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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절제의 기술]- 스벤 브링크만

by 조윤효

‘철학하기 좋은 날, 철학하기 좋은 책’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책이다. 덴마크 심리학 교수의 철학 이야기를 통해 삶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를 바라며 일독했다. 그는 사회에 의미 있는 통찰을 준 지식인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 ‘로젱크예르상’을 수상할 만큼 통찰력 있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힘을 가진 사람 같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의 삶이 우리에게는 짧아 보이듯이 수천 년 동안 세상을 지긋하게 바라보는 도심 속의 산들은 100년을 분주하게 살다가는 인간 삶의 단기성을 알고 있을 것 같다. 가끔 집 근처에 있는 산을 오르면서 그 큰 산과 마주하면서 든 생각이다. 요란한 도심 속 뒤에 산은 그지없이 조용하다. 잠깐을 방문하면서도 수십 가지 생각과 욕심을 가지고 오르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지켜봐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느라 욕심내느라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놓아 버리면 안 될 것 같다.


유혹의 시대다. 해야 할 것도 많고 갖추고 있어야 할 것도 많아 보여 생각은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는다. 저자는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선택지 줄이기,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하기, 기뻐하고 감사하기, 단순하게 살기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뒤쳐지기가 그 원칙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원칙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흔들리는 마음의 닻을 고정할 수 있는 지혜기 필요하다.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나온다’라는 괴테의 말로 시작하는 책은 삶의 가장 기본 원칙이 기쁘게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기 절제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토대로, 어깨에 놓인 책임을 기꺼이 짊어진 채 최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더 적게, 대신 더 철저하게 해라’라는 인류 학자 해리울컷의 말을 인용해 삶에서도 ‘더 적게, 대신 더 철저하라’는 원칙을 적용 하기 위해서는 선택지를 줄여야 한다. ‘쾌락 적응’이라는 말을 소개한다. 행복 수준이나 욕망은 충족되고 나서 다시 이전의 기준치로 되돌아가는 성향이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도 어느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계속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오늘날 행복 산업은 ‘당신이 성취하게 될 멋진 일들을 상상해 보라’는 긍정적 시각화로 사람들의 기준치를 흐리게 한다. 저자는 스토아학파의 ‘우리 삶이 지닌 필연력적인 한계를 깨달아라. 바로 죽음이다’라는 말로 부정적 시각화도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 가짐 중 하나임을 알려준다.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나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단지 ‘행복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라는 선언으로 행복과 불행의 책임을 오로시 개인에게 전가하는 현상을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덴마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가 ‘얀테의 법칙’때문이라고 한다. 얀테의 법칙, ‘내가 대체 뭐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또한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자만하지 말 것이며, 성공에만 목메는 일은 다소 천박하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에 삶에 대한 낮은 기준으로 실망과 실패를 잘 견디는 덴마크 인들의 기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행복지수와 관련된 높은 수준의 평등, 복지, 타인에 대한 신뢰가 덴마크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이며, 그 속에 사는 개개인의 행복 기준치에 영향을 준다. 요란하지 않지만 조용한 음률이 사회 전반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우울증 확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행복을 빼앗는 선택의 역설이다. 개인주의, 개인의 통제와 선택을 강조하는 현대 문화가 우울증에 맞설 예방백신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일침이 들리는 듯하다. 즐거움과 좌절의 결합인 디지털 생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만나고 공감하고 교류하는 사회적 능력이 중요한 기술임을 알려준다.


우리가 삶에 의미 있는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보다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형성의지’를 주장한 신학자 이자 철학자인 로이스 트루프의 사상도 깊이가 있다. 이 의지를 우리 삶의 기본 조건으로 가지라고 한다. 자신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하고, 목숨을 잃을지언정 흔들림 없이 단단히 서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치에 저항한 독일 청년과 종교의 부패에 맞설 수 있었던 루터는 자신답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는 정신을 보여준다. 삶은 한계가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실존적 관점에서 한 가지만 바라려면 다른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절제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엇에 마음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과 실망, 슬픔을 무릅쓰면서도 마음을 쓰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우리가 사람들의 일부가 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재치 있는 철학 에세이를 쓴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말을 인용해 마음을 쓰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임을 알려 준다.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바랄 때, 그 대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한 가지가 된다’라는 말은 생각의 길이를 늘이며 이해해야 하는 문구다. 아무런 틀이 없는 삶은 결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아니다. 우리가 의미 있게 여기는 가치인 사랑, 우정, 성취감등에는 모두 일정한 틀이 있고, 우리는 그 틀 속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무런 틀도 가지고 있지 않고 눈앞의 욕망만 쫒게 된다면 결국 불행해진다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서 제법 성공한 이들의 일탈의 원인을 알 것 같다.


인간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내면’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내면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고, 우리 삶은 비판적으로 검토될 때만 살 가치가 있다는 말도 인상 깊다.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상상과 예술, 꿈에서 사는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가능한 가장 선한 인간이 되는 법을 다른 사람과 함께 정의해 보고, 아름다운 선에 대한 고민을 토론하고 이야기 나눈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검토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 인류 역사는 욕망이 실현되었다고 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함을 보여 준다. 전부 붙들고 다 이루려고 애쓰느라 정작 중요한 게 뭔지를 모르게 되고, 틀 없는 삶의 욕망에 휘둘리고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서양 철학의 기본 사고방식이 ‘우리 각자는 자립적인 인간으로서 각자 내면의 소망과 취향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존재’라는 소극적 허무주의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원래 별도의 의미와 가치가 없다. 그것을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주관적으로 찾아야 한다.’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볼 때, 타인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상호 의존성’은 현실에서 관계를 맺고, 함께 나누는 구체적인 개인들의 관계망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절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소통의 도구인 언어 또한 절제 기술이 필요하다. 키르 케코르가 말하듯이 우리의 고통은 말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나온다는 말도 기억해 두어야겠다.


좋은 삶을 원하면 그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신이 하는 일 만큼이나 ‘하지 않은 일로 규정되는 존재’이기에 하지 않기로 하는 저항하는 능력, 선택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시간과 맥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자기 동일성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틀이 된다고 한다. 철학자 폴리쾨르의 말에서 빌려온 ‘자기 동일성’을 지키기 위해 삶을 하나의 전체로 성찰하고,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삶을 하나의 서사시로 보라고 한다. 다양한 서사와 탐험을 통해 자기 동일성을 만들고 지켜 나가 하나의 서사시로 삶을 이끌어 가는 게 좋은 삶일 것 같다.


삶은 우리가 세상을 공부하고 배워가는 과정이다. 미셀 푸코의 ‘실존의 미학’ 개념이 아름답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기고, 예술로서 삶을 이해할 때 미학은 윤리적 삶을 살아갈 전제 조건이 된다고 한다. 삶에 대해 미학적 형식이 없고, 윤리적 의무를 실천하지 못하며, 제한과 규칙이 없다면 세상에는 그저 강한 자들이 마음대로 힘을 휘두르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형식 없는 자유는 없다. 개인의 삶 또한 아름다운 의례를 갖출 때 테크놀로지의 위협에도 더욱 잘 대체할 수 있음을 알 것 같다.


한 사회의 뿌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 존재가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우리 삶이 곧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조적적인 혁신과 파괴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지 말고 우리가 사는 시대와 장소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줄 알아야 일상을 반복할 용기도 나오고, 우리 모두가 충분히 행복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은 깊은 감명을 준다.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 한 중앙에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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