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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옷장에서 나온 인문학]- 이민정

by 조윤효

'70억 명의 사람이 있으면, 옷도 70억 벌이 있다'는 서두로 시작하는 글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에 대해 누군가의 생각을 만나는 일은 삶의 다양성 감각을 키워 줄 것이다. 옷이 나와 함께 일상을 함께하고 있지만 그 존재에 대해 깊히 생각하지 않았다. 옷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을 해 볼 필요성이 있다.


책은 패스트 패션, 에코 패션, 옷에 몸 맞추기, 고가 브랜드 패션, 옷의 상징성과 표현력, 유니폼, 모방 패션, 메이드인 코리아의 현주소, 옷의 처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스페인의 철도원 아들인 아마 시오 오르페가 만들어 낸 패스트 패션의 '자라'의 성장이야기를 들려준다. 옷, 신발, 가방 등 패션 제품 유행을 선도하는 게 세계 4대 패션워크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중 패션 워크에서 주목할 만한 아이템을 소개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잡지 '보그’의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패션쇼에서 그 한해에 유행할 옷이 퍼지는 과정 자체가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자라'를 창업한 오르페가는 사무실 옆에 옷을 바로 만들 수 있는 공장을 두고, 소비자와 패션계의 흐름을 보고 바로 연결해 6개월의 과정을 2~3주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자라’라는 이름 탄생의 이야기도 의외적인 재미를 준다. 처음 의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오르패가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에서 ‘조르바’라는 간판을 걸었다. 문제는 다른 업종에서 이미 쓰고 있어 그 간판을 재활용해서 만든 글자가 ‘자라’라고 한다. 아라베아 뜻으로 ‘따뜻한 빛’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장 밝은 빛은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만든다’라는 표현을 통해 페스트 패션의 문제점을 알려 준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창작품을 만들어낸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손쉽게 모방되는 풍토가 생겼고, 환경을 더 빠르게 오염시키며,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의류 생산 근로자들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어두운 이야기다. 건물에서 금이 가고 있어 붕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건물 통제를 따르지 않고 근무하다가 갑작스러운 붕괴로 수천 명이 죽은 사진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출근하지 않으면 한 달 월급을 깎겠다는 회사의 통보를 듣고도 붕괴의 위험이 있는 죽음의 건물로 무거운 발거움을 옮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람들의 힘겨운 삶도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 스며들어 있다.


‘소비자인 우리에게는 품질만이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더 뛰어난 제품을 구매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라는 저자의 선한 의지가 마음 따뜻해진다. 내가 가진 옷이 그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환경을 파괴하는 파괴자로서 탄생한 상품인지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옷 소재로 좋아하는 제품 중 하나가 면이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고 편안함을 주는 재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을 생산하기 위해 기르는 목화밭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2.5%를 차지하는 목화밭이 세계 살충제의 22%를 차지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농작물’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옷의 소재에 대한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다. 대나무로 만드는 옷이나 마로 만든 옷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옷의 원자재가 아무리 친환경적일 지라도 제조 공정의 차이로 인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알려 준다. 티셔츠 한 개를 만드는데 24 메가줄의 에너지가 든다고 한다. 메가줄이란 1톤짜리 물체를 시속 160Km 날려 보낼 수 있는 에너지 양이라고 한다. 티셔츠 한벌을 60도씨 물세탁과 건조로 낡은 때까지 입었을 때 65 메가줄의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한다. 옷을 사고 관리하는데 좀 더 신중해야 함을 느낀다.


옷을 통해 발생되는 인류의 역사이야기도 흥미롭다. 옷에 내 몸을 맞추기 위해 모델들의 거식증 이야기는 분명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춰진 가장 어두운 그림자 이야기다. 어느 순간부터 10대들의 입에서 자신은 살이 쪘다고 느끼고 먹는 음식에 칼로리를 따지는 이야기를 들을 때 조금은 당혹스럽다. 아이들의 초점이 외모에 맞춰지고 있고, 그 외모가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노출된 메스컴이나 SNS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으로 결정되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체질량 지수 BMI (Body Mass Index)에 대한 수치는 제법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되었다. 미국 생리학자 안셀키스가 제안한 몸무게와 키만으로 그 사람의 비만도를 제는 방법이다. 자신의 몸무게를 자신의 키 두 제곱해서 나눈 갑이 체질량이다. 이 수치가 18.5에서 23일 때를 정상에 속한다고 한다. 건강검진에 나온 체질량 수치가 생각보다 높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상인 범주에 속한 다고 하니 안심은 된다.


