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독서의 역사] - 알베르토 망구엘

by 조윤효

독서는 꼬리잡기다.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 소개된 또 다른 책들이 궁금해 계속 연결해서 읽고 싶어 진다. 절대 잡히지 않는 꼬리라는 게 아이들 놀이와 다르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도서 가이자 장서가라고 한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스라엘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0대 후반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서점에서 일하게 되면서 삶의 큰 선물을 받게 된다. 당시 시와 소설 쓰기로 유명했던 보르헤르가 88살 된 노모와 함께 망구엘이 일하는 서점을 방문한 것이다. 시력을 상실해 가는 브르헤르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 주었다. 책을 읽어주는 일이 책의 세상과 저자의 세상을 연결시킨 계기가 된 것 같다. 아르헨티나를 떠나 스페인, 영국, 타히티,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에서 거주하면서 책을 읽고 쓰는 삶을 산 저자는 거주한 나라들에서 책을 출판하고 관련상을 받은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다.


책이 주는 두께감과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저자의 해박함이 때론 무겁고 버거웠다. 속이 꽉 찬 약밥을 먹을 때 그 빛깔과 향 그리고 맛에 도취되어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물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놓을 수는 없는 그 강력함이 다시 입을 부르듯 '독서의 역사'라는 책은 유난히 책을 덮고 펼친 횟수가 많았다. 독서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기엔 역부족했겠지만 책 중간에 마치 지도처럼 접혀 독서가들의 연대표를 보여주는 기법이 독특하다. '문자 기록이 없는 사회는 시간 감각이 단선적이나, 읽고 쓸 줄 아는 사회는 그 감각이 누적적이다.'라는 말이 보여 주듯 읽고 써온 그의 삶은 단단하기 그지없다. '책 한 권 한 권은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였고, 그곳에서 나는 안식처를 찾았다.' 삶의 환경도 다채로웠고 책들 속에서 세계를 만나는 그의 일상이 오늘날 캐나다 국적을 갖고 정착해 살고 있으나 지역적인 협소함을 넘어서 광활한 세계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글 중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의 인생 표현이 좋다. '편도 마차 승차권으로 한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삶이라는 마차에 오를 수 없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그 책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돌릴 수 없는 인생이지만 책을 통해 되돌아보기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돌리고 쉽지 않은 인생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 중 하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책을 읽는 눈을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초창기의 책은 성경의 소유에서 시작된 것 같다. 성경을 읽고 소유할 수 있는 특권층이 대중의 사고까지 장악해 버리게 하는 기술이 바로 책 읽기였다. 책을 소유할 수 없어 읽자마자 외워버리는 기이함을 발휘하게 한 그 책의 존재감이 마치 값비싼 명화 다루듯 이루어졌다. 15세기 소년, 소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웃음이 난다. 소년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그들 끼리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소녀들에게는 특별히 수녀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면 글을 읽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책을 읽게 되면 나이가 들어 연애편지를 주고받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라도 맘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세상에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다.


22개의 소제목으로 책의 역사와 읽는 방법 그리고 책의 형태 등 책과 관련된 많은 글귀들 중 '찢겨나간 첫 페이지'가 가장 호기심을 자극했다. 18세기 베르디체프의 랍비 레베 이츠하크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 책들을 첫 장 없이 2페이지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라도 아직 그 책의 첫 페이지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의 형식으로도 책의 내용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담아낼 수 있다.


카프카의 저서 중 미완으로 남긴 책들이 있는데 그 이유가 '독자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그 텍스트를 두고두고 가까이하도록 만들려면 주인공 K를 거기까지 끌고 와서는 곤란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단다. 책의 처음과 끝을 잘라낼 수 있는 그 대범함은 자신감이 있지 않고 감히 시도할 수 없다. 카프카가 친구에게 했던 말은 잘 알려있다.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려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을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이야?......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누군가에게 대신 책을 읽게 하기'에 대한 소제목은 나의 일상과 닮아 있다. 치매 초기였던 어머니를 위해 아들에게 부탁했던 것이 매일 저녁 전래 동화를 할머니께 읽어 드리게 하는 것이었다. 집안의 대장 손이고 유일한 손자라 늘 소통에 목말라 하시던 어머님은 시종일관 웃으면서 그 시간을 즐거워하 셨으나 오래 이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들이 나에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을 20분씩 읽어 주고 있다. 자의였으면 좋겠으나 순전한 강요다. 사춘기 아들은 가끔 외계인 다운 행동을 보여 준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거나 훈육할 수 없어 '톨스토이 신'(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발췌된 유명한 문구들을 필사하는 일)을 만나거나 한국 전통 시집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 그 양이 너무 많아져 이번엔 어쩔 수 없어 3월 말까지 20분 낭독해주기 선약이 되어 있다. 잘못이라 하기보다는 설거지 미루고 안 하거나 양치를 깜박하거나 벗어놓은 옷을 아무 데나 두거나... 등등 일일이 잔소리하기보다는 이렇게 일상의 선물을 던져 주는 것이다. 책 읽기 편식이 심한 아들을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판타지와 모험 관련 책들만 보는 습관에서 서서히 고전을 맛보는 길로 이끌고 싶은 내 욕심이지만 어제는 연설문처럼 제법 신바람 나게 읽어주었다.


