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세인트 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조한별

by 조윤효

미국의 중심이 아니라 외각에 위치한 작은 학교 졸업생들이 노벨상을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들의 공부법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학교가 바로 세인트 존스 대학이다. 전교생이 400명 전후로 작은 대학에서 평범한 인재들을 비범한 인재로 탈바꿈시킨 원동력이 바로 졸업 전까지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 대한 잘못된 자세가 수많은 인재들을 평범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배움이 꿀처럼 달다'는 유대인들의 말을 이제야 조금 알듯 하다. 알아가는 것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그 넓어진 시야로 삶을 더 크게 확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버드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치열하게 공부하는 터전'을 연상시킨다면, 세인트 존스 대학은 '치열한 생각의 터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대학교를 다녀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학교다. 세인트 존스의 대학은 강의가 없고, 교수도 없고, 시험도 없다. 강의가 아니라 세미나를 통한 토론 위주의 수업이고, 교수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튜터가 있고, 종이 시험이 아니라 매번 진행되는 토론으로 실력이 평가되는 학교다.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시행되는 '돈 래그(don rag)'라는 독특한 평가 시스템이 흥미롭다. 한 학생을 두고 튜터들 간에 그 학생에 대한 평을 한다고 한다. 돈(don)이란 뜻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를 의미하고 '래그(rag)'는 꾸짖다, 책망하다, 타박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돈 래그를 통해 학생이 계속해서 공부해 나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토론 시 말하지 않는 학생, 질문하지 않는 학생, 행복해 보이지 않는 학생(저자의 경우)이 위험해지는 학교다.


저자의 공부 이력도 관심이 간다. 초등 2학년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가족과 세계를 여행하고 홈스쿨링을 하다가 초등 고학년에 제주도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생이 된 후 1년 휴학하고 다시 세계여행을 가족과 함께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한국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미국의 세인트 존스 대학을 선택한 것이다. 배움의 길을 한 길로 정해 다들 초, 중, 고 그리고 한국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다수의 길이 아니라 여기저기 둘러 가듯이 여러 길을 만나본 그녀의 길이 세인트 존스에서 스스로의 배움의 방식과 길을 찾아내도록 도운 것 같다. 세인트 존스의 1학년을 원석이라 하고, 4학년을 보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원석이었던 그녀가 이 대학을 졸업 후 책을 쓴 걸 보니 보석이 된 저자의 삶의 빛깔이 궁금해진다.


대학 시간표를 학교가 정해 준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서 2~3시간 진행되는 세미나 수업이 바로 토론의 장이 된다. 읽어 온 고전의 텍스트를 가지고 지식의 향연의 전쟁터로 학생들이 모인다. 토론 전 15분 전에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우리나라 민방위 훈련을 연상시킨다. 종이 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거리가 갑자기 정지화면이 된다. 세인트 존스의 캠퍼스 풍경이 이럴 것이다. 대부분의 수업이 4시 30분에 끝나는데 월요일, 목요일은 그날 저녁 세미나 덕분에 굉장히 학구적이라고 한다. 정해진 분량을 읽고 고전의 저자를 무기 삼아 토론 전쟁을 승리고 이끌 수 있는 지휘관이 학생이다. 세인트 존스의 학생들은 4년 동안 수학, 과학, 음악, 언어, 철학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이해할 듯하다. 밤에 진행되는 세미나는 세상의 시끄러운 환경에 불을 끄고 오로지 세미나 토론의 빛을 한 곳에 모이게 만드는 좋은 시간대인 것 같다. 4년 동안 세미나 토론을 위해 읽어야 하는 고전 독서는 실제 읽어야 하는 책의 4분의 1 분량이라고 한다. 나머지 4분의 3은 수학, 과학, 음악, 언어 수업을 위해 유클리드, 아인슈타인, 맥스웰, 뉴턴 등의 책까지 읽어가는 공부다.


