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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아홉 살 인생]- 위기철

by 조윤효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지나온 길을 한 단계 한 단계 조각내 기억해 내기는 힘들지만 뒤돌아 보면 유난히 서늘한 시기가 보이고 유난히 따스한 시기도 보인다. 위기철 작가의 소설은 그가 30대를 맞이 하기 전에 이 책을 통해 9살 인생을 보여준다. 그리고 글 후기를 보니 40살을 맞이하는 어느 날 30살을 맞이하기 전에 쓴 이 글을 제판하면서 글을 썼다. '30살 인생은 마음 똘똘하게 다져먹고 좀 더 잘 살아봐야지'라는 두 번의 똑같은 작가의 다짐글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시간의 속도가 빨라 망각의 속도도 같이 빨라진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20대, 30대 시절.... 이 시기에 내 삶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과거의 나와 오로시 만나는 건 그 시기에 써놓은 글들 이리라. 30살 소설가가 되어 9살 인생을 열린 감을 따뜻이 하나씩 현재의 바구니 속에 넣는 이 책이 좋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 9살 여민의 첫 슬픔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아빠 친구 집에서 2년 동안 얹혀 살면서 길에서 주어온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만 들고 들어갈 수 없어 결국, 아빠의 지혜로 강아지는 주인집 아이들의 선물이 되고 만다.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하던 날 다시 한번 느낀다. 물도 잘 나오지 않은 산동네에 수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그 너머로 아무도 살지 않은 널찍한 숲은 주인이 따로 있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가지고 있지만 살지 않는 숲을 보고 '오늘부터 저 숲의 임자는 우리야. 그냥 가지고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저 숲을 그냥 가지고 있어도 돼.'라고 여민이가 엄마에게 던지는 말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부자로 느끼는 법은 쉽고 간단하다. 세계지도를 쫙 펴놓고 작은 섬 하나 손으로 짚어 이건 내 섬이야라고 규정하면 된다. 어린 여민 이처럼.


여민의 삶에서 간접적으로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월급을 받으러 부산 간 아버지는 2달 동안 소식이 없고 기다리는 동안 돈을 벌기 위해 무허가 잉크 공장에서 일하던 여민 이 엄마는 그곳에서 일하던 어린 공원의 실수로 그녀의 한쪽 눈을 잃게 된다. 처음 산동네로 이사하던 날 밀가루 부침을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주면서 신기종 아이와 대면을 한다. 다 허물어져간 집에서 애꾸눈 엄마를 놀리는 기종을 때려준 여민은 후회를 한다. 부모 없이 오누이만 사는 기종이에 대한 미안함과 그래도 부모를 가진 자신의 행운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 사과를 한 여민이는 기종과 친구가 된다.