옷이 걸어온 역사는 흥미롭다. 특히, 코르셀 이야기는 웃음이 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멋지게 드레스를 차려입은 귀부인들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은 후 기절하는 장면을 보곤 했었는데 사람이 저렇게 쉽게 기절하는 장면은 조금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해 코르셀로 압박을 하다 보면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생겨 기절하는 상류층 여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기절하는 여자들을 위해 따로 방을 마련해 두는 사회적 배려(?)가 지금은 없어서 다행이다. 심지어 허리 13인치 여성만 출입을 허가했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든 이야기다. 중국에서 여자들이 도망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 발을 최대한 작게 만들기 위해 발을 꽁꽁 묶어 둔 전족, 한국에서 사대부 연인들의 머리 위에 무게가 나가는 가마 때문에 목이 부러지는 역사이야기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은 여전히 사회 속에서 그 제약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명품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수제 구두 명품인 ‘페라 가모’처럼 이야기를 품어서 이고, 샤넬의 제품 중 레고로 만든 가방 같은 새로움 추구 때문이며, 아무나 살 수 없어 자연스럽게 생성된 지위와 부의 상징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사회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 소개한 과시적 소비를 ‘베블린 효과’라고 한다. 가끔 신혼부부들이 필수 혼수 목록에 명품 가방도 포함된다는 것을 들을 때 조금은 씁쓸해진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의 명품 고객들은 제력도 되고 사회적으로 안정이 된 40대 이후가 주된 고객이라면 우리는 20대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마음이 무겁다. 젊음 이라는 명품을 가진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명품 물건을 가지기 위해 귀한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게 조금 안쓰럽다. 자동차 같은 제품 소비가 아닌 여행 같은 경험 소비가 더 만족감을 주는 삶의 소비형태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옷의 상징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특히, 브르카, 니캅, 히잡에 대한 아랍인들의 여성 전통 복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온 얼굴을 가리고 눈 있는 곳에만 격자 무니를 두어 볼 수 있게 하는 브르카, 눈만 내 놓는 니캅, 머리만 감싸는 히잡은 그 형태가 여성에 대한 보수성의 정도를 보여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부르카 착용 금지에 대한 법으로 한때 사회적 이슈가 된 이야기는 쉽게 찬반성을 던지기 어렵다.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칙 아래에서는 위반된 듯 하지만, 여성 인권에 대한 차원에서는 또 다른 할 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왜 옷을 입는가?라는 말에 주목받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노출도 장식의 한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옷을 통해 정숙과 장식의 논리적 모순이 끊임없이 사회 속에서 충돌되는 느낌이다.


옷에 다는 장신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시초가 된 미국의 히피들의 반전쟁 장식품인 로고는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떠 올리게 했다. 옷과 사회가 참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것 같다. 10대들의 교복 문화도 찬성하는 나라가 있고 반대하는 나라가 있다. 이는 사회가 공유하는 큰 공감대가 옷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교복은 독특한 유니폼이라는 말도 인상 깊다. 독일 나치는 제복의 상징성을 가장 잘 활용한 경우라고 한다. 휴고 보스에서 제작한 나치의 제복은 그 절도 있는 각들이 당시 젊은 이들의 선모 대상이 되게 했다고 한다. 유니폼은 나를 드러내는 옷이 아니라 나를 숨기는 옷이고, 자긍심을 고취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집단뒤로 숨을 수 있게 한다는 저자의 말도 공감이 간다.


의류 사업이 한때 우리나라 기반 산업으로서 중요한 역학을 했다고 한다. 사회가 발달한 지금은 의류 사업이 첨단 산업에 밀려 그 가치가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같이 잘 사는 나라들이 여전히 의류와 관련하여 고가 브랜드로 사회적 역할을 든든하게 하고 있음을 알 때, 지금 주춤거리고 있는 우리 의류 사업에 대한 애정이 필요함을 느낀다.


버려지는 옷에 대한 이야기와 아프리카에 기부되는 옷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준다. 우리가 입지 않는 옷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것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원조되어오는 질 좋은 옷들이 아프리카 의류 산업의 발전을 막고 또한 그로 인해 사회 제반 장치하나가 생겨날 수 없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놀라웠다. 값도 비싸고 질도 떨어지는 자국에서 생산된 옷보다는 싸고 질도 높은 선직국에서 기부한 옷들이 더 잘 팔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못 사는 나라에서 중진국으로 받돋움 할 수 있었던 그 기반에 의류제조업들이 한몫한 것처럼 그들에서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가장 큰 기부라는 생각을 한다.


옷이 주는 ‘후광 효과’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흘러 감에 따라 옷은 그 사회관이 담겨있는 귀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나를 나타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갈 아니 내 후손들이 살아갈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으로서도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옷을 입고 싶은가? 그 답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될 거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긴 울림을 주는 책이다. 옷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입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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