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교실 밖 인문학 콘서트] - 백상 경제 연구원

by 조윤효

인문학은 인류 역사의 길이만큼 끝도 없이 탐구해야 하는 학문 같다. 10명의 전문가가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 2.0(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에서 8년간 10만 명에게 강의한 내용이 책으로 탄생했다. 인류가 그려온 삶의 무늬를 담고 있는 게 인문학이라는 서두 말이 공감이 간다. 인류 역사는 시간을 통해 뒤로 그려지는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뒤를 돌아보고 그림을 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현재의 위치가 눈에 보이고 연계된 미래의 그림을 그려낼 힘이 생기기 때문에 쉼 없이 공부해야 하는 게 인문학이 아닐까.


10개의 큰 주제로 책은 전개된다. 유럽 신화, 살면서 갖고 싶은 다섯 가지, 철학하는 삶, 자아의 발견, 원작과 함께 영화 읽기, 필 환경시대 문학에서 길을 찾다, 단박에 읽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꾼 프로젝트, 역사 속 뉴 노멀 현상 그리고 마지막 장은 새로운 접촉 문명, 온 텍트 시대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이야기 소재로 다양한 강사들의 이야기를 마치 초밥 골라 먹듯이 선택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생활의 아이디어도 얻었고 몰랐던 부분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알고 있었던 내용이 정리되기도 한 책이다. 글의 다양성이 싫증을 바람에 먼지 날리듯이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앎에는 끝이 없다. 읽을수록 허기가 느껴진다. 생각 없이 지내왔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제대로 알고 싶은 소망이 한데 어우러져 일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삶을 제단하고 픈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독서다.


첫 장의 신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전히 유럽인들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신화는 공동체의 세계관이고 또한 철학이 담겨 있다. 문학 전집의 일부로 신화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으로 신화를 대하라고 한다. 협소함의 신화에서 그 의미를 확대하는 우주적 차원으로 신화를 바라보았기에 그들의 신화가 다양한 형태로 현재에도 살아남아 있는 것 같다. 신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등은 과거의 신화가 현대 인간의 상상력의 마중물이 됨을 보여준다. 그리스를 점령한 로마 인들에게는 신화가 없었다. 그리스의 다양한 신화를 로마 인들이 그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어 현재 우리를 혼돈스럽게 하는 신들의 이름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로마는 기독교로 유일신 사상을 기반으로 성적으로 순결하고 금욕적인 종교이기에 그리스 신들의 자유분방함과 육감적 이 이야기는 문란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다행히 고대 그리스 서사 시인인 헤시오도스가 '신통기'라는 책을 통해 신들의 계보를 적은 그리스 신화를 썼기에 지금까지 그들의 존재 남겨져 있는 것이다. 기록은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기록은 의미 있는 인간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이다. 북유럽의 신화에서 신족과 거인족의 전투 후 신들이 소멸하여 세상이 끝나고 인간이 나타났다고 한다. 신족과 거인족의 전투 장면은 '어벤저스 엔드 게임'이나 '반지의 제왕'의 영화 장면에 영감을 준 신화라고 한다. 우리가 읽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미국 청교도 토마스 불핀치에 의해 번역된 것이라고 한다. 신화 이야기는 연령에 관계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화로 된 신화 이야기부터 제법 두께감이 있는 신화 이야기는 언제나 아들과 좋은 대화 소재거리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 장의 이야기는 '내 삶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함이다.'라는 이야기를 전제로 전개된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는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우리 모두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철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흑백 사진의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부인 헤리엇 테일러의 딸 헬렌 테일러의 사진이 인상 깊다. 단 하나의 사진도 많은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사진 아래 소개된 존 스튜어트 밀의 순애보적 사랑이 느껴졌다. 25살 헤리엇을 만나 첫눈에 매료되었으나 그녀는 이미 존 테일러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20년 동안 지적이고 순수한 교류를 지속해 오다가 그녀가 남편과 사별한 몇 년 뒤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헤리엇 테일러와 함께 쓴 책 '자유론'은 두 사람의 생각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사상의 아이이다.


