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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시작하는 철학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심강현

by 조윤효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 철학인 것 같다. 삶의 농도를 진하게 할 수 있는 힘도 결국 자신 안의 철학이 있을 때 가능하다. 책을 보며 <소피의 세계>라는 책이 떠올랐다. 서양철학을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이야기 식으로 진행한 책은 독자들에게 철학이라는 허들의 높이를 낮추어준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막연히 어려워 보일 것 같은 서양철학사가 친근해진다. 의사인 저자는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책을 통해 제대로 알고 있고 이를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이야기식으로 잘 풀어낸 그의 책은 그의 삶처럼 완성도가 높을 것 같다. 책 사이사이 저자가 그린 그림들은 주인공들의 대화를 쉽게 상상하게 해 준다.


책의 첫 장은 '나의 친구 카잔차키스와 스피노자, 그리고 니체에게'라는 글이 인상 깊다. 위대한 철학자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그 원대한 이상이 좋다. 책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편은 니체 편이다. 니체는 알면 알수록 그의 사상은 매력적이다. 저자에게도 니체는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철학자 중 한 명 인가 보다. '철학자 니체는 우리에게 위대한 정오를 향해 가보라고 말합니다. 정오란 무엇일까요? 이마도 그것은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우리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가 커갈수록 우리 역시 커간다고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에 매달리고, 연연하고, 안타까워 하며 이렇게 무작정 달려왔습니다. 그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 나라는 사람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 한 번을 사는 최초의 존재이자, 최후의 존재인데도 말입니다.'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자르고 싶어 하는 고슴도치는 시간이 멈춰버린 철학자들의 숲에서 스피노자를 만난다. 그와 함께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를 차례로 만나 당시의 철학을 배운다. 이데아라는 이상적 세계만을 진정한 세계로 보는 스승 플라톤의 사상에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가 더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스승에 대한 가장 좋은 감사의 선물은 스승을 극복하는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 대왕의 스승이기도 하다. 고슴도치 도우치가 아리스토 텔레스에게서 듣는 행복론은 기억해둘 가치가 있다. '어쩌면 행복이란 도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길가에서 우리의 눈길 한번 받지 못한 흔하디 흔한 소박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 내일을 위해 미뤄지는 오늘 속에서 말이야. 늘 미래로 연기되는 행복은 후회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몰라. 미래의 여신은 행복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리 뒤로 감춘 다른 손엔 한 다발의 후회도 쥐고 있거든.'


저자가 선택한 동물이 왜 고슴도치 였을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세상과 삶에 우리도 모르게 등에 가시를 잔뜩 달고 언제든 자신 안으로 쉽게 숨어 들어갈 수 있는 성향 때문은 아닐까? 어쨌든 도우치는 철학의 숲을 스피노자와 함께 대화 하면서 걸으며, 철학이 모든 학문의 험난한 인식의 바다 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항로를 비춰주는 등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존재는 자신이 품고 있는 가능성만큼만 이뤄낼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라는 스피노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잔잔한 물결이 되어 독자의 마음을 적신다.


다음으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를 만나며 인류가 금욕과 쾌락사이에서 방황해 왔던 이야기를 전한다. 이성을 중심으로 한 금욕주의를 내세운 스토아학파와, 쾌락주를 표방한 에피쿠로스학파를 소개한다. '우리는 살아서는 죽음을 만날 수 없고, 죽고 나면 이미 살아 있지 않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이 귀하다. 스토아 철학자 중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글도 여전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지지가 된다. 로마 멸망 이후 유럽은 중세 시대로 접어들고, 이때 철학은 위대한 학문의 어머니에서 신학의 시녀로 강등당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철학적 이성과 종교적 신앙의 간극으로 수많은 철학자들은 때론 숨고 때론 드러내 화형 당하기까지 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생각이 이끄는 관성을 이야기 한 데카르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자화상을 이야기 한 스피노자 그리고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서로 앙숙 같은 느낌을 주는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칸트를 지나 니체를 향한 도우치의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다. 외관으로 변화되는 인류의 역사보다 그 외관을 만들어낸 정신의 발전을 보여주는 과정이 흥미롭다.


니체 편에서 도우치와 나누는 대화에 밑줄을 긋다 보니 왜 니체를 연구하는 모임에서 사람들이 그가 말한 아포리즘을 외우는지 이해가 간다. 외워야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의 무게 속에 고귀한 사상들이 세상의 먼지 속에 잊혀지기에 가끔 먼지를 털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태어나기 때문은 아닐까. 니체가 두 우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반드시 주인도덕을 가진 강자가 되어야만 한다.... 주인이 되고 싶으냐! 그렇다면 네가 모든 것을 결정하여라. 너의 과거의 평가도 너의 현재의 일도, 너의 미래의 기도도 말이다. 그리고 네 꼬리를 자르는 것 역시...... 주인은 스스로 결정하는 자이니까.' 오래된 신을 잃어버린 세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신, 돈이라는 물신을 찾아내게끔 내몰았다는 니체의 말이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의문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종교 시대에 신을 위해 신의 이름으로 무수한 꽃들이 져버렸다면, 현재는 돈을 위해 돈의 이름으로 무수한 젊음이 죽어 간다는 말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인간이 왜소해진 것은 인간이 작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이 끝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란다. 인간은 스스로 하늘을 높여놓았고, 그럴수록 인간은 점점 왜소해졌다.' 자신만이 만들어낸 세계가 섬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은 바다다. 새인 우리가 섬을 떠나 더 높고, 더 가벼운 정신의 비상을 위해서는 내가 만들어 낸 섬이 더 확고하고 커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디오니소스처럼 살아가라는 니체의 말은 언제나 자신을 뛰어넘는 초인으로 살라고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매 순간 나를 뛰어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니체의 조언이 연말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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