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두각 되는 게 책 읽기다. 얇은 개울이 깊은 바다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책을 읽기 전에는 무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읽을수록 무지의 광활한 땅이 보인다.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그 황량한 불모지를 그냥 둘 수 없는 농부의 마음이 든다. 계속 읽어 가다 보면 황무지가 개간되고 그곳에 식물이 자라고 결국 풍성해지는 숲이 만들어 지기를 희망한다.
인지 과학자들의 책이다. 싶게 들어갔다가 어렵게 나오는 책이다. 쉽게 표현되어 있지만 무게감이 든다. 읽는 속도가 더디어지는 이유가 다양한 내용을 뇌가 소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릿속 지식과 타인에게 저장된 지식에 의존해 사는 환경에서 지식을 한데 모으면 인상적인 생각이 탄생한다는 저자들은 한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현대는 지식 공동체의 산물임을 깨닫게 해 준다.
복잡한 사실은 사건의 안갯속에서 사라지고, 누군가의 손에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 각종 이익 집단의 신화로 재구성된다는 말은 날카로운 칼날 같다.
지식은 우리가 만든 물건에도 있고, 우리의 몸과 일터에도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있다. 우리는 지식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 지식뿐만 아이라 타인의 지식인 외부의 정보로 무엇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종이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종으로 삶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지식을 공유하고, 축적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는 말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과 타인의 지식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선이 없어 자신의 정보와 외부의 정보를 연속선상에 두는 우를 범하기 쉬운 시대도 현대다. 주위의 넘쳐나는 지식들이 마치 내 것인 듯 착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중요한 결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는 내용과 알고 있다는 착각이 부르는 지식의 착각 그리고 현 인류 진화의 가장 큰 생각인 지식 공동체의 특징들을 하나씩 알려 준다.
개인의 지식이 타인의 지식과 복잡하게 얽혀있어 개인의 신념 태도는 공동체의 가치관에 따라 정해지고 집단이 대신 생각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책을 보면서 영웅을 이해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지식은 한 개인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한 것을 한 개인이 표출시킨 것이다. 개인을 존재하게 한 그 집단에 주목해야 함을 권유한다. 한 명의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한 명의 뉴턴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지적 영향 범위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환경과 타인의 지식들이 어떻게 그들의 생각들이 발현되도록 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함을 알 것 같다.
지식 공동체의 가장 큰 표본인 인터넷 세계의 지식들이 가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 외부 지식을 이용해 개인이 새롭게 조각내고 조합해서 또 다른 지식을 창출해 내는 시대이다. 나의 무지를 알되 타인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함을 알 것 같다. ‘개인의 역할은 각자의 정신 능력보다 함께 일하는 능력에 많이 좌우된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어느 순간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진 사회에서 모든 것을 통달한 개인이 없다.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처럼 개인은 자신이 맡은 그 영역밖에 모른다.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 개인들이 자신의 일을 완수하고 나면 최종 그것을 조합해서 하나의 물건이 탄생하는 구조다. 전체를 아는 개인이 없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우리의 무지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이다. 매일 쓰는 물건들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원리를 딴 세계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진 앎이 있다. 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알려진 무지가 있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무지도 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담아낼 수 없다. 나의 지식과 타인의 지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집단 지성을 이용해 개개인이 자신의 영역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과 관계 추론이 뛰어난 인간이지만 각자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면 피상적으로 추론하는 경향을 뛰는 게 인간이다. 인간의 뇌가 외부에도 있는 것이다. 개인이 외부의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능력이 커지고 몸을 비롯한 세계는 그 자체로 기억 장치이자 외부 보조 역할을 하면서 개인을 더 현명하게 만든다.
전문가 들조차도 완벽하게 현상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일본의 원자력 폭탄 사건을 예로 보여준다. 완자력 폭발이 전문가가 예측했던 폭발력보다 훨씬 커 인류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9.11 테러 또한 예고가 있어 보완을 철저히 진행했으나 여객기 납치로 건물에 바로 비행기가 돌진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 어떤 전문가도 예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과 벌의 중요한 특성이 여러 구성원이 협력해서 거대한 지능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남들과 의도를 공유하는 능력이 있고, 관심을 공유하고 서로 인지할 때 경험의 본질 이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함께하는 일과 함께 성취할 수 있는 일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종으로 만든 것 같다. 지식공유로 의도를 공유하고 공동 목표를 추구하여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통해 배우고 협력했기 때문에 인간이 특별해진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으로 의도를 공유하고 지식을 저장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누적 문화 현상이 지금의 인류 발전의 가장 핵심 역량이다.
사람이 서로 동의한다면 가진 지식의 양이 달라도 세계의 같은 부분을 가리킨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인터넷은 쉽게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쉬운 공간이다. 함께 모인 개인들이 사회에 큰 힘을 행사하고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편협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개인은 모두 피상적 지식만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인지 노동의 분배가 이루어져 있지만 남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만 무엇인가를 알면 치러야 할 대가가 생길 것임을 저자들은 조용하게 말한다. 내가 실제 보다 더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판단력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깊이 확인하지 않을 경우 쉽게 어려움에 빠지는 삶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의 신념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것이 기에 신념을 바꾸기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도 알 것 같다. 때로는 공동체가 인과 모형에 이끌려서 과학을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신념은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성에 공유되기 때문에 바뀌기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가 거울의 집에 있는 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고, 편협함 때문에 더 무지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독일의 히틀러가 이런 인지적 착각을 잘 활용한 리더라고 한다. ‘집단 구성원들이 사실을 잘 모르는 채로 입장을 공유할 때는 구성원들끼리 이해 한다는 느낌을 서로 강화한다. 그래서 확실한 근거가 되는 지식이 없는데도 모두가 정당하고 명백한 사명을 가졌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과적 설명이 인류 진보의 큰 힘이 된 것 맞다. 원인을 알 때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입장이 결과가 아니라 신성한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면 착각을 깨트리기는 어렵다는 말에 종교적 집단의 극한 광기로 발생된 인류 전쟁의 역사가 이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면서 무지를 일깨워야 한다.... 성숙한 유권자라면 세상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는 지도자를 가려내려고 노력한다’라는 말도 인상 깊다.
특정한 발견을 적절한 조건이 조성되고 적절한 배경 이론이 정립되고 데이터가 수집이 되어 과학은 발전되어 왔다고 한다. 우수한 기술자나 연구자들의 최종 결과물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이루어 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개인 수행 능력보다 구성원들이 얼마나 함께 잘하는지 집단 수행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듀이의 학습관이 미래 인재를 키우는 방식에 대한 조언이 된다. ‘한 개인을 가르치기보다는 세계와 타인에게 의지해 학습하고 상호 작용해 사실을 알아내 정보를 보유하는 인간을 교육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기술로 공감과 경청을 이야기한다. 생각의 기술을 가르쳐 의사소통을 통해 생각을 나누게 해야 한다고 한다.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조용하게 환경을 바꾸어 넌지시 행동의 변화를 이끄는 넛지 방식에 대한 신뢰가 간다.
금융 투자자인 레이 댈 리오의 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명한 조언이 될 것 같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그는 성공했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잘 다루어야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통해 내게 결여된 외부의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무지를 인정하고 외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서 내 삶의 의사결정에 넣을지 생각해야 한다. 지식 공동체의 일환인 사회적 특징을 인정할 때 무작정 따라가기보다는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