개인 교사를 뜻하는 튜터라는 명칭과 공부하는 학생들을 저니라 칭하는 호칭도 재미있다. 튜터들은 공부하는 선배의 자세로 학생을 대하고 좋은 질문을 토론의 장에 던져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토론의 질이 학생들의 배움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 질을 잘 올리기 위한 선봉장 같은 역할이 튜터 같다. 학생들의 배움의 자율성을 키워주기 위한 제도와 튜터가 학생처럼 배움에 즐거움과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학교의 분위기는 학생들이 덤으로 얻어가는 정신이다. 배움은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성장이 멈춘다. 하지만 튜터들이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로 쏟아내는 질문들이 학생들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질문이 답이요, 질문은 배움을 가져오고 그 질문은 배움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튜터는 좋은 질문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배움은 책 안에만 학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현명한 튜터의 조언 한마디는 내가 배움에 좌절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끙끙대다 지쳐 있을 때 언제 그랫냐 싶게 한 번에 다시 일어날 힘을 주었고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겐 배움이었다.'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다. 공부에서 만나는 한계를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학생을 이끌어 주는 튜터들의 낮은 문턱도 부럽다. '질문하라. 그리고 그 질문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배움을 얻어라.'라는 생각이 담긴 세미나 토론을 통해 고전을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훌륭한 스승들에게 인생을 사는 법까지도 배운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토론의 또 다른 이름은 소통이라고 한다. 토론을 통해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질료가 바로 고전이다. 고전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고, 고전을 읽었다라기 보다는 고전을 읽으면서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내가 이해한 만큼에 대한 나의 한계를 만나고 2명의 튜터와 학생들 간의 치열한 지적 전쟁이 일어나는 세미나 토론이 참으로 궁금해진다. 세미나 토론 진행 방식은 학생 스스로 토론을 잘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한다. 이 능력은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세인트 존스의 학교 시스템 중 코어(1년 동안 함께할 짝꿍 시스템)와 블랙리스트 시스템(서로 간 사이가 공부에 방해될 수 있어 엮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대학의 '개인 지도 과목'인 프리셉이라는 제도도 매력적이다. 3, 4학년의 1학기의 마지막 7~8주는 2명의 튜터가 세미나 수업을 각각 자신이 정한 프리셉 리스트를 공지하고 세미나 수업을 대체한다. 유일하게 자신이 선택한 책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학생들에게 물 만난 고기처럼 학교 생활을 활기 있게 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 같다. 25~30개 주제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세미나 수업보다 적은 10명 안팎의 학생들이 한 명의 튜터와 함께 배움의 깊이를 더해가는 게 진정한 대학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생각의 과정'인 고전을 시대순으로 읽으면서 인간은 본질적인 질문을 꾸준히 해왔으며 그 질문들이 철학, 수학, 과학, 문학으로 형태만 다르게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간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전 100권을 읽고 얻은 것은 다시 읽어야겠다는 절박한 다짐이 생겼고, 세상에는 배울 것들이 너무 많고,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이 많으며 생각해야 할 것 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배움이 익어가는 곳이 대학이 아니라 절박한 배움을 깨닫고 평생 공부로 이어지는 생각을 만들어 주는 곳이 대학이 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과 언어 수업은 4년 동안 진행되고 주 3시간씩 이루어진다고 한다. 언어의 경우 1, 2학년은 고대 그리스어, 3, 4학년은 불어 수업으로 구성되는데 그 이유가 원전을 독해하기 위한 언어 수업이라고 한다. 수학은 1학년 유큘리드, 2학년 데카르트, 3학년 뉴턴, 4학년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공부하고 그 과정을 증명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1, 2학년에 진행되는 음악수업은 악보 보는 법, 기본적 음악 이론, 피아노 한곡을 연습해서 연주하기, 그리고 2학년 때 진행되는 단체 합창 연습은 공부의 유희를 더 해줄 것 같다. 1,3, 4학년에 진행되는 과학 실험 수업 또한 인상 깊다. 생물의 기원으로 시작해 동물 해부실험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경험하고 이해하게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외부 전문강사를 초청해 공식 강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는 경청 습관과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기 위한 학교의 배려다. 이 수업은 학생이 원하지 않으면 듣지 않아도 된다. '세인트 존스는 살아 있는 배움의 장이다. St. John`s is a lively community of learning'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간다. 파티 문화와 야외활동, 자원봉사, 클럽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로 자칫 한 곳에만 쏠릴 수 있는 정신의 불균형을 막아 주는 것 같다.


영어 말하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생각을 나누며 공감하고 반박할 줄 아는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이 간다. 영어를 더 많은 세상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영어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로서의 영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배움이 즐겁고 영어로 소통을 배우고 한국이라는 작은 무대가 아닌 세계라는 무대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는 힘이 내 안에서 싹트길 바란다. 그 싹에 물을 주고 햇빛을 주고 사소한 것까지 볼 수 있는 디테일의 힘이 신의 손길을 만날 때 기적을 만나는 것이다. 세인트 존스 대학의 가르침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고 그들의 잠든 거인을 깨워준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살며 배우며 사랑하며'라는 오래된 책 제목이 떠오른다. 교육이 내용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방법에 더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뛰어난 교육 시스템이 하나의 등불이 되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배움의 즐거움을 주는 교육을 연구해야 하는 게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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