행복하세요?라고 누군가 물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만의 기준을 두고 행복을 만끽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유튜브에서 강의를 봤었다. 그 의사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실천하는 삶을 배울 수 있었다. 행복이 느껴질 때마다 한 손의 검지와 엄지로 작은 원을 만든다. 우리 뇌에는 행복의 기억이 쌓이게 되고 조건 반사 작용처럼 행복을 느끼고 싶을 때 작은 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이 손가락으로 원만 만들어도 나온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소박하게 즐기는 휘게(Hygge), 단 한 번의 삶을 자신을 위해 즐겨야 한다는 욜로(Yolo),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즐기는 소확행이라는 용어를 통해 일상의 행복 기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자신이 언제 행복하고 그 기준이 무엇이며 행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습관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부탄은 GDP 수준이 낮지만 행복지수는 최상위권이다. 행복의 기준을 높게 잡고 평생 불행을 안고 사는 것보다 행복의 기준을 조금 낮게 잡고 평생 만족스럽게 사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수 있다.


'세상의 주인공, 나를 찾기'라는 주제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야기는 악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유대인 말살 정책 시행 당시 집단 수용소로 유대인들을 이송하는 실무 담당을 한 나치 장교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고 당시 기자였던 한나 아렌트가 쓴 책이다.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유죄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은 신 앞에서는 유죄나 법 앞에서는 무죄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그의 행동 결정은 '히틀러처럼 출세하라. 상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 만이 나를 위한 길이다.'라는 관념이 그를 지배했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괴로워할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책에서 한 개인이 각인된 사회의 고정 틀에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은 특별히 악해서 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집단 정체성에 자신을 밀어 넣을 때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집단 포로수용소와 강제된 침묵은 단지 그 시대만의 것이 아니다. 다양성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생각을 강요하며, 체제로 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행동을 일탈로 간주한다. 자유는 모든 것을 지켰을 때만 허용되는 특별한 권리가 되고, 나의 인간다움은 색깔 없는 그림자로 남는다.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씩씩하게 산다고 믿었던 하루가 집단 수용소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유의 불능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노인을 돌보는 로봇을 오히려 인간 돌봄이 보다 환자들이 더 선호한다고 한다. 자율성에 대한 마지막 자존감 때문일 것이다. 치매라는 병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기본 욕구를 무시당할 수 있는 상황을 부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양원에서 갇힌 채로 죽음의 날을 기다려야 하는 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본다. 주위에서는 이야기한다. 어머님을 요양원에 보내 드려야 서로 힘들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권리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전쟁을 겪었고, 공산당원들에게 대창에 찔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9남매의 장녀로 9살부터 새벽 별을 보고 사셨다. 굶주림을 통한 삶의 거친 들판에 홀로 바람을 맞고 있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여섯 자식 따뜻한 집에 따뜻한 밥 먹이는 게 유일한 소원이셨던 분의 삶을 어떻게 함부로 가둘 수 있단 말인가. 책을 통해 어머니를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매주 일요일 오전은 어머님과 작은 전투가 벌어졌었다. 씻지 않으시려는 분과 씻기려는 나의 사투가 벌써 6개월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된 요양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목욕보다 더 두려운 게 혼자 할 수 없다는 상실감 때문 일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알아서 씻으세요. 등은 손이 닿지 않으니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했더니 거부감 없이 목욕하시는 것을 도울 수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평안한 일요일 오전을 맞이 했었다.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돌보는 일을 내려놓는 것은 인류의 오랜 삶의 방식과 의무를 내려놓는 것이다. 공감과 돌봄은 힘들고 수고롭지만, 우리가 진정 인간다워지는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런 돌봄의 짐을 로봇에게 위 힘 하고 자유로워진다면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던 진정한 공감과 감정이입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마지막 장의 '새로운 문명, 온 택트 시대'라는 장을 보며 규칙이 바뀐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미지근한 물속에서 세상 변화의 불길로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어떻게 온라인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지 아직 그 해답을 못 찾고 있다. 새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개인인 우리에게 툭 던져 놓았다. 생각이 유연하기 위해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다름이 여전히 어렵다. 미래 사회는 VUCA 사회라고 한다. (휘발성 Volatility, 불확실 Uncertainty, 복잡성 Complexity, 모호성 Amibiguilty) 어제의 패턴이 반복되지 않고 변화의 예측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중심에 유연성과 상상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다. 흘러갈 것인가 흐름을 주도할 것인가. 어떨 때는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흐름을 타고 흘러가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책은 참으로 많은 질문을 준다. 인문학을 더 좁혀 보자면 개인이 살아낸 무늬를 액자에 옮겨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들이 그린 엉성한 그림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니 제법 폼이 난다. 우리 각자의 삶도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에 걸맞은 액자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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