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1Q84] -무라카미 하루키

by 조윤효

책 제목을 오해했다. 아이큐 84라고. 책을 읽어가면서 오해된 부분이 풀려가며 소설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소설은 두 남녀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의 삶을 교차하며 보여 준다. 소설가이자 입시 학원 수학 강사인 덴고와 스포츠 센터 트레이너이자 조용하고 치밀한 살인자 아오마메의 성격이 대조 적이다. 덴고는 이야기 한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루키는 일본 사회의 어떤 문제를 이 소설 속에 심어 주고 싶었을까?


큰 두 가지 사회적 문제라면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비이성적 종교와 남편이 아내에게 행하는 가정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시대적 배경이 1984년 4월에서 6월의 이야기다. 2편 3편의 소설은 각각 그 해 3개월간의 삶을 보여 줄 것 같다.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 싫지는 않지만 조금 간격을 두고 읽어야 될 듯싶다.


'인간 영혼의 신성함의 문제이다. 그곳에 흙발로 짓밟고 들어올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무력감이라는 건 인간을 한 없이 갉아먹는다.'라는 말속에 소설 전반적인 생각이 내포된 것 같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자 하는 종교와 영혼의 안식처가 될 가정에서 행해지는 육체적 폭력성에서 개인들의 영혼은 쉽게 짓 밟힐 수 있다.


두 남녀 모두 어린 시절 부모를 통해 영혼의 신성함이 무너진 듯하다. 덴고는 아버지의 생업 때문에 아오마메는 증인회 종교단체에 빠진 어머니 때문에 여린 영혼의 집이 짓 밟히는 삶을 감당해 낸 것이다.


아오마메는 1984년을 살아 가지만 문득 그녀가 살아가는 시대에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9라는 숫자 대신에 몇 가지 변경된 의문의 시대를 산다는 의미에서 9라는 숫자 대신에 알파벳 큐를 써서 1Q84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오마메의 생각이 책 제목이 되었다.


사회의 악이라 생각하는 한 남자를 다른 세계로 보내기 위해 택시를 탄 아오마메에게 택시 기사는 이야기 한다. '그런 일을 하고 나면 그다음의 일상 풍경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라고 뭔가를 암시하는 말을 흘린다. 그리고 미션 성공 후 일상의 풍경이 서로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을 느끼는 아오마메는 두 개의 달을 발견한다. 두 개의 달이 의미하는 것을 아직 잘 모르겠다.


조지 오웰의 '1984' 작품에서 등장하는 독재자 빅 브라더스와 1Q84에서 등장하는 리틀 피플은 대조적이다. 후자의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발 밑을 서서히 무너뜨린다고 한다. 1편에서는 아직 리틀 피플의 존재감만 암시되어 있을 뿐이라 궁금증을 더 유발한다. 2편, 3편에서 그들의 행위가 어떻게 드러날 것 인지 궁금하다.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의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다.' 어린 시절 친오빠와 삼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경찰 아유미가 아오마메에게 한 말이다. 위안부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수많은 피해자들이 일본 사회를 향해 쏟아 내는 분노를 보고 수십 년이 지난 일에 아직도 끊는 냄비처럼 한 번씩 끊어 오르는 한인들을 이해 못하겠다고 하는 일본 보수파에게 줄 수 있는 해답을 얻은 기분이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노벨 문학상 하루키가 한인의 분노에 대한 해답을 대신 말해 주는 느낌이다.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라는 아오마메에게 노부인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진실을 우리는 바라는 걸까? 나 또한 진실을 볼 수 있는 힘보다는 진실이길 바라는 부분을 믿고 사는 건 아닐까?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게 아오마메에게 친절했던 덴고를 사랑하며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모마메. 2편이나 3편에서 어떤 형태로 마주 칠 것인지 그리고 그 인연을 어떻게 역어갈지 궁금증이 더해 간다.


첫 장면의 택시 속에서 흘러나오는 야나체크 '신포니에타'를 매게로 아오마메는 덴고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느낌이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음악의 제목을 자연스럽게 알아채는 아오마메. 고등학교 시절 대타로 '신포니에타'를 팀파니로 연주했던 덴고의 추억 장면을 읽고 나서 유튜브에서 그 음악을 들어 봤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이다. 어렵고 무게감이 든다. 마치 클래식을 한 번도 듣지 않았던 사람이 처음 그 음악을 듣고 지루함을 감추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는 느낌이다.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 소설은 성적인 생각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삶의 중요한 요소 일수는 있으나 거부감이 많이 느껴지는 이유가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보수성과 밀폐성이 이미 내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2편, 3편이 기대되는 소설이다. 하루키의 소설이 세계화되는 힘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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