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믿는다는 것] - 다나카 시게키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아이가 잘 자라거나 또는 문제아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문제아이는 없다. 단지,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은 부모의 양육방식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시사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관련 책을 보고 관련 동영상이나 자료를 꾸준하게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책 제목이 주는 어필력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저자 다나카 시게키는 일본에서 수많은 아동 정신 상담 전문의사로서 아이들의 상담치료를 토대로 그리고 4명의 아들을 키워 가면서 실제 느꼈던 그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다.
'엄마는 자식을 떠나보내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에르나 퍼먼의 글로 시작한다. 과연 '나는 아이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행복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양육을 하고 있나?'라는 작은 불안감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의 구성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와 2부의 내용은 중복되는 부분이 많고 일본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정서가 달라 공감되는 부분이 적다. 단지, 일본의 입시 주의 교육이 중학교부터 시험으로 이루어지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 등교 거부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정도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3부의 아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은 제법 도움이 될 듯하다. 특히, 아이와의 대화 시 '지시나 행동을 재촉하는 방식의 대화'가 더 많은지 아니면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전하는 말'이 많은 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되돌아보니 대부분 지시나 행동을 재촉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 또한 마음과 생각을 전하는 말보다는 지시나 행동을 재촉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들었던 같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같은 양육 방식을 답습하고 있을 수 있다.
사춘기를 시작하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고 싶어도 날 선 아이의 반응은 서로 간의 대화를 단절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부모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지를 생각해 보고 현재의 내 아이를 어린 시절의 나의 시선으로 대하라는 말은 공감이 간다.
아이와 대화 시 '앞질러 가는 대화'를 하지 말라고 한다. 예로, 친구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아이는 부모에게 하소연한다. 그러면 부모는 '왜? 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면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도움을 요청했니?"라고 대화를 앞질러 간다.
그러면 아이는 그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거나 존중받는 느낌을 기질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대화법이다.
반대로, 친구의 괴롭힘을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대화를 앞질러 가지 말고, 관심만을 보여 주며 '그래?"라고 대응하면 아이는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책에서 보여주는 대화 예시를 보고 인상 깊은 것은 앞질러 가는 부모와 아이의 대화 결과와 아이가 주도가 되는 대화 결과가 사건은 동일한데 결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자는 어느덧 내 아이는 피해자이고 내 아이를 괴롭히는 상대 아이의 문제점이 두각 되면서 문제가 문제시되어진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아이가 대화의 주도를 하는 경우 자신을 괴롭히는 그 아이의 독특함이나 일화를 이야기 함으로써 별 문제 삼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것이다. 앞질러가는 대화, 지시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대화 그리고 잔소리 등은 아이에 대한 믿음이 강할 경우 불필요한 대화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은 아이가 편안하게 보호받고 충분히 자신의 본능을 노출시킬 수 있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부모는 그저 믿음을 가시고 다정하게 아이를 대해 주면 그게 가장 큰 교육 방식이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