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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철학, 역사를 만나다]- 안광복

by 조윤효

역사와 철학이 한 쌍의 연인처럼 서로 밀고 당기는 느낌이다. 저자의 눈으로 본 역사와 철학의 관계를 보여주는 글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역사와 철학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은밀한 유혹을 준다. 저자가 쓰는 독특한 표현들이 읽는 동안 웃음을 준다. 철학책을 '지혜를 가장한 수면제'라는 표현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여전히 철학책은 눈꺼풀에 무게를 늘리는 역할을 하기에 저자의 표현에 공감이 이루어진다.


'철학은 파편처럼 흩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의미 있게 엮어주는 날실이고, 역사는 허공에 떠도는 사변들을 현실로 풀어 주는 씨실이다.... 역사를 통해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라는 저자의 통찰이 들어간 고백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사이사이 보여주는 인물들의 사진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글들은 독자의 흥미를 이끈다. 저자의 글을 통해 문학, 역사, 철학이 함께 만나 하나를 이룰 때 온전한 지혜로서 그 기능을 다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저자의 지혜가 욕심이 난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에 대한 비교는 잘 알려진 내용으로 쉽게 책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두 나라 간의 전쟁에서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하지만 결국,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전쟁시일 때와 평화시 때가 달라 결국 변화를 못하는 사회는 다시 망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겸손과 예절 그리고 사회적 평등을 위해 공동 식사를 하게 했던 스파르타식의 절제된 논리는 여전히 오늘날의 군대 기강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욕구를 절제하고, 인내력을 기르며 용기와 명예, 희생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은 오늘날의 엘리트 교육이 지향하는 관점이다. 다수의 의견을 듣는 민주주의 사회였던 아테네의 경우 웅변을 잘하기 위한 소피스트들의 가르침이 중요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정신 일부가 오늘날까지 우리 일상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아리스토 텔레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 롭다. 유럽에서 발생한 그의 사상이 아랍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곳에서 다시 유럽으로 역 수출된 사상들이 유럽 신학과 연결되어 중세 특유의 '신화 같은 철학'을 탄생 시켰다고 한다. 서양 역사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같이 공부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


명문가나 번성한 국가에는 뚜렷한 도덕 기준과 목표가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 속에 깔려 있는 성리학을 기초로 한 유교 정신이 우리 사회의 특성과 방향을 정한것 같다. 이민족 문화에 관대했던 로마는 스토아 철학이 국가 철학 이었다고 한다. 모든 이들이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무를 명예로 하는 스토아 철학정신이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공자의 사상은 당시 노자 사상과 함께 생겨난 사상이었다. '흐르는 데로 두라'는 노자 사상 보다 위계질서나 인의 예의를 중시하는 공자의 사상은 '권력가들의 장식품'이었다는 표현이 이해를 돕는다. '실무적인 능력보다 인품과 조화를 강조하는 관료적인 분위기, 돈을 천하게 여기고 실용적인 관심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관행 등은 모두 유교에서 왔다.


인류의 문명이 전쟁을 거치면서 발전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비행기나 자동차는 1차 세계대전 때 군용으로 쓰인 후 일반화 되었고, 미국 국방성의 연락체제 개발을 위해 생겨난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실을 만들었다. 철학 또한 역사의 한 획을 긋기 위한 위대한 사상으로 태어나기를 거듭하는 과정이 느껴진다. '과거의 2,500년의 인류 역사가 자연을 개척하며 문명을 억지로 끌고 가는 인위의 역사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자연을 따라가는 친환경적인 문명을 요청하고 있다.'라는 저자의 의견에 깊은 공감이 간다.


춘추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한비자의 사상인 법치주의를 나라 철학으로 삼았다. 철권적인 제도가 풍요로워지면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에 눈을 뜬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적의 위협을 과장하고 검약의 미덕을 강조하는 것은 독재자들이 흔히 쓰던 수법이다.'라는 표현을 보며 우리가 지나온 근대 역사가 떠오른다.


십자군 전쟁은 신이라는 이름을 걸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형제 같은 종교가 수십 만 명을 죽게 만든 역사의 슬픈 면이다. 볼테르의 인용글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권력에 미친 성직자들이 벌였던 무자비한 전쟁'이 십자군 전쟁이었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버리면, 세상은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한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라는 저자의 표현이 인상 깊다. 유럽 1,000년 역사는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라고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가톨릭이 보편적 일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기독교 철학이 플라톤의 이상 세계를 향한 사상과 잘 매치가 되어 지금 세상은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가끔 거리에서 신도를 유치하는 열성 기독교 신자들의 외침에서 그 잔재를 느낄 수 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 시대의 철학은 우리 생활 곳곳에 우리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다. '학문과 인격 수양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주자학적 태도는 , 소모적인 당파 싸움의 원인이 되곤 했다.... 따라서 조선 시대의 정치는 정책 대결보다는 명분 싸움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이야기는 오늘날도 여전히 그 잔재를 느낄 수 있다.


신앙을 밀어내고 이성을 세우자 주장했던 데카르트의 삶과 어의 없이 삶을 마감한 이야기는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교회의 위협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웨덴 여왕의 철학 선생으로 새벽 5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으로 폐결핵에 걸려 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카르트 이야기를 보며 사상의 자유를 허락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도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르크스 사상이 20세기 지구촌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었지만, 결국 실패한 사회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단점을 치료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독이 아니라 약이 됐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니체의 초인 사상이 히틀러의 비틀어진 민족우월 주위로 변질된 과정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논리 실증주의의 '성경'처럼 여겨졌던 비트겐 슈타인의 <논리철학 사고>라는 책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언어가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쓰이는 말들이 실제 사태들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비트겐 슈타인의 말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이 더욱 궁금해진다.


역사가 철학과 연계되어 흘러 왔고 그 지나온 과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철학을 알아야 함을 알 것 같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되풀이되고 굴러간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철학을 알아야 한다. 나의 생각들이 어떤 통로로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것 또한 지나온 철학을 통해서 명백해질 것 같다. 지혜를 가장한 수면제 일지라도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평화로운 잠을 선사할 철학이 인생 학교의 필수 과목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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