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동남부 아프리카]-손휘주

by 조윤효

모든 인류의 고향일 수 있는 아프리카 여행기다. 편하고 깨끗하고 안락한 곳만이 여행지는 아닌데 어느 순간 길들여진 느낌이다.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책의 편식이, 음식의 편식이 이롭지 않듯 여행의 편식은 삶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폭을 줄일 것이다. 대학생 지리학도의 유랑기인 책은 아프리카의 삶이 드러난 사진들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그곳에 함께 걷는다는 기분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35개국 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행 베테랑자의 눈빛과 음식이나 생활의 불편함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저자의 그 용감하고 대담한 마음이 느껴진다. 저자의 책 덕분에 대학시절 배낭여행 중 이탈리아 공원의 그 한적한 곳에서 느꼈던 위협감이 생각났다. 유일한 동양인이었었고, 눈썹 진한 이탈리아 남자들이 일본 여자들을 노린다는 어설픈 이야기로 잔뜩 긴장했던 그 마음이 나도 모르게 살며시 올라왔다. 그들 눈엔 한국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되지 않으니, 실수하면 '스미마생'이라 말하면 된다고 팁(?)을 준 사람도 떠오른다.


아프리카를 여행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매체를 통해 또는 책을 통해 바라보는 아프리카는 가난과 전쟁이라는 두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 또한 삶이 있는 공간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그 편견은 무관심이라는 포장으로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막이 되었을 것이다. 가공되지 않은 그 자연의 상태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2013년 9월부터 86일간 동부 아프리카 케냐를 여행하고, 다시 2015년 6월부터 41일간 남부 아프리카 6개국을 여행한 후 2016년 8월부터 85일간 동남부 아프리카 7개국을 여행한 후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아프리카는 수천 개의 부족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가 그들의 삶을 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선택 덕분에 근접해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19세기 포르투갈,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강대국에 의해 하나의 큰 대륙이 나라 나는 이름으로 선이 그어졌다.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 인들이 유럽과 미국에 팔려가고 자원이 약탈되어 가는 그 슬픈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라들이다. 20세기에 와서야 많은 동남부 아프리카 국가가 탄생했다고 한다. 각 국가 지도층의 국정 기조와 국가 운영 방식으로 인해 정치, 경제, 문화등의 분야에서 국가별 차이가 뚜렷하다고 한다. 저자가 직접 그림 지도가 근접해 있는 나라와 여행 경로를 친절하게 보여 준다.


저자의 글 중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가난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하다.....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살 수 없는 땅이다.’라는 말이 아프리카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문구 같다. 위험과 가난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다양성의 마음으로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게 핵심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남아프리카로 시작해서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그리고 탄자니아로 향한 여행기는 하나의 조각들을 찾아다니며 결국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려내는 퍼즐이 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3개 수도 중 하나인 케이프 타운은 많이 들었던 지역이라 친근한 느낌이다. 학원에서 근무했던 몇 분의 남아프리카 선생님들의 설명 덕분에 낯섦 보다는 호기심이 더 생기는 지역이다. 남아공 요하네버그는 가장 불친절한 도시로 세계 1위라고 불리고, 실패한 도시라 불리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도 삶의 향기가 난다. 인종 차별 관련 정책이 1994년에 폐지되고, 흑인 최초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나라다. 서서히 새롭게 변화를 추구해 가는 아직 달리지 않고 있는 흑표범 같은 느낌이 든다.


잘 지어진 건물들이 들어앉은 도시 중심 사진과 극빈자 주거지 소웨토 사진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빈부격차와 인종 간의 차별이 느껴진다. 네델란드인과 영국인들이 케이프 타운에 무역기지를 설립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곳에 유럽인의 유입으로 ‘세계적 다문화 도시’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흑인과 백인 거주 지역이 구분되어 있고 서로 잘 섞이지 않는다는 말을 남아공 선생님들에게 들었었다. 나누고 자르고 구분 짓는 문화는 붙이고 화합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인류 역사는 보여준다. 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변화를 주도할 때 인류는 더 큰 진보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넬슨 만델라가 18년 동안 갇혀 있었던 로벤섬이 도시로부터 떨어져 홀로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사진이 인상 깊다.


‘별은 가낭 어두운 곳에서 빛나고, 물은 가장 메마른 곳에서 맛있다’라는 문구가 밤하늘 사진과 함께 나미비아를 소개한다. 건조한 곳에 큰 농장들의 사진은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흙먼지 날리는 황색의 땅 위에 우뚝 솟아난 포도 넝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해협인 피시리버 캐니언과 함께 이색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붉은빛에 가까운 주황 모래 색채를 뛴 나미브 사막은 세계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다는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막이 숨을 쉰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자원의 저주 없이 국정 운영 성공 사례로 알려진 보츠와나는 2016년 부패 인식 수준에서 세계 3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52위) 저자의 인용글인 ‘고인 물은 갈 곳을 잃었지만, 많은 생명의 살 곳이 되었다’라는 표현이 마치 수도 가보레네를 말하듯이 느껴진다. 사람이 모여 도시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명이 살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또한 사람이다. 고인 물이 생명의 도시로 바뀌도록 도시를 이끈 지도자들의 현명함이 후손들에게 안전한 생활의 터전을 선물한 것이다. 1800여 종이 넘는 오카방고 델타는 우기에 쏟아 들어온 물들이 건기가 되어 물을 필요로 한 동물들이 모여들게 만든 낙원이 된 것 같다.


100억 달라로 달걀하나도 사기 힘든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하고 있는 짐바브웨 이야기는 안쓰런 느낌이 든다. 이른 아침부터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선 사진은 생활의 고단함이 풍긴다. 여행경비 절감을 위해 홀로 텐트 치고 잠을 잔 공원의 밤 풍경 사진은 고즈넉스럽다. ‘원숭이들이 뛰어놀고 온갖 벌레가 노래를 부른다. 별은 반짝이고, 바람은 부드럽다’라는 저자의 말이 노래처럼 들린다.

바위를 뚫고 들어온 밝은 빛의 햇살 사진과 파란 코발트빛 물웅덩이를 보여 주는 치노이 동굴도 신비감을 준다. 잠비아와 짐바브웨가 함께 공유하는 인공호수와 카리바댐은 물이 생명 같은 아프리카에서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할 것 같다.


현지어로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오아툰야 폭포(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의 잠재력을 닮은 듯하다.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담아낸 저자의 모습을 통해 사진이 아니라 지구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잠비아의 로지족은 아직도 왕이 있고 우기가 오면 이동하는 행사가 이 지역의 중요한 의례라는 말에 그 광경을 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버스를 이용할 때 승객이 다 차야 출발하는 원칙 때문에 기본적으로 1~4시간을 기다리는 일상이 참으로 낯설다.

말라위의 좀바 공원의 고즈넉한 사진과 말라위 호수에서 두 아이가 해 질 녘 뛰어노는 사진이 아름답다. 흙위를 기어가는 뱀 같은 느낌을 주는 탄자니아의 유베야 도로도 이색적이다. 120개 이상의 부족이 공존하고,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킬리만 자로가 있는 탄자니아의 사진들도 삶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들의 존재 방식을 보여 준다.


여행 그 아름다운 이름을 지구 어느 곳에도 살포시 올려 둘 수 있다.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해석에 따라 우리의 발길을 불러 들일 수 있다. 아프리카 그 익숙한 이름 앞에 여행자로 교감하고 느끼고 담아 온 저자의 여행사진은 아프리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환상으로 바꿔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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