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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걷기의 세계]- 셰인 오마라

by 조윤효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이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생각을 준 책이다. 막연하게 걷기 예찬을 들어왔기에 뇌 과학자가 들려주는 걷기 세계에 대한 지식이 궁금해서 빌린 책이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네발로 걷는 짐승들과 달리 인간은 1년이 지나야 걸을 수 있는 그 힘든 과정을 선택했다. 결국,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덕분에 두 손의 자유가 생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형과 적응을 통해 지구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 같다.


전 세계 의사들이 개인 건강의 개선과 웰빙증진을 위해 걷기 과잉처방을 기대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걷기가 건강에도 좋고 뇌에도 좋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인간 최고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책은 걷기가 좋은 이유, 걷기의 기원, 걷기의 메커니즘, 뇌 안의 GPS, 도시의 걷기, 창의적 걷기 그리고 사회적 걷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걷기에 대한 건강학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학적 측면 그리고 걸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도시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을 심어 준다.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실험을 통한 두 그룹의 변화를 보여 주는 예로 ‘스트룹 과제’에 대해 언급한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행사 때 아이들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미국인 미셸이 소개한 스트룹 게임은 단순하지만 십 대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색깔과 색이름이 동일한 경우와 색깔과 색이름이 동일하지 않을 때 읽는 속도가 더뎌지고 실수도 한다. 게임을 바로 시작한 그룹보다 걷고 난 후 시작한 그룹이 더 높은 성취도를 보여주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학습활동 후 유산소 운동은 이전에 학습한 내용을 기억해 내는 능력을 개선시켜 주고 정기적인 유산소 운동은 세포를 생산하는 해마의 기능을 올려 준다는 것이다.


말미잘은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바위등에 붙기 시작하면서 움직임이 사라지면 자신의 뇌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뇌의 능력을 키워 나간다. 두개골에 갇힌 뇌가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마음의 소유자가 바뀌는 ‘인지적 이동’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두 발로 서는 인간은 동물들이 지칠 때까지 쫓아다니며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모든 유인원들보다 훨씬 더 멀리 걸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은 보행 시 에너지 소비법과 휴식 시 에너지를 보존법을 뇌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정확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각이 필수 적이지 않다고 한다. 단지, 공간감각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의견에 맹인들이 시각정보에 의존하지 않고도 원하는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알게 해 준다. 뇌 안에는 위치를 알려주는 GPS 같은 세포가 존재한다고 한다. 사막이나 흰눈으로만 덮인 곳에서 사람은 어느 정도 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치 재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확실한 단서가 없는 이런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걷게 되면 원을 그리며 걷게 된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살기 좋은 도시의 가장 큰 장점은 걷기 좋다는 것이다.’라는 도시 설계자 제프스팩의 말도 인상 깊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집중이 도시로 향하고 있다. 일반화된 도시 생활에서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때 생기는 장점도 공감이 간다. 저자는 이탈리아 볼로냐를 걷기의 적합성을 잘 갖춘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도시라는 거대한 환경을 걷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제프스펙은 도시에서 운전하는데 들이는 투자보다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투자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 도로를 ‘야외에 있는 거실’로 보자는 의견도 독특하다.


도시에서의 빠른 걸음은 생활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는 빠른 속도가 식당이나 버스 또는 지하철에서 보상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면 사람이 모이는 ‘응집 효과’가 있으며 자동차 의존도가 줄어들고 경제적 생산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는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 혜택들이 걷기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생활 속도를 가진 나라가 스위스라는 사실도 의외다.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에서 느긋하게 살 것 같은 나라가 스위스인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생활 속도로 생활하는 나라라는 것이 독특하다.


저자는 도시를 걷기 쉬워야 하고 Easy, 모두에게 접근성이 좋아야 하며 Accessible, 모두에게 안전하고 Safe, 즐거움을 Enjoy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감이 간다. 도심 속의 공원과 산책로가 왜 삶의 질을 올려주는지 알 것 같다.


‘걷기는 가장 좋은 약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지혜로운 식견이 오는 날까지 남아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앉아 있는 것은 오늘날의 흡연과 같다’는 저자의 일침도 기억에 남는다. 일상에서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코르티졸은 오전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다가 오후를 지나 밤이 되면 수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만성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는 정맥, 동맥경화 감정 조절 능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걷기가 산소와 에너지 소비가 활발한 뇌와 위에 도움이 되고, 규칙적인 리듬과 속도로 걷는 일이 뇌의 전반적인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근육량의 손실은 지속적으로 평생 새로운 뇌세포를 생산하는 힘을 잃게 만든다고 한다. 근육이 손실됨에 따라 뇌의 기능도 약화되고, 새로운 뇌세포를 생산하는 해마체의 기능을 떨어지게 하기 때문일 것 같다고 한다.


창의적 걷기에 대한 다양한 예는 참으로 많이 들어왔던 내용이다. 니체는 ‘걸으며 생각한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걸을 때 인간의 뇌는 단편적 기억력과 공간 지각 능력의 두 가지 뇌 능력이 교차되는데, 창의력이란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기 때문에 걸으며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창의력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휴식과 일을 번갈아 하면 창의성이 더 발휘된다고 한다. 일할 때 작동하는 뇌와 쉴 때 작동하는 뇌가 동시에 작용할 때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하니 일하는 중간중간 창의성을 위해 휴식이 중요함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인 구글에서 직원 사무실 사이사이 휴식공간을 배치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회사가 마치 대학교 캠퍼스 같다는 말을 통해 똑똑한 인재가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문화를 느낄수 있다.


아일랜드 수학자 해밀턴은 걸으면서 복소수를 3차원의 입체공간으로 확장하는 수학이론 ‘사원수’ 개념을 알아냈고, 그가 알아낸 날짜가 10월 16일이기 때문에 아직도 수학자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걸었던 곳에서 매년 걷기 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상깊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하고 두뇌에 지식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창의적 문제 해결에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이런 전제 조건아래 다르게 뇌를 더 활성화하면서 보완하는 방법이 걷기 같다. 일상에서 걷기를 계속 넣어 가고 있다. 업무 중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도 잠깐씩 사무실을 걷기 시작했다. 집중해야 할 특별한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을 때 기억과 의미를 처리하는 뇌 영역 전반에 걸쳐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니 아니 걸을 수 없다. ‘인간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 워커들이다’라는 말과 함께 일상에서 부지런히 걷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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