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 하페 케르켈링
인생은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에서 바라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이고 36살의 독신이며,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네덜란드어를 구사할 수 있는 복도 많은 사람이다. 글 중 어느 스페인 왕이 말했다는 글귀다. '이탈리아어로는 노래를 부르고, 영어로는 시를 짓고, 독일어로는 흥정을 하고, 프랑스어로는 사랑을 하며, 스페인어로는 기도를 한다.' 그는 인생에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외관상 그는 완전한 행복을 갖추었을 것 같다. 그는 청력 약화와 담낭 제거 후 42일간의 산티아고 순례를 마음먹는다. 삶의 중간에 자신의 내적인 균열이 느껴질 때 온전히 자신과 신을 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그의 시간 속 독백을 듣는 기분이다. 그것도 계속 투덜거리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느낌이다. 여행기이지만 길의 여정이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여행에서 만나는 자아의 고백과 타인들과의 부딪침 그리고 타인들이 지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세상에 홀로 태어나 타인들을 한 명씩 나의 세상 속 지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같다.
'돌이켜 보면 길 위에서 신은 끊임없이 공중에다 던졌다가 다시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마주쳤다.' 그의 사색의 결정체가 여행 중 그가 썼던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가 사람이 저지른 모든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한다. '내게 있어 이 사실은 여행을 통해 신을, 그리고 나를 발견하리라는 언약에 비하면 그리 큰 동기가 되지 않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만드는 신을 만나는 일은 삶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600킬로미터의 사색의 길이는 모든 것을 내려 두고 철저하게 홀로 되어 신과 대면할 마음의 준비를 의미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삶과 죽음이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순서를 바꿔가며 인생을 결정한다.' 우리는 매일 작은 죽음과 탄생을 반복한다. 이미 신은 우리에게 삵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생활 속에 그의 뜻을 심어 놓으신 건 아닐까? 그의 일기는 매일 진행되며 그날 하루의 깨달음을 한 줄로 기록하고 마무리한다. 일상적 삶도 매일 그날의 깨달음을 기록해 간다면 어떨까? 거창하지 않아도 매일 자신이 하나씩 깨달아 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자신의 인생 또한 뒤돌아 보면 순례길처럼 의미 있는 길이 될 것 같다. 오늘부터 실천해보려 한다. 오늘의 깨달음이라는 제목을 만들고 휴대폰 메모 기능에 삶을 통한 생각의 발자취를 만들어 가보는 것이다.
'우습다! 집에서는 외관상으로는 매일 다르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거의 변함이 없다. 여기서는 외적으로는 똑같으나 내적으로는 매시간 달라진다.' 나름 유명인이지만 낡은 셔츠를 계속 입고 걷다 보면 독일 사람들은 그들의 눈을 의심한다. 설마 그 사람이 그 사람이겠어?라고. 순례자 중 15%만이 산티아고에서 스탬프를 받는다고 한다. 그의 힘든 여정 중에서 매일 매시간 달라지는 자신을 마주하는데 어찌 여행을 포기하겠는가. 중간에 몸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아 히치하이킹 한번 그리고 기차도 한번 탄다. 증서를 부여하는 사람이 물으면 솔직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그녀는 친구 앤에게는 물었지만 그에게는 묻지 않는다. 결국, 완주 증서를 받을 운명이었나 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 리라가 저자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빛은 어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이 완전한 행복을 위한 열쇠이다.' 우리는 고통 없는 인생을 원한다. 그녀의 이론으로 보면 무난한 인생은 완전한 행복을 맛보기 어렵다는 것인데..... 어떻게 고통이라는 삶의 어둠을 빛을 밝힐 도구로 쓸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의 글 중 전생 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의 전생을 체험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왠지 믿음이 간다. 그는 전생에 프랑스 수도원의 수도사였다고 한다. 유대인 4인 가족을 숨겨 준 것을 들켜 독일 군사들에게 총살당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죽음 직 후 3개의 빛이 두려워하는 그의 영혼에게 이야기한다. '너는 평생을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믿어 왔다. 그런데 왜 이 마지막 순간은 그렇지 않았지? 왜 믿지 않았지?' 유대인을 숨겨 주는 선행으로 자신의 죽음을 맞이 할 때 신을 부정한 그의 태도에 대해 빛의 존재가 한 말이다.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믿어야 하나..... '신은 자기 안에서 모든 상반되는 것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분이시다.' 순례하는 사람들은 그 강한 힘에 대해 손톱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상반된 것들이 서서히 하나로 통일되어 간다.
여행에서 생겨난 우정이 아름답다. 네덜란드에서 온 2명의 십 대 아이를 둔 정치가를 꿈꾸는 쉴라와 영국에서 온 짧은 빨간 머리 앤 박사는 그의 마지막 여행길 최고의 수확인 것 같다. 여행 중 쉴라가 저자에게 해주는 조언도 인상 깊다. '믿음을 가져요. 당신을 믿고 신을 믿어 보세요. 그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당신의 믿음.'
또한 목사가 꿈인 에바는 그의 읽기가 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당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나는 본답니다.' 독일어와 스웨덴어로 목사의 뜻은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 좋은 사람도 있고 때로는 광적인 사람도 있고 더러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있다. 그의 일기는 그들과 대면하는 저자의 좌충우돌 코미디 같다. 스페인 레온에서 십 대들에게 총격당할 뻔 한 일과 독일 부부 주둥이 아줌마와 그녀의 남편 게르트의 이야기는 자칫 지루할 뻔한 여행에 양념이 된다.
'포도밭 한가운데 서서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듯 그렇게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너와 나. 내 순례 여행의 제목이다.' 저자가 자신과 화해하는 듯한 느낌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몸은 지치고 자신 안에 쌓였던 수많은 어둠들이 포도밭의 햇살 아래에서 눈물로 쏟아낸 그의 여행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스스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단지 몇 가지에 불과함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의 마지막 글이 여정을 마무리시켜 준다. '순례길은 나의 인생 여전을 보여 준다. 시작은 실제의 내 삶처럼 난산이었다. 여행 초창기와 어린 시절의 나는 내 속도를 찾기 힘들었다. 인생의 길 중간까지는 그때까지 쌓아온 긍정적인 경험과 함께 오류와 혼돈이 공존했고 가끔 길 밖에 나앉기도 했다. 그러나 반쯤 왔을 때부터는 목적지까지 기쁜 마음으로 행진했다. 이 순례길이 친절하게도 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여주는 듯하다. 담담함을 지닐 것, 무관심과 냉담함이 아닌 긍정적인 의미의 담담함. 그러면서 유쾌함을 견지할 것. 이름 붙이자면 유쾌한 담담함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스스로 깨어나야 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데미안의 글처럼 그는 그의 세계를 깨고 새로운 세계를 순례길에서 만들어 냈다. '이 길은 힘들지만 놀라운 길이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며 초대이다. 이 길은 당신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비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당신을 세운다. 기초부터 단단하게.' 글의 맺음말을 통해 그의 단단해진 마음이 느껴진다. 삶을 순례로 여기고 매일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1년 365일 매년 달라져 있는 자아를 만나는 충격이 연말의 성탄종처럼 개개인의 영혼에 울림을 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