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스티 나인] - 무라카미 류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환경을 맛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추억을 부른다. 소설을 보며 내 여고 시절의 기억들이 피어오른다. 어설픈 자아의 껍질로 나를 가둬둔 그 시절 나는 무엇을 느꼈고 삶을 어떻게 대했을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기를 써 두었어야 했다. 지나온 길에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세월 속에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교실 중앙을 용감하게 날아다니는 바퀴벌레 때문에 무서워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바퀴벌레도 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여고 시절의 추억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던 시기였다. 성적으로 반을 나누고 우등반에 속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당시 시험을 쳐서 들어간 학교라 주위의 시선과 실제 나의 실력이 불일치해서 오는 거부감이 많았다. 거기에다가 공부 잘한 언니, 오빠들의 기준이 너무 높아 버거웠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 무라카미 류는 32살 소설가의 눈으로 자신의 고3 시절 즉 1969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생마 같은 고3 남학생들의 나름 이유 있는 반항을 보며 웃음이 났다. 일본의 그 시절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패전 이후 사회적 분위기와 교실의 분위기는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도전해 보고 싶은 또 하나의 실험실 같다.
그의 고 3 시절 3가지 사건이 성인 된 그에게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아 소설로 까지 쓰게 된다. 여름 방학 전 학교 옥상에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플랙카드를 걸어 두고 학교 곳곳에 낙서를 한 후 방송사에 연락하는 대담한 행동까지 야생마가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날뛰는 듯하다.
거사를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여름 방학 집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형사의 방문을 받는다. '형사의 방문을 받아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배우게 될 것이다. 불행이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제멋데로 자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는 중요한 사실 말이다. 행복은 그 반 대다. 행복은 베란다에 있는 작고 예쁜 꽃이다. 또는 한쌍의 카나리아다. 눈앞에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나쁜 예감은 안개 같은 것이다. 그것은 차갑고 축축하게 허공을 떠돌다가 갑자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 난다. 불행은 늘 모르는 사이에 착착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마치 충치처럼.' 자신의 바리 케이트 사건을 들킬 것 같은 불안감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바리 케이트 주동자로 결국 119일의 정학을 맞는다. 주인공 겐의 절친들 이와세와 야마다와 친구들은 오히려 그 또래 아이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다. 덕분에 짝사랑하던 여자 친구의 따뜻한 관심도 받게 되어 기뻐하는 주인공의 철없는 생각이 풋풋하고 귀엽다.
학교에서 함부로 대해지는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적대감이 커진다. 사회의 작은 축소판의 학교에서 저자의 말처럼 줄을 세워두고 공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가 어른이 된 그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다. 아이들의 빰을 때린다던가 사고 뭉치라 생각하는 겐을 중심에 두고 교사들이 빙 둘러 서서했던 채벌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멍이 되었으리라.
여학교의 선생님들은 잘 때리시지 않는다. 하지만 고2 우리 반 샘은 반등수가 꼴찌 된 기념으로 한 그룹씩 면담을 했고 이어지는 곡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랬다. 결국, 발바닥 20대씩 맞았다. 그것도 철로 된 지휘봉으로..... 철로 맞으면 맞을 때도 아프지만 맞은 직후 그 아픔이 배가 된다. 그때 스쳤던 생각인데 이렇게 맞으면 남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더라고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독립 운동가들은 고문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일괄되게 관철해 나갈 수 있었을까? 매 맞으며 했던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담임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혼자 자치하며 가끔 아이들 불러다가 짜장면도 사주셨고, 아이스크림도 종종 전체 아이들에게 사주시는 걸 즐겨하셨다. 당일은 복숭아 하나씩 사주셨고 잘 먹고 나서 면담하다가 일이 터진 것이다. 그분의 폭력에 화가 나기보다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되 그 안에 사랑을 느꼈기에 아픔이 아니라 추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고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누어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그 시절 학생들이 가장 강하게 느꼈던 감정이었으리라.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안다. 공부 잘하고 순종적인 아이들은 그 사회의 권력자인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반면 그 반대의 아이들은 무관심이나 또는 인생 패배자 대하듯이 그렇게 험한 대우와 시선을 겪어 낸다.
소설 속 분위기에서 흑인, 혼혈아, 미군 부대 그리고 야쿠자 이야기 등을 통해 그 시절 힘들게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보는 듯하다.
'사실인지 모른지만 '패전 직후의 혼란기에 선생 부족 현상 때문에 수많은 불량배들이 교육자로 변신했다는 아버지의 말 그대로, 사샤 야마 선생도 거기에 속하는 인간이었다.'라고 소년 야자키(겐)는 이야기한다,
그의 고교시절의 두 번째의 큰 사건은 절친한 친구들의 첫 글자만 따서 '이야야'라는 조직의 이름으로 페스티벌을 주최한다. 티켓을 팔고 연극을 보여주고 영화도 찍어 상영한다. 또한 살아 있는 닭들 20마리를 페스티벌에 풀어 둔다. 그때만이 저지를 수 있는 어뚱함으로 웃음 짓게 만든다. 양계장에서 힘없는 닭들만 사 오며 주인공은 말한다. '닭이건 인간이건 조금이라도 거부의 자세를 보이면 격리되고 만다.' 거부의 의사를 마음껏 품어내며 거부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문구다.
여고 시절 유덕화 한국 내연 공연을 보기 위해 수업을 빼먹고 서울 가서 공연을 보고 왔던 친구들의 용감함도 기억에 남는다. 금요일 오후부터 소리 소문 없이 학교를 빠져나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월요일에 엄청난 압력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좋아하는 것에도 맹목적이고 자아가 강한 아이들을 어른의 권위로 묶으려 들 때 과감하게 저항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냥 조용하게 순종의 길을 따르는 아이도 있다. 후자인 나는 늘 전자의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을 동경했었던 것 같다.
'1969년 열일곱의 나이로 아침에 서는 축제를 벌일 때는 물론이고, 서른두 살 소설가인 지금도 나는 내내 축제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라는 소설 후반부의 이야기로 저자의 인생 항로 지점을 알려 준다. 그들이 기획한 첫 공연의 이름을 '아침에 서는 축제'로 명하고 기획하는 과정 속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다.
고교시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청소년 심리를 재미있게 보여 준다. 모든 선의 기준이 아름다움이라는 근거로 그 학교의 영문과 영어 연극부 미쓰이 가즈코에 대한 찬사의 글 또한 웃음 짓게 한다. 결국 설익은 풋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소수의 예외적인 선생을 제외하고,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내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열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패보아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 밥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 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의 책 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라는 강한 문구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소설이다. 이미 어른이 된 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외계인 같은 10대들에 대한 너그러움을 갖게 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