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순례자로 불리는 저자 로버트 파우저의 언어를 배우는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미국인이 한글로 쓴 그의 언어 학습 역사 이야기는 신선하다. 어렵지 않게 유창하게 써 내려간 글들은 외국인이라는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어디 잘못 표현한 문장이나 단어가 없나?’라는 의문을 갖게 했지만 그의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든다.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영혼을 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저자는 대여섯 개의 영혼을 가진 영혼부자다. 16살에 일본에서 잠깐 거주한 인연이 되어 지속적 공부를 통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다. 저자만의 방식은 효과적일 것 같다. 그가 시종일관 이야기 하는 내용은 다른 사람들이 쉽다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는 자기와 맞는 방식을 찾아 꾸준하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쉽게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마음이 포기를 부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방식은 다독을 통한 어휘 습득과 기본 문법을 배우고 어휘를 획득하고 현장에서 그 관련된 사항을 실습하고 새롭게 얻어가는 방식이다. 일본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감각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 일본에 다시 가서 현장에서 부딪치고 일본어 신문을 꾸준히 읽어 잠든 언어 능력을 다시 깨운다. 스페인어 또한 고등학교 때 멕시코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언어를 습득한다. 다독을 통한 어휘로 무장하고 낮에는 현장에서 직접 써보고 밤에는 공부하여 언어를 마스터하기 위한 그의 실천이 아름답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 ‘세계를 보는 창이자 반려자’라고 칭하는 그의 언어학습 인생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준다. 도서관에 소장된 흑백의 사진 소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저자의 젊은 시절 일본 또래 아이들과 찍은 사진과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 중에 만든 한국어 단어장은 정감을 준다. 그를 미국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는 분명 세계인이다.
한국어에 능통한 그가 1995년 일본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친 교수였다는 것도 재미있다. 미국인이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상황은 색이 맞지 않은 양말 같지만 나름 패션이 되었던 것 같다. 2008년부터는 서울 대학교에서 6년간 국어 교육과 교수였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신문에 정기적으로 한글로 된 글들을 써오고 있고, 여전히 한국 지인들과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을 부지런히 진행해가고 있다고 한다. 2021년 책이 나왔던 그 시점이 한국 나이 60이 되는 해였다. 배움의 터에서 그는 청년임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언어에 대한 배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너무 어려워 포기한 독일어 대신에 그는 오페라의 언어라 불리우는 이탈리어를 배워가는 중이라고 한다. 삶이 배움의 연속이고 다른 언어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기쁨을 아는 저자를 닮고 싶다. 몇 해 전에 읽은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 씨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책이 떠오른다. 그 책 또한 훌륭했지만 배경지식이 짧아서 그랬던지 많이 어려웠었다. 한 언어를 마스터하고 책으로 쓸 수 있는 실력까지 갈 수 있도록 독자의 욕심을 올려주는 책들이다.
국제어라 불리는 에스페란토어는 1887년 폴란드 유대인 안과 의사, 라자로 자멘호프가 만든 언어다. 언어의 역할 중 하나가 일체감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라자로 자멘호프가 늘 편견과 사회적 이질감을 느끼던 유대인들이 세계공용어 실용화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성을 꿈꾸었던 게 당연했을 듯하다. 여전히 에스페란토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저자 또한 에스페란토어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나라와 인종을 떠나 서로 간의 일체감을 준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향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언어가 ‘에스페란토어’가 되었다. 진행이 더딘 스페인어 또한 저자의 권유처럼 꾸준하게 하되 너무 높은 목표보다는 성취 가능한 낮은 목표를 설정해야겠다. 징검다리를 놓듯 하나씩 흘러내리는 개울에 큰 돌을 놓아 보는 것이다.
한 언어의 문법은 뼈가 되고, 어휘는 살이 된다는 표현에도 공감이 간다. 문법은 스스로 조금씩 공부해 나가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의 책을 꾸준히 읽어 나가고 기회가 된다면 그 나라에 가서 일상생활에 부딪쳐 보는 방법은 따라 할 만한 방법이다. 공부를 위한 여행은 그 가치가 더 커질 것 같다. 또한, 시를 소리 내서 읽는 것은 발음 연습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언어의 시를 소리 내서 읽어 보는 연습은 학습자에게 재미적인 요소를 제법 줄 것 같다.
국제 발음 문자 개발 모임인 ‘국제 음성학회’에서 만들어낸 기호표 덕분에 언어에 상관없이 ‘하나의 소리를 하나의 글자로 표기’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다른 나라언어를 배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가 ‘언어 기호표’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도 생물처럼 성장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한다. 사라지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역사의 흐름 속에 더 큰 힘으로 성장하는 언어들은 분명한 노력들의 결과물이다. 중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언어가 확산되게 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세계 160개국에 545여 곳의 공자학원을 세우고 있는 중국은 언어의 확산이 자국의 영향력 확장에 효과적임을 알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세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작은 위안이 된다.
한 사회에서 어떤 외국어를 사용하는지가 그 언어 사용자의 교양과 사회적 지위 수단을 보여준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단지, 영어만을 배우기보다는 관심이 가는 나라들의 언어를 배워봄으로써 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언어의 멋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가져보는 것 또한 삶의 기쁨이 될 것 같다. 살아 있는 동안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보는 자세 또한 생기 있게 살아가는 좋은 활력제가 될 것이다.
AI덕분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손쉽게 이해하고, 여행지에 가서도 쉽게 간판이나 현지의 글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직접 배워야 하는 이유는 감정을 통한 진정한 소통은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언어권의 어휘를 그대로 쓰는 경우 그 어휘가 갖는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어 신선하고 활용범위가 풍부해질 것 같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 자신만의 ‘외국어 성찰’ 노트를 써보라는 저자의 조언은 감사하다. 자신이 배우고 있는 또는 배우다 실패한 언어의 시작 계기나 학습경험을 써보는 경험은 저자의 말처럼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도울 것이다. 쉬운 방식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함을 알 것 같다. 다독이 휴식 같은 공부라면 정독은 노동 같은 공부라는 표현도 이해가 간다. 내 눈과 뇌에게 계속 노출시켜 주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게 외국어를 배우는 첫 자세 같다. 이탈리아의 메초판터 추기경은 30개의 언어를 마스터했고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모국어 외에 1~2개 정도는 마스터해 보겠다는 다짐이 긴 인생여정의 길을 즐겁게 해 줄 것 같다.
세계는 이미 온라인 속에서 하나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그 문화를 알고 존중해 줄 때이다. 서로의 말을 아는 것이 문화 이해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외국어 학습의 의미는 실용적 수단이난 도구를 뛰어넘어 그 자체로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길잡이가 된다는 저자의 말이 다시 한번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세계가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고 있었다면 다채로운 인간역사를 만들어 낼 수 없었으리라. 다름과 이질성들을 통해 삶은 더욱 진보를 하고 있다. 새로운 영혼을 기쁘게 맞이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인들이 구사하는 수많은 언어 중 단 몇 개 만이라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미국까지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언어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