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시를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시를 손끝으로 수를 놓듯 그려 놓은 책이다. 저자의 글은 차분하게 한 줄 한 줄 음미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다. 셈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삶의 관찰력을 시처럼 쏟아내는 힘을 보여 준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을 그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적 글들은 ‘아하’라는 감탄사를 불러 내준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삶을 관찰하게 된다. 어떤 과정을 통해 섬세한 감각을 갖게 되었을까. 한 권의 책 곳곳에 담긴 그녀의 지나온 길을 종합해 본다. 비료 수입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었던 엘리트 아버지의 여러 명의 부인중 한 명이었던 엄마를 9살 때 여윈다. 전남 보성에서 자라 중학교 때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마트를 하는 친적집에서 낮에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2시 이후부터는 그 가게에서 일했던 경력을 가졌다. 친적집 거실에 아무도 보지 않은 세계 문학 작품집들이 그녀의 유일한 상상의 통로였을 것이다. '이제 자거라'라는 말을 2~3번 듣고 잠자리에 들 만큼 그 책들이 가져다주는 삶의 위안과 사춘기 예민한 그 한복판의 외로움이 전해져 온다. 부산에서 서울로 몸을 옮기고,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성숙한 내면의 저자가 만났을 대학과 도시의 삶은 피할 곳이 없는 평야에서 만나는 폭우 같았을 것 같다.
촌사람에서 도시인으로, 일상자에서 여행자의 삶으로 전환을 이루어 낸 그녀의 삶은 여전히 섬세하게 진행이 되는 것 같다.
‘한 개인이 도시라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행복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길 바랐다.’ 저자가 책을 쓴 의도를 잘 보여 준다. 그녀 안의 깊이 잠든 외로움을 만날 때마다 그 감정을 잘 다스려 글로 써 내려갔을 저자만의 방법이 보인다.
행복이나 아픔은 도시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이 긴 울림을 준다. 그녀의 책을 사랑과 행복, 교감, 고통, 상실의 순간을 정지 화면처럼 붙잡아 보고 싶은 한 도시인의 내면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과장되지 않은 외로움, 요란하지 않은 행복감 그리고 관찰자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 침착함이 좋다.
그녀의 말처럼 문제는 어디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고,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다시금 가슴에 들어온다. 촌에서 살던 도시에서 살던, 일상인으로 살던 여행자로 살던 그 가장 근원적 원심축은 바로 자신의 마음인 것이다.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끔 잊는다. 내가 사는 일상에 누군가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올 것이고, 나도 타인의 일상 속으로 여행이라는 가방을 들고 들어간다. 한때 촌사람 었던 도시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그 택배 상자들 덕분에 모두들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고 이 만큼이나 살아오고 있음을... 시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면, 살림살이는 아주 더디게, 그리고 각박하게 풀려 갔으리라.’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시골에 계시는 엄마가 택배를 보내시면서 상자 안의 그 빈 공간에 하나라도 더 넣어 보내려는 마음과 자식들이 도시에서 조금이나마 빨리 일어서게 해주고 싶어 했던 마음을 다시 한번 느껴서 일 것이다. 엄마를 빨리 잃은 저자의 또 다른 어머니가 되어준 선배의 엄마와의 일화는 가슴이 따듯하다. 단, 한 명만이라도 자신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는 사람을 만날때 절대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택배 상자를 묶는 끈도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 하시던 시골 부모님의 일화를 통해 ‘결국, 인생은 인내심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의 문제임을 아버지는 말없이 가르쳐 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시부모님인가 아니면, 그냥 선배를 통해 마음의 부모로 삼는 부모님인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인생이란, 어느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가장 인상 깊은 글귀 중 하나다. 나를 만나는 여정으로, 삶의 구간 구간을 살아가는 자아를 관찰하고 느끼고 걸어가는 것이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들려주는 스승의 말도 좋은 조언이 된다. ‘나에게 받는 사랑이야 말로 가장 크고, 깊은 사랑이라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잘 쓰이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그 확신은 자신을 믿고 재능이 꽃필 시간을 기다려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조급해지고 작아지는 자아를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도문이 될 것 같다.
‘네가 무엇이 되지 못해도 괜찮아. 그래도 난 널 사랑해. 뭔가를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랑이 변하지 않아. 조금 늦어도 괜찮아. 가장 오래된 친구이면서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은 신비로운 이, 평생을 탐구해도 여전히 닿을 수 없는 영원의 그림자인 너를 사랑해.’ 자아를 위한 위로의 문구를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삶은 기름칠이 잘 된 기계처럼 잘 굴러갈 것 같다.
사랑할 수 있는 힘과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원리도 이해가 가고, 여행과 마음공부의 닮은 점도 공감이 간다. 후자의 공통점을 과거의 자신을 뒤로하고,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광맥을 발견하는 일이요, 원래 있었지만 어둠과 어리석음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소중한 빛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말에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을 깨닫게 된다.
내 집을 사랑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저자의 말도 이해가 간다. 긴 여행 끝에 돌아와 눕는 집에서는 엄마의 포근함과 익숙함의 향기가 주는 안도감이 있다. 도시 유목민이라는 저자의 표현도 인상 깊다.
‘우리의 감정도 하나의 인격체와 마찬가지여서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면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는 현명한 방법도 배울 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를 ‘온몸의 세포를 열어 두고 들었다’라는 표현을 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여행의 묘미가 낯선 장소에서 사람 만나는 재미도 있다는 말을 통해 또 다른 관점을 얻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자기중심적 판단으로 삶의 자를 데는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기회도 될 것 같다. 세상 일에 옳고 그른 일이란 없고 단지, 자기중심적 판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큰 혜안의 눈을 줄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당혹감이 든다. 함께 어울려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단 한 번이라고 온 세포를 열어 두고 집중하면서 대화를 한 적이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살이’라는 행복에 대한 그녀의 시적인 글도 가슴에 담아 둔다. ‘살아 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이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였다. 비 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 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세상이 이만큼 유지되는 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지 못해서이고, 행복의 정규직이 되지 못한 건 누가 방해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한 결과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행복을 위해 드릴 기도가 ‘감사합니다’라는 것을 깨닫자 더 자주 행복해졌다는 말도 실천해 봐야겠다.
없으면 탐나는 두 가지로 ‘느림과 텅 빔’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관조적 자세가 아름답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것일 수 있다.... 마음을 쉬어라. 우주는 빈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채워준다. 네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있다. 완전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인생에서 수많은 사건과 시간들 속에서 춤을 추고 싶었던 순간들을 나열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답게 공존하는 법을 알고 표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랑스 소설가 마셸 투르니가 남기고 싶은 묘비명이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 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가져다 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이라고 한다. 저자의 묘비 명인 ‘이제 안 일어나도 되는 건가?... 언제까지?’라는 말을 통해 여전히 느림과 텅 빔을 추구하지만 삶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의식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까지 가는 여정 동안 내면의 감각을 면밀하게 세우고 살아가고 싶다. 그래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찬란한 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