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꽤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 무레 요코

by 조윤효

삶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만의 통속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통해 특히 먼저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소리는 교훈이 담겨 있을 것 같다. 매일 마시는 공기와 손쉽게 얻어지는 음식과 생활의 물건들은 가끔 당연하다는 논리로 가치가 희석된다. 당연히 주어지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의식해야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들이 일상이 될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여유가 생길 것이다.


저자 무레 요코는 환갑을 넘었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싱글 작가이다. 그녀의 글은 담백하다. 일본 특유의 사회성이 묻어 있지만 영화 ‘About time’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살아보듯이 그녀의 노년이 나의 노년이라 생각해 보고 그 시절 느낄 수 있을 수 있는 감정을 예측해 보았다. 그리고 영화처럼 원하는 시점으로 다시 와서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지금 손에 든 이 많은 시간과 복 그리고 가족과 일이 삶 속에서 얼마나 찬란하게 함께 공존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것 같다.


그녀의 책 제목은 재치가 넘친다. 1. 잘 먹겠습니다, 음식. 2. 심플하게 삽니다, 집. 3. 어울리게 입으려고 합니다, 옷. 4. 순리대로 나이 듭니다, 건강. 5. 애써서 모으지 않습니다, 돈. 6. 싫으면 하지 않습니다, 일. 7. 소소하게 즐깁니다, 취미. 8. 적당히 거리를 둡니다, 인간관계.

제목을 통해 그녀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쉽게 상상이 된다.


음식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거창하지 않다. 집에서 글을 쓰는 작가지만 하루 삼시 세끼 꼬박꼬박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먹는다. 그녀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위한 먹이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주방 용품과 그릇에 대한 미니멀 라이프 실천은 지금 바로 내게도 필요한 사항이다. 조금씩 자주 가는 시장은 걷기를 위한 것도 있지만 무거운 식자재를 한꺼번에 들기 어려운 나이에서 온 결정이다. 또한 음식을 오래 두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물을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수분을 적당히 섭취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혀에 잇자국이 있거나 혀가장자리에 파도 무늬가 있으면 수분 과잉 증상이니 자신에 맞는 수분량을 정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집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일본인답다. 정갈한 다다미가 연상이 된다. 청소의 규칙은 몸이 피로하지 않을 정도이고, 쓰레기는 바로 버린다. 중요서류 관리법은 현명하다. 바로 보고 버리는 신속함이 필요하다. 가끔 시골집에 가면 몇 달 전에 발부된 전기세 고지서들이 소파옆에 여전히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집안에서 쓰는 물건 교체 주기를 정해두는 것도 배울 점이다. 수세미와 칫솔은 한 달에 한번 교체를 하고, 수건은 6개월 단위로 교체하는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 작게 잘라 두고 일회용으로 한 번씩 쓰고 버린다고 한다.


옷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의외다. 나이가 들면 옷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전히 옷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 전문가 조언 구하기나 즐겨 찾는 가게를 정해 두고 구입하거나 미리 계절별 코디를 해두는 그녀의 습관은 좋을 것 같다. 같은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나이에 맞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내는데 게으르지 않아 좋아 보인다. 기모노를 좋아해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그 소장한 옷의 총합은 도쿄에 집 2채 정도 살정도의 돈이라고 하니........ 그녀의 전통의상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기모노 가격은 상당히 고가라 한번 사기 위해 저금하고 큰 마음먹고 구입한다고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건강에 대한 그녀의 생활은 단순하다.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고 단지 한의원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자신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갱년기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젊은 시절 나이 든 여성을 놀렸던 일을 고백하고 잘못을 인정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그 시기별 살아내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젊음이라는 그 휘황 찬란한 보석을 온몸에 감싸고 있는데 여기에 그 무슨 액세서리나 가방이 필요할까. 그 자체가 보석처럼 빛나는 젊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고 있는 사람만이 삶의 질을 올려가는 일상을 보낼 것이다. 나이에 따랄 달라지는 목욕법도 소개한다. 42도의 물에 15분이 일반적이라면 노년에는 10분 이내로 40도 전후가 피부 손상도 없고 건강에도 이롭다고 한다.


돈에 대한 그녀의 느슨함이 좋다. 쓸 땐 즐겁게 쓰고, 큰돈은 쪼개두고 사용 하며, 세금신고는 전문가에게 의뢰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세무서 직원이 집에까지 찾아와 취미로 읽는 책과 업무용으로 읽는 책을 구분해 신고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한때, 고액 납세자 순위의 아래쪽에 자신의 이름이 등록되자 잘 알지도 못하는 지인들이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해 왔다는 말에 웃음이 난다. ‘복권에 당첨이 되면, 아는 거지가 더 무섭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일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태양아래 뜨겁게 질주하는 SUV차량이 아니라 느긋하게 강변도로를 따라 조용하게 굴러가는 세단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를 각 장르의 틈 바구니에서 서식하는 틈새 산업이라 칭하는데, 자신의 일상에 큰 지장이 없을 만큼만 받는 자재력은 노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독특한 건 그녀는 휴대폰이 없다.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집 전화겸 팩스와 컴퓨터 만이 오로지 세상의 낯선 이와 소통하는 도구인 것 같다. 그녀의 빌라에 친한 두 명의 지인 살고 있는 것도 그녀에겐 복이다. 최근 시골집 카메라에 잡히는 두 이모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의 친숙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저자도 그런 소소한 행복감을 자신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 같다.


글 쓰는 일을 하는 그녀의 집중법은 현실적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경우 청소를 하거나 집안정리나 뜨개질 그리고 기모노 속옷 바느질을 통해 뇌에게 휴식을 주고 그 과정 중에 아이디어를 얻는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경우 전철 안이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또는 우연히 마주한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고도 매력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른 분야의 지식을 축적해 가지고 있는 덕분이다.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은 몸 안에 차곡차곡 쌓아온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우연히 어떤 다른 것과 만날 때 비로소 아이디어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중장년은 취미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삶을 즐기는데 큰 차이가 있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사미센 강습을 받고 하루에 30분 정도 연습을 하되, 시간의 효율성을 위해 15분씩 두 번 연습한다고 한다. ‘한곡을 100번 켜보면 절로 내 것이 된다’라는 말을 통해 잠들어 있는 플루트를 깨울 시간임을 조용하게 스스로에게 권유해 본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씁쓸하다. 때론 남들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표현에서 가수 장윤정이나 개그맨 박수홍 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어엿한 한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것을 보지 못해서 결혼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대 어머니와 두 남매가 한편이 되었던 구조에서 저자의 대학 시절에 부모가 이혼하고 저자가 돈을 벌자 저자 대 어머니와 남동생의 대결 구조로 바뀐다. 20년 동안 그들의 지갑이 된 상태를 지속했고, 도쿄에 집을 지을 때도 3분 2 이상을 저자가 지원했지만 결국,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그 집을 차지한 남동생은 누나와 남이 된 상태다.


그녀의 엔딩 노트 이야기는 서글프다. 유서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으로서 삶의 종착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앤딩에 대한 글은 사후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는 사람의 고민을 없애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이 노년에는 더 필요함을 알 것 같다. 생로 병사는 자연의 원리다. 그 끝을 생각하며, 혹여 연명을 위해 치료할 일이 생길 때는 이를 거부하겠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단지,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보다 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라는 저자의 소박한 소망을 통해 노년의 행복과 삶의 재단법을 생각해 본다.

준비된 죽음이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그녀의 삶을 통해 다가올 내 노년을 생각해 본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시간을 누리는 현명함을 알아야 한다. 손안에 든 그 귀한 시간을 가만히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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