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서재] - 정여울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 구경하며 익숙한 그녀의 이름에 손이 갔다. 홀로하는 사색이 멋스러운 작가다. 거실의 책장과 마음의 서재를 일치시키는 게 그녀 공부의 최종 미션이라 말한다. 가끔 상상한다. 마음속 서재에도 도서관처럼 수많은 책이 분류되어 있어 언제든 꺼내 기억을 환기해 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기억의 한계로 구입했던 책을 또 구입하는 우를 가끔 범한다.
사랑을 깨닫다. 삶으로 내딛다. 현재와 마주 서다. 아픔을 말하다. 세상을 말하다. 생각을 나누다. 그리고 마음을 열다. 책의 목차가 글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인문학 강연을 연재했던 글들로 책을 엮었다. 조금 어렵고 딱딱할 수 있는 책들이 그녀의 사색들로 멋스럽게 포장된 느낌이다.
'인생을 확 바꾸는 책은 없지만, 인생을 확 바꾸는 절실한 물음은 있다.'라고 감옥에서 온 편지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다. 책을 통해 삶에 대한 절실한 물음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답은 삶의 여정 속에서 각자가 찾아내야 한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찾게 하고 그 답을 말할 수 있을때 삶은 획일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이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글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만나고 그 생각들이 사고의 질료가 되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투루 게 네프의 '첫사랑', 플라톤의 '향연', 이방인을 향한 사랑의 메신저 '빨강머리 앤', 불가능한 사랑을 꿈꿀 자유를 주는 '이반 일리히의 유언',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 고네 이야기와 명화들이 그녀의 사랑에 대한 쏟아지는 사색을 보여 준다. 아름다운 명화들은 중간중간 휴식을 준다. 결국, '사랑은 타자를 자아로 변신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나조차도 낯선 타자로 만드는 영혼의 마술이다.' 나를 내려놓고 맹목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청춘이 꽃처럼 피어나던 시절 그런 맹목적 사랑에 자신을 힘껏 던져낼 수 없었던 지난날의 나약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삶을 이야기한 장에서는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팬', '문명화 과정'을 쓴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 '100년의 가게'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찮은 한 사람의 힘'이 역사를 바꾼 사례는 감동적이다. 1948년 스탈린은 즈다노프의 암살이라는 조작된 공안정국을 선포하여 유럽 전체를 또 다른 전쟁의 참화로 이끌기 위해 의사 소피아 카르파이의 거짓 자백이 필요했다. 하지만 냉동창고에 감금된 채 모진 고문을 견디며 끝까지 버텼기에 그녀의 '단순한 고집'이 수천 명, 어쩌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녀의 행위를 윤리를 형성하는 재료라 표현한 작가의 말이 긴 울림이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것 또한 자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타인의 상처를 함께 아파할 수 없다면 어떤 위로의 제스처도 섣불리 취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진정한 예의는 단지 불쾌한 행동을 삼가는 자기 통제 술이 아니라, 타인과의 거리감을 존중하는 기술이다.' 인상에 남는 구절들이다.
현재를 마주 서기 위해서 힘을 실어 준 책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박완서 선생의 '한 말씀만 하소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지식의 고고학'을 이야기한다. 이장에서는 사색을 부르는 명문장들이 많다. '함께 있음의 고통도 혼자 있음의 고립감도 견디지 못해 남몰래 신음하는 현대인들'.
박완서 선생님의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했다.'라는 고백 속에 부끄러운 나를 발견했다. '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 '타인에 대한 경멸을 입에 담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초라한 자아를, 남을 낮춰야만 간신히 자신을 높일 수 있는 결핍으로 얼룩진 자아를 드러낸다.' '말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숨기는 은밀한 기쁨은 창작의 특권이다.'
'아픔을 말하다'에서 인용하는 카뮈의 '이방인'에서 저자의 생각을 통해 책의 의도를 깨달았다. 읽으면서도 뭔가 안개 낀 듯한 유리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느낌이 이였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쇠의 생각이다. '그가 누구에게도 쉽사리 내어줄 수 없는 자신의 영혼을 지킨 유일한 방법은, 타인의 의미 규정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뫼르쇠가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차라리 고독한 죽음을 택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무력한 슬픔이 아닌 은밀하고도 비극적인 승리감을 맛본다. 그의 선택에서 우리는 살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팔지 않는 영혼의 위대한 승리를 본다..... 내가 누구인지, 너희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대답해 주지 않겠다. 그는 소중한 영혼의 묵비권을 행사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세상을 울리다'라는 편에서는 '아이란 자고로 청개구리여야 정상이다. 청개구리 정신의 핵심은 자신에게 부과되는 모든 명령에 왜?를 붙인다는 것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지? 왜 엄마 말을 들어야 하지? 이런 질문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내면의 통과의례다.' 우리 집의 청개구리가 가끔 용감함을 보일 때 소심한 청개구리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의 용기를 미소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나의 내공이 더 필요하다. '흔히들 천재는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그리스 시대에는 재능과 창의성이 인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서 분리된 창조성의 혼 지니어스의 힘이라 믿었다..... 위대한 재능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생각했던 이 지혜로운 믿음이 과도한 자아도취로부터 예술가들을 보호해 주었다.... 예술가들은 자아도취에도 자기혐오에도 빠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이 하늘의 뜻이 아니라 개인의 소유물로 된 것은 모든 건 인간 탓이라 믿게 된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지나간 과거의 사고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지혜를 준다. 성공해도 겸손할 수 있는 의지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생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을 나누다'라는 편에서와 연결되는 느낌이다. '인간을 가장 타락시키기 쉬운 것은 유혹이 아니라 성공이 아닐까. 유혹은 매 순간 일회적으로 인간을 시험하지만, 성공은 평생 그 사람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일생 전체를 쥐락펴락한다. 성공한 후에도 더 큰 성공을 찾아 헤매다 정작 자기다움을 잃어버리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하면 칭찬받는구나 라는 인식이 또다시 똑같은 성공, 비숫한 성공을 복제하는 위험을 낳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이 죽음보다 힘겨울 때에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눈부신 기적임을.... 생의 지렛대는 성공이 아니라 , 그 사람을 반드시 그 사람답게 만드는 평범한 일상, 끝내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보다 심각한 굴욕은, 성공을 유지하는 데 정신이 팔려 성공보다 더 중요한 삶을, 소중한 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다.... 대단한 삶을 두고도 평범한 삶으로 다시 기꺼이 돌아올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마음을 열다'는 편으로 끝나는 글은 마치 추운 겨울 따뜻한 외가댁의 아랫목을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진짜 원하는 것은 각자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최대한 풍성하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모든 길이 막혔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바로 그 순간이 우리가 스스로의 심장에서 타오르는 내면의 불길과 뜨겁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바로 그 순간이 내 면의 요새 안에 둥지를 틀고, 이 세상이 결코 허락하진 않는 나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글이 주는 위안과 힘이 느껴진다. 글은 지친 사람의 영혼에 격려와 용기를 주는 인간이 개발해낸 최고의 명작이다. 그래서 삶은 세상 속의 책들과 함께 발전되어 간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