻하신 분이라서요. 공부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걸음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학문적 부모님이시죠.

감자: 이상적인 지도교수님이시군요.


감자: 학위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맹구: 석사논문 쓰는 거요. 제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 같습니다.

감자: 왜 그런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맹구: 주제 정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정한 뒤에도 구체화가 가장 큰 문제점이었어요. 이미 많이 연구된 학문을 연구하다 보면 '내가 무슨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석사 논문을 통해서 새로운 이론을 말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눈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목도했을 때 좌절했어요. 어떤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른 뒤에 찾아보면 옛날에 이미 연구가 되어있고요.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연구가 있다는 게 반갑긴 한데 오묘한 좌절감이 느껴졌고요.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내가 원래 어떤 걸 연구하려 했는지 연구 주제도 흐려졌어요. 이것저것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연구 주제나 문제의식이 흐려지지 않았나 싶네요.

감자: 정말 괴롭죠. 그런데 제가 어디서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초반에 떠올리는 어지간한 연구 주제는 무조건 누군가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말이죠. 그런데 이게 점점 논문 읽으면서 떠올리는 연구 아이디어가 최근에 나왔으면 이 분야 트렌드를 따라잡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생각이 진짜 연구거리가 되긴 했었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결코 허튼 생각은 아니었다는 거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자: 대학원생이 가장 중요하게 갖추어야 할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맹구: (고민) 성실함? 그렇지 않을까요. 연구 주제를 잡을 때도 갑자기 뿅 떠오르는 사람은 없어요. 논문을 읽을 때도 꼭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꾸준하게 연구해야 해요.

감자: 단순히 계속 일하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맹구: 그래서 우리 교수님 중 한 분은 "학자는 쉬는 시간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항상 생각하고 뇌를 돌리고 있으라고 얘기하셨어요. 우리 지도교수님도 하루에 딱 2시간만 집중하면 분야에 대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온전히 몰입해서 집중하는 2시간.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하루에 2시간씩 연구 주제를 구체화하고 연구하면 진짜 1년에 논문 2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보통은 그렇게 잘 못하죠.

감자: 이건 좀 동기부여가 되네요. 저도 막히는 부분이 생기고 연구 권태기라 할 수 있는 게 오니까 기계적으로 일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사실 아무리 단순노동을 하더라도 머리를 써야지만 발전이 있으니까요. 깨어있어야 해요.

맹구: 진짜 24시간 깨어있어야 해요.


감자: 지도교수님을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맹구: 너무 당연하겠지만 지도교수님의 연구 스타일이 나랑 맞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제가 세부적으로 다양한데 그 관심사에 맞는지가 중요해요. 저는 교수님 논문을 보고 선택했습니다. 문제의식을 밝히고 예상되는 반론을 조목조목 짚어서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감자: 정말 존경해서 제자가 되셨네요.

맹구: 수업을 먼저 듣고 재밌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가보고 싶었는데 논문 읽으면서 더더욱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감자: 대학원 과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싶다면?

맹구: 오기 전에 생각했나요? (웃음)

감자: 뭘 생각하면 될까요?

맹구: 구체적인 플랜이요. 언제 수료를 하고, 이런 것이요... 그런데 저도 인생 플랜이 없네요. (엉엉) 막연한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좌절감을 가지는 사람은 오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저는 그래도 내가 이 과정을 하면서 굶어 죽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감자: 저도요. 굶어 죽기야 하겠어?

맹구: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게 힘든 사람은 오지 않는 게 낫지 않나 싶네요.


감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대학원 진학을 하실 건가요?

맹구: 아니요? 안 할 건데요. 과거 언제로 돌아가는데요?

감자: 오잉? 의외시네요. 과거 언제로 돌아갈지 상상은 자유죠.

맹구: 만약에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아예 이공계를 선택할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아주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예체능을 할지도? 다른 걸 쉽게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닌데, 새로운 걸 해보고 싶습니다.

감자: 그래도 전공... 사랑하시죠?

맹구:... 인터뷰 계속 진행해 주세요.


감자: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으세요?

맹구: 와 10년 후면 몇 살이야? 징그럽다 진짜. 그때는 임용되어 있으면 좋겠네요. 어렵겠지만. 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감자: 좋은 배우자와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맹구: 선배들께 결혼에 대해 여쭤볼 때도 있는데... 힘든 것 같더라고요. 여자들은 아이 낳고 학계로 돌아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해요. 박사학위 받고 공백이 생기면 돌아오기 힘들다 하더라고요. 우리 교수님께서는 차라리 박사 수료하고 아이 낳고 키운 다음에 소논문을 쓰면서 학위논문 준비하는 걸 추천하셨어요.

감자: 보통 박사들 실적을 5년으로 보니까 그런가?

맹구: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감자: 맹구님의 학위과정에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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