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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나는 달리기로 마음의 병을 고쳤다]- 스콧 더글라스

by 조윤효

한때 매일 아침 같은 시간을 달리는 중년 여성을 보면서 궁금했었다. 힘들 것 같은데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강변을 홀로 달리는 그녀의 몸은 여성스러움 보다는 강인함이 보였다. 즐긴다기보다는 달려야만 하는 건강상의 이유가 먼저 떠오른 건 아마도 깊이 새겨진 내 선입견의 문제였으리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수많은 활동 중에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일독한 책이다. 달리던 그녀를 대신해서 편집기자였고 러너의 삶을 살고 있는 스콧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기분이 불안한 ‘기분부전장애’를 가진 저자는 매일 달리기를 한 덕분에 더 잘 늙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한다. 그는 하루살이가 태어나서 먹지도 않고 종 번식만 하고 죽는 과정을 19살에 접하고 삶에 대한 허무를 가장 크게 느꼈었다고 한다. 하루를 더 살고 이틀을 더 사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인간의 삶도 결국 그 길이에 상관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가끔 그 허무의 물결이 나에게 찾아올 때 일상이 뒤로 물러나게 된다. 저자는 30살이 되어서야 그가 ‘기분부전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0대 후반부터 달리기를 통해 막연한 불안과 우울을 발로 치료한 러너의 이야기는 잔잔한 물결처럼 평온함을 준다.


규칙적인 달리기는 정신적 면에서 효과가 가장 크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은 작업기억과 시공간적 처리 능력을 올려 준다고 한다. 또한 운동과 가장 일관되게 관련을 맺는 부분이 계획을 세우고 조직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행 기능 능력을 올려 주는 것이라고 한다. 마라톤 주자들이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몆 주, 또는 몆 달 전부터 운동 훈련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중심을 잠시 살짝 옮겨주는 역할도 할 것 같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삶의 의미성이라는 질문이 문을 두드릴 때 달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전체 삶의 무게 중심의 위치를 살짝 건드려 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규칙적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서는 일시적으로 창의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을 통해 인지 조절 과정을 강화하는 것은 그 지속 시간이 짧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동안이나 끝낸 직후에만 수행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분과 40분 운동 후 창의력 검사를 했을 때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운동이 끝나고 30분 후에는 운동을 더 길게 한 쪽이 더 지속적인 성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출구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 때 그리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할 때 뛰고 난 후 생각해 본다면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중년기의 운동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뇌를 위해 큰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자신의 60세, 70세 또는 그 이후의 노년을 봤을 때 더 일찍 시작하고 더 오래 달릴수록 운동의 이점이 더 커진다고 한다. 40대부터 시작하는 운동이 노년의 건강을 보장하는 보험 같다. 노후를 위해 연금을 들고 보험을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 매달 보험들 듯이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 결국, 건강이 노년 삶에서 필요한 재산을 아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달리기를 통해 '최대 산소 섭취량’을 올려 줄 때 인지 기능에 가장 큰 이득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운동하는 동안 숨으로 들이마신 후, 움직이는 근육까지 전달할 수 있는 산소량의 최대치가 ‘최대 산소 섭취량’이다. 이는 유산소 운동 측정 기준이다. 근육은 운동 후 더 빠른 회복을 위해 ‘카뎁신 B’ 단백질을 내보낸다고 한다. 카뎁신 B의 순환 농도가 증가하면 뉴런이 더 많이 자라게 하는 해마의 크기를 확장시켜 주는 ‘뇌유도 신경생장 인자(BDNF)’가 더 많이 생성된다고 한다. 중장거리 달리기와 저항력 훈련, 고강도 인터벌 훈련은 BDNF 농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울증과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도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약물로만 의존하기보다는 약물치료와 달리기가 병행될 때 결국, 약물을 끊고 자신의 힘으로만 기분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신 또한 같은 과정을 겪으며 극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달리기는 짧은 시간 내에 명랑함으로 바뀔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미국에서 우울증과 관련된 질병이 29%나 되고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해 주는 3대 약 중 하나가 우울증 약이라는 말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함은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허기에서 오는 것이다. 육체를 활발하게 움직이게 해 줄 때 정신은 극복할 힘을 몸 안에서 생겨나게 하는것 같다.


흔히 달리기를 하면 ‘러너스하이’라는 황홀감을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책에서도 몰입 상태와 러너스 하이의 비슷한 점을 비교해 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힘이 들지 않으며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상태의 황홀감이 공통점이라고 한다. 흔히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몰입이나 러너스 하이 같은 감정상태에서 나온다고 알고 있지만 또 다른 호르몬 ‘엔도카나비노이드’도 분비 된다고 한다. ‘엔도카나비노이드’는 마리화나로 인한 황홀감을 일으키는 동일한 수용체라고 한다. 인간이 수렵-채집 생활로 진화를 해오면서 움직임을 계속 진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뇌에서 인간의 지속적인 움직임을 유혹하기 위해 할머니의 숨겨둔 사탕처럼 인간에서 조용하게 꺼내주는 선물 같다. 최대 속도의 70~80% 정도로 30분만 달려도 이런 선물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5~10Km를 중간 속도로 달릴 때 젖산 제거 능력이 올라가고 더 빠르게 오래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처음이 힘들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우리 몸이 알아서 우리를 이끌어 줄 것 같다.


‘달리는 사람은 모두 러너다.’ 저자의 명쾌한 정의가 달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함께 뛰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사회성이 정신 건강의 큰 힘이 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신체적 친밀감과 만족스러운 대인 관계를 맺을 때 우리 뇌는 옥시 토신 호르몬을 배출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대화 시 서열을 지으려 하고, 여성은 서로 유대 관계를 맺기위해 대화를 한다고 한다. 함께 달릴 때 사회적 유대감이 생기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함께 앞을 보고 달리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쉽게 친밀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연구 결과에서 하루 2시간 이상을 SNS을 보는 사람이 30분 이내 보는 사람보다 ‘사회적 고립감’을 2배 이상 느낀다고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경구나 만트라를 말하거나 호흡에 집중을 하면 명상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달리기와 마음 챙김 명상은 ‘바로 지금 순간 펼쳐지는 경험들에 무비판적이고, 의도적으로 집중할 때 생겨나는 각성 효과’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음 챙김이 ‘세상의 중심은 나다’라는 미덕의 탈을 쓰고 자기중심적으로 흐리기 쉽다면 달리기는 그런 부작용은 없다고 한다. 달리기를 통한 자기 효능감을 얻은 저자의 ‘달리기 예찬론’은 독자를 조용하게 러너의 삶으로 이끌 것 같다.

‘내 인생은 매일이 거기서 거기’인 현상에서 달리기는 시간을 차별화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저자의 의견을 따라봐야겠다. 세상을 체험하는 다양한 활동을 만나보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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