산골동네의 집들은 새벽마다 물을 길러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리고 비가 오면 그 귀한 물들이 하늘에서 집안 구석구석으로 떨어져 내려 집안의 모든 그릇들이 총동원되는 장면은 가난으로 불편이 일상이 된 삶을 보여준다. 자신의 집에 물을 기르는 일도 힘든데 옆집 토굴 할머니 집까지 물을 길러다 주는 여민이 아버지의 따스함을 보며 사람이 가장 큰 희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여민이의 편지 신부름도 재미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윤희를 짝사랑하는 골방 철학자의 편지를 전달하는 여민이. 대학까지 나왔지만 목표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골방 철학자의 방황이 안쓰럽다. 결국, 사랑도 얻지 못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안착시키지 못해 자신을 우주의 왕자로 생각하고 드디어 지구를 떠난다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삶을 접는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여민의 학교 생활은 살얼음판 같다. 가난한 아이에 대한 경멸의 눈빛을 가진 선생님에 대한 별명은 '월급봉투'다. 그저 월급 받기 위해 자신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어린아이들의 눈에도 보이는 것이다. 학교에서 우림이라는 여자아이와 친해지는 과정도 잔잔한 미소를 불러온다. 어린 시절 책상에 줄을 그어 두고 서로의 공간을 확인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여민이가 그린 그림이 50개 전국 초등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된 행운에 대한 이야기도 웃지 않을 수 없다. 철자가 서툴러 '꾸물 데는 아이'가 '꿈을 가진 아이'로 잘못 표기되어 입상하는데 한몫을 한 것이다. 우림이와 친해진 여민은 자신의 삶의 갈등 요인을 발견한다. 학교에서 여자 친구인 우림은 그가 특별한 아이이기를 바라고, 산동네 놀이 친구인 기종은 보통 아이의 여민을 원하다. 여민이는 자신을 보통 아이도 특별한 아이도 아닌 박쥐 같은 아이임에 몹시 피곤하다고 제법 철학적인 이야기를 한다. 특별한 아이는 욕망이고, 보통 아이는 현실을 의미한다. '욕망과 현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바로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우림이가 맹장 수술 때문에 한 달 만에 학교를 돌아와서 누구나 가진 맹장을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민에게 속상함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맹장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조차 기필코 차지하려 드는 멍텅구리들이 세상에 뜻 밖에도 많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혹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 또는 소유하고자 하는 것들 중에 맹장 같은 물건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미술 상 때문에 그 명성에 맞는 행동을 하려는 여민의 마음을 알아 버린 기종이 여민이가 그린 그림 노란 네모라는 별명으로 여민을 놀린다. 여민이는 이를 직업적 별명이라 부른다. '직업적 이유로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 나한테 썩 어울리는 별명이다'라는 말도 익살스럽다. 어른이 된 소설가는 자신의 삶에서 또는 우리의 삶에서 직업적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조용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산동네의 고단한 삶은 여기저기 부부싸움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일상이다. 가난은 불편하면서도 사람과의 불화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산동네 대장인 '검은 제비'의 아버지는 술주정 뱅이로 술만 취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고 집안 살림을 부순다. '도저히 용서하면 안 될 적들은 쉽사리 용서하면서,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의 가슴에 쉽사리 칼질을 해대고 있다.'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가난한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원망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쏟아내는 '검은 제비'의 아버지는 결국 길거리에서 술 취한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 아직 5학년 밖에 안된 검은 제비는 일을 해야만 하는 자신이 이제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끔 그를 본 여민이는 궁금해한다. 검은 제비의 팔다리가 여위어 가고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어른이 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씁쓸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기종이의 누이와 결혼을 하게 된 엿장수인 외팔이 하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옛 추억을 불러온다. 누나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기종은 화를 내지만, '사람은 서로 만나고 힘을 보태고, 그리고 강해진다. 그러한 세상살이 속에 사람은 결코 외톨이로 고독한 존재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인생이 갑자기 아름다워진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큰 울림을 준다. 누이와 외롭게 살던 기종이가 외팔이 하 상사를 매형으로 맞게 되면서 산동네를 떠나게 되지만 그들은 삶의 거친 풍파를 서로 막아 내며 잘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우림과 엉망이 된 숲 속 야유회 이후 학교에 가지 않고 숲에서 몰래 혼자 지낸 시간을 엄마에게 들켜 종아리를 맞는 여민이의 반응은 귀엽다. 10개의 회초리를 눈앞에 두고, 엄마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회초리를 하나씩 감하고 마지막 남은 회초리 부러질 때까지 맞아도 해맑다. 놀고 싶어 숲에 갔고, 학교에서만 배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학교에 가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혼자 노는 건 재미가 없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되며 사람은 자기 좋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회초리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꼬마 기사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어떤 슬픔과 고통도 피한 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회피하려 들 때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여민의 독백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 주인공이 보인다. 결국, 무단결석으로 학교에서 월급봉투에서 쓰러질 때까지 맞는 여민이는 그래도 열 살을 맞이한다는 말로 책은 끝을 맺는다.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든 어떤 상황이든 삶은 아름답다. 유태인의 비극을 무겁지 않게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자신을 앞에 두고 삶의 뒷 배경이 수없이 바뀔 지라도 그 해석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긍정적 해석력을 키워주는 게 책이다. 그리고 삶을 기억하게 해주는 게 쓰는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소설이 갑자기 추워지는 겨울의 손난로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의 화가가 되고 조각가 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따뜻한 마음의 난로가 그리운 이들에게 필요한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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