1866년대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읽어 주는 독사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 다른 노동자들은 일을 하고 그들에게 소설이나 신문 같은 것들을 읽어주는 아이디어가 그 시대에도 있었다니 놀랍다. 하지만, 책을 읽고 생각하는 힘을 갖는 것은 지배층들에게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결국, 정부에서 금지시켜 할 수 없게 되지만, 개인적으로 또는 글을 쓴 작가들이 자기 책을 소개하기 위해 대중을 향해 낭독하는 모습의 사진들은 정겹다. 독서가로서의 작가인 찰스 디킨스의 저자 낭독 강연은 오늘날의 연예인을 연상시킨다. 그가 쓴 소설을 듣던 청중들이 울음을 참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강연을 듣기 위해 몰려든 군중 이야기는 마치 오늘날의 유명 아이돌 콘서트 같다.


'책은 독서가에 의해 게걸스레 먹힌다. 이리하여 독서의 끝없음을 위해서 순환적인 은유가 끊임없이 창조된다. 우리 존재는 읽은 만큼 성장한다. 우리가 텍스트를 섭취하여 텍스트가 갖고 있던 무언가를 풀어낼 때마다 그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어떠한 책 읽기도 결코 완성이 될 수 없다.' 얼마나 위안을 주는 말인가. 읽어도 이해가 안 가도 그냥 꾸준히 읽다 보면 텍스트 깊은 곳의 우물을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세상에 책이라는 보물을 뿌려두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필사자는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이 있었고, 필사자를 살해할 시 주교를 살해한 것과 같은 형량을 내렸다는 아일랜드 이야기를 통해 책의 가치가 얼마나 귀했는지 알 수 있다.


세계 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한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에 알렉산드라 도서관을 만들어 두고 정박한 모든 배들에게 가지고 있는 책들을 받아 필사 후 돌려주는 칙령을 내렸다.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을 모았던 것이다. 인쇄술 발명전인데 이미 50만 권 이상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아비뇽의 교황청에 있는 도서관이 2천 권의 책을 소유한 것에 견주해 볼 때 알렉산드라 도서관 책의 양은 방대하다. 책의 가치를 알았던 알렉산더 대왕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세계 역사는 다르게 쓰여졌을 것 같다.


독서가로서의 번역가 편에는 릴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로댕의 비서로 일했다는 릴케는 '번역가는 저자의 뜻을 있는 그대로 옮겨야 한다. 저자를 넘어서는 것은 변역가의 본분이 아니다. 번역가가 저자를 앞지르는 곳에서 원본은 미묘하게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독자는 적절한 시각을 강탈당하게 된다'라고 했다. 모든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특유의 우주를 표현하는 '영적 세계의 언어적 현상'이 담겨 있기에 완벽한 번역에 대한 소망은 욕심이라고 한다. 예로, 우리나라의 '정'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설명해야 할 때 그 단어의 어감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표현들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즉, 특정 단어와 꼭 맞아떨어지는 단어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번역은 바람의 얼굴을 다듬거나 모래로 실을 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 된다. 번역은 단지 번역자의 언어를 통해 원본에 꼭꼭 숨어 있는 것들을 이해하려는, 거칠고 비공식적인 행위로만 존재할 수 있다.' 번역을 통해 만나는 책들은 어쩔 수 없이 원본의 작가와 번역가를 동시에 만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타고르의 시들은 시인 류시화 씨를 만날 때 그 가치가 빛을 내는 것처럼 원본과 번역은 마치 부부처럼 화합이 잘 이루어질 때 독자에게 행복함을 전해 준다. 독서의 역사를 보니 귀한 책이 흔해지면서 그 위치가 협소해졌으나 인류 역사를 뚫고 인간 삶을 윤택하게 일 끌어 준 일등 공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 금지를 어긴 흑인들의 잘린 집게손가락에 대한 이야기는 목숨 걸고 책을 읽던 시대에 그 읽음에 대한, 앎에 대한 목마름이 삶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냄을 보여 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보여 준다. 그리고 낡은 정신을 죽이고 선포하는 막강하고 상징 정 행위로 나치즘이 보여준 2만 권 책을 10만 관중 앞에서 불태운 역사는 보여준다. 가장 강한 무기가 책이라는 것을.... 읽지 않는 삶은 위험하다.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더 위험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광기를 역사는 보여 준다. '신이 인간에게 책이라는 치유법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은 망각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읽어야 산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방법을 모를 때, 망막한 삶의 벽을 만날 때, 심지어 일이 너무 잘 될 때 손에 책을 들고 있다면 그건 신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오늘도 신의 손길을 느끼는 하루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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