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by 조윤효

소설 속 배경이 되는 통영을 가보고 싶을 만큼 글의 서술이 매력적이다. 소설 서두 부분에 통영 지형에 대한 작가만의 깊이 있는 설명이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작가 박경리 선생님에게 묻고 싶었다. 삶의 소소한 행복감의 나열보다는 굵직하게 사람을 짓누르는 그 큰 덩어리들 같은 아픔들을 소설 사이사이 마치 삶의 마지막을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로 놓으신 이유가 궁금하다.


오래전 '토지'라는 드라마로 인해 그녀 작품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었다. 오히려 읽기를 주저했던 이유는 가끔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다. 장밋빛 인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삶의 무거움에 대한 진한 회색빛 인생이 전개될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읽기를 미룬 것 같다.


배경은 한일 합방 전부터 그 이후 20년 가까이를 기점으로 한 소설이다. 구수한 사투리가 인물들의 정감을 더해 준다. 초반부 소설 전개는 빠르게 이루어진다. 누군가 우리의 삶을 필름 돌리듯 그렇게 빨리 돌려 버린 다면 살아온 날들 중 어떤 것들이 크게 두각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통영 유지 집안에 큰 아들은 몸이 허약한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성질이 불같아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자신의 부인의 결혼 전 혼인을 못 이룬 남자를 그 부인과 함께 죽이고 만다. 그 후 집을 떠난 후 다시는 책 속의 삶으로는 나오지 못한다. 폐허가 된 집을 두고 둘째 아들의 아이는 큰 아버지 집에서 성장하게 된다. 소설 속 배경 가족은 두 아들의 가족과 딸의 가족이 중심을 이룬다. 특정 주인공이 1인칭으로 끌고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자 입장으로 사람 대화 중심으로 사건과 작은 소제목 형식으로 다양한 공간 이동을 통해 전체적인 흐름이 흘러간다.


성년이 된 둘째 아들의 아이가 바로 '김약국'이라 불리며 그의 딸들과 얽히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삶의 속도가 느려진다. 한 약방을 물려받아 그곳에서 살아가기에 그를 김약국이라 부른다. 첫아들을 잃고 그 아래로 다섯 딸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일찍 과부가 되어 돈만 박히는 딸로 전락한 첫딸 용숙, 통영의 또 다른 유지 정국주 가문의 아들, 홍섭과 혼인까지 갈 뻔했지만 남자의 변심으로 졸업 후 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아들 같은 딸 용빈. 외모가 뛰어났지만 마음은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인 셋째 딸 용란은 어려서 거두워 키운 머슴 아들 한돌이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결국 광녀가 된 딸..... 예견된 불행은 책을 더디 읽게 한다. 반대로 예견된 행복은 책 읽는 속도를 높여 준다. 계속 이어지는 불행의 행렬을 통해 한 집안의 몰락을 덤덤하게 그려 낸다.


무거운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삶이 너무 거칠고 힘들어 보여 시대상은 상대적으로 두각 되지 않는다. 개개인의 행복이 마치 운명에 따른 항해처럼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각자의 삶의 결말을 바꿀 지에 대한 답도 없다.


그래서 질문하게 된다. 박경리 선생님이 이 소설 속에 어떤 삶의 원칙을 심어 놓으셨을까?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무기력한 개인들에게 무엇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생각이 물처럼 흐르는 소설이다. 한 개인의 삶은 돌아보면 소설처럼 짧다. 앞이 보이지 않아 무한할 것 같은 삶 속에서 유한성을 알려주는 게 소설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굳이 희망을 이야기해보자면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 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삶의 방향을 틀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희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마음에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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