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단숨에 읽어 내는 책이 있기도 하고 밥물의 뜸을 들이듯 서서히 읽어가야 하는 책도 있다. 원서를 킨들로 보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어 책 읽는 양이 많아졌다. 하지만, 오랜 세월 속에 나이를 먹어 잔뜩 색이 바랜책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올 초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한 빛바란 종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읽는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던 이유 중에 하나가 책의 저자 암스트롱이 자전거 레이스에서 약물 오용에 관한 실책을 다른 책에서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기도 한다. 암스트롱의 실수가 책을 지속해서 읽어 나가도록 하는데 더 큰 걸림돌을 만들었다. 책은 어렵지 않고, 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영어 단어들을 만나는 기쁨을 주었기에 읽기로 결심하고 완독 한 책이다.
17살에 암스트롱을 낳은 그의 어머니는 2년 만에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용감하게 키워낸다. 암스트롱의 강인함이 아마 그의 어머니의 근성을 닮았을 듯하다. 10대 시절부터 자전거를 탔고, 전미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을 해서 이미 20대 초반부터 유명세를 탔던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을 준 것은 고환암(Testicular Cancer)이라는 의사의 진단이었을 것이다. 더 높은 곳에서 있는 사람이 아래를 쳐다볼 때 더 큰 아찔함이 있을 것이다. 최고 정상의 위치에서 암이라는 불청객이 왔을 때 그 좌절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I want to die at a hundred years old with American flag on my back and the the star of Texas on my helmet, after screaming down an Alpine descent on bicycle at 75 miles per hour.’ 책의 시작 부부이다. 미국국기를 몸에 덮고 시카고 상징의 별을 헬멧에 붙이고 시간당 75마일의 자전거를 타고 소리치며 맡이 하는 죽음은 세상과 결별하는 환희의 외침이 될 것이다. 그의 암은 그에게 진지하게 삶을 생각할 기회를 준 것 같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빠른 죽음을 선호하는 그의 생각이 이해가 간다.
‘My illness humbling and starkly revealing, and it forced me to survey my life with an unforgiving eye. 암이 자신의 삶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다시 한번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것이다. 16살에 최연소 삼종 경기 Triathelete우승자가 되고 오로시 운동의 기준이 승리와 패배로 명확한 선을 그었던 그의 가치관이 암을 통해 바뀌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준우승에서도 느긋하게 자신을 관대하게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Make an obstacke an opportunity, make a negative a positive’라는 말을 건네 준 암스트롱 어머니의 지혜가 가장 인상에 깊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순항만 만나는 건 아니다. 햇살이 찬란 하게 삶을 경탄하듯 쏟아지기도 하고, 어느새 먹구름이 세상을 삼킬 듯 다가와 예상치 못하는 태풍을 만나게 되는 게 삶이다. 만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 내라는 그녀의 조언이 우리에게도 보약이 되는 명언이다. 여자는 약할 수 있으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녀의 조언은 여러모로 암스트롱에게 도움이 된다. 운동을 함께 하는 선수끼리 선두 그룹에서 서로를 이끌고 우승하도록 돕는 문화가 있었나 보다. 같은 소속사의 매니저가 그에게 다른 선수의 우승을 도우라는 말은 어린 암스트롱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의 조언 데로 고개를 숙이고 앞만 보고 자신의 마지막 골라인을 달려간 그에게 찾아온 건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선사한다.
28살이 되어셔야 그의 생부라는 사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연은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텍사스 신문사에서 저자를 대신해서 생부를 찾아 소개된 사연은 당연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는 여전히 암스트롱을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심지어 그들의 두 아이들조차도 그를 가족으로 여긴다는 표현이 조금 낯설다. 심지어 저자가 16살이 된 이후로 자신의 엄마와 결혼하고 이혼했던 남자들도 같은 심정을 이야기한다. 가족이라는 끈이 유독 단단한 우리 정서와는 다소 다르지만 그의 성공이 그들 모두에게는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Why did I ride when I had cancer?암이 걸렸는데도 왜 나는 자전거를 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온다. 암이 왔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두고 치료하는 사람과 자신의 일과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 이야기는 한국과 미국 환자의 차이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암이 왔어도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전념을 했기 때문에 암을 이겨낸 건 아닐까. 고환암 중 3번째 단계는 가장 치명적이고 폐기관에 까지 전염이 되어 살아남을 확률이 희소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냈다.
‘If the dead is that I never cycle again, but I get to live, I thought.... show me the dotted line and l`ll sign.’ 죽음이 다시 살아기 위한 조건으로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한다면 서명하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암 치료 과정은 그의 밑바닥까지 흔들었다. ‘Those liquids were so destructive they could literally evaporate all of the blood in my blody. 그 액체들이 너무 파괴적이어서 말 그대로 내 피속의 모든 피를 증발 시키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이 그가 느끼는 치료의 고통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잘 나가는 선수일지라도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암을 진단받은 선수는 스폰서 회사와 소리 없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씁쓸하다. 운동도 철저하게 상업화되어 있기에 몸이 재산인 선수에게는 지원의 손길이 끊기고, 더군다나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선수가 감당할 심적, 물질적 부담은 암 만큼이나 큰 산이다.
불임 확률이 높고 고환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전 정자은행에 자신의 정자를 저장해 둔 저자에게 결혼과 아이는 어떻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인생의 평범한 과정 같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인생 발려 자인 Kik을 만나고, 암치료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택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전 연인과 헤어지고 암스트롱의 선수 생활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지원하고 응원해 주는 그녀의 배려가 아름답다. 프랑스 Tour de France대회를 위해 프랑스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직업을 바로 접고 그곳에서 프랑스 어학원에 등록하는 민첩성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 한 그녀의 성품이 이해가 간다. ‘tough, independent, sensible and unspoiled 강하고 독립적이며 예리하면서도 잘자란’ 그녀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도 그녀를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She had grown up around money- her father was an executeive of a Fourtune 500 company- she was used to taking care of herself. and didn`t expect anything to be handed to her.’ 아빠가 포춘이 정한 500대 그룹의 경영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세를 지닌 그녀의 생활 태도가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I felt safe with her.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안전한 느낌이 든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듯 하다.
훈련을 하면서 치명적인 부상에 대한 이야기는 아찔하다. 몸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들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체를 한계라는 선을 하나씩 올려내는 그의 긍정성이 놀랍다. 부상으로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지만 이미 그는 인생의 고난을 담담하게 이겨낸 그이기에 승패에 여유로움까지 느껴진다.
암을 극복한 날을 ‘my anniversary, Carpe Diem Day’라 칭하고 매년 ‘to remind us to always seize the moment. Every year we spend that day celebrating our existnece.’라고 정한 그의 현명한 기념일을 모방해 봐야겠다. 지금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삶의 가장 큰 기회이며, 의미 있게 살고자 하기 위해 특정날을 스스로 정해 하나의 점으로 의식화한다면 보다 나아지는 일상을 만들어 낼 힘을 얻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