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음식의 말] - 레네 레제치외 다수

by 조윤효

‘모든 주방에는 이야기가 있다.’ 세련된 책 표지 위의 말이 묘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먹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낸 주방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의 아궁이는 아련한 추억이다. 아궁이 앞에 나뭇가지를 잘라 넣는 그 정겨운 흑백 기억 속에 그녀의 조용했던 성품이 떠오른다. 그 시대 그 자리에서 대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던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셨을까. 그리고 매일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You and I eat the same. 우리는 똑같이 먹는다.’ 맛있고 독특한 세계 음식을 소개하는 게 아니다. 건강과 관련된 음식의 기능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음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정서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세프, 철학자, 기자, 변호사, 요리사 등등 각각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음식과 관련된 자신의 삶이야기다.

음식이 세상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치유의 시작은 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음식을 나눌 수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노마 Noma의 세프이자 공동 창립자인 레네 레제피는 음식이 담고 있는 사회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한 가장 사실적이고 우아한 탐구가 여기 있다는 말이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글귀 같다.


빵과 고기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서양 사람들에게 역사와 전통이었을 것이다.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인 빵으로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원의 고기를 싸 먹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터키 전통빵,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등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음식은 단순히 먹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사회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다. 한 개인이 가장 필요한 것을 충족하는 행위가 곧 공동체를 만드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식사 예절’이라는 책을 쓴 저자 마거릿의 이야기다. 음식은 소통과 교감의 수단이자 지위와 관계를 규정하는 부분이 있어, 음식은 정치적이라는 마거릿의 독특한 표현도 인상 깊다. 어린 시절 엄마는 아빠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우리가 숟가락을 들 수 있도록 하셨다. 심지어 아빠가 외출 중 이실 때는 먼저 밥솥에서 밥을 떠두신 후 남은 식구의 밥을 푸셨다. 어렴풋이 아빠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자리 잡게 하셨다. ‘평범한 것들을 단조롭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공통적인 것들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들은 아주 중요하지요. 저마다 역사와 정치,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강한 영향력이 있답니다.’


센프란 시스코에는 30만 명의 이민자들이 살고 있고 이민자의 대다수가 음식점 관련 자영업자 라고 한다. 센프란시스토의 음식 관련 기관인 ‘라코시나’는 수입이 적은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기관이고, 막 요식업을 시작한 여성 이민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인연이 된 세 여인의 이야기는 묵직한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 남편의 학대를 피해 어려서 즐겨 먹던 음식으로 싱글맘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여성과 가족 공동체가 똘똘 뭉쳐 멋지게 식당을 운영하는 과정을 전달해 주는 여성 이야기다. 타국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음식은 나무의 뿌리처럼 어느 곳에서 적응할 힘을 주는 것 같다.


불을 이용한 요리는 인류의 아름다움을 가장 확실하고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고 이야기 한 과학자 아디엘 존슨의 이야기도 들을 만하고, 씨앗 하나가 전부를 지배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작가이자 변호사의 관점도 인상적이다. 잘 적응하는 곳이 고향이라 생각하는 노마오너 셰프의 관점도 만날 수 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종교 집단 ‘메노 나이트’에 대한 새로운 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소련 그리고 멕시코로 자신들의 신념 있는 삶을 허락하는 곳으로 이주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생소하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종교적 신념으로 살아가지만, 이들도 서서히 기계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고대의 슈퍼푸드라 불리인 외알밀에 대한 홍보 대사가 된 편집자이자 레스토랑 컨설턴트 젬레나린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밀이지만 글루텐 성분이 낮고, 단백질이 풍부한 외알밀을 많은 사람들이 더 재배하고 식문화로 자기 잡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이 보인다.


‘종교, 국가, 인종을 기준으로 나눈 물리적인 국경이나 정신적인 경계선을 신경 쓰지 말라.’ 국경과 문화는 변해도 인종과 종교 집단 간의 힘의 균형은 달라도 그 지역의 작물과 음식문화는 집요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책 중간에 ‘인간은 무엇이든 먹는다’는 소제목아래 소개된 서너 장의 식재료가 되는 생명체의 나열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다.

인도 기본권 판결문 내용이 인상 깊다. ‘홀로 있을 권리는 삶을 즐길 권리의 일부다. 삶을 즐길 권리는 모든 개인이 누려할 근본적인 권리다.’ 힌두교의 엄격한 식생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인종이라고 분류한 사람들은 다른 민족이라고 분류한 사람들 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라는 말은 인류의 뼈아픈 역사를 조용하게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이민의 나라 미국은 백인과 다른 외모의 ‘에스닉’한 사람들을 가까이 있는 타자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외국인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깝지만 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인종이라 분류할 때 더 큰 단절과 불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에스닉 레스토랑은 미국 내 동아시아나 남미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나폴리 빈민가에서 시작된 피자가 미국사회에서 일반화된 음식이 되었고, 프랑스 요리는 출세 지향적 요리라 칭한다고 한다. 비싸고 고급 스런 존재로 프랑스 요리가 자리를 잡았지만, 동아시아나 남미 음식은 에스닉한 음식으로 싸고 대중이 쉽게 접근하는 요리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프랑크 푸르트, 소시지, 햄버거, 감자 샐러드, 도넛은 독일 음식인지도 모르게 미국 음식 문화에 조용하게 스며들어 흠뻑 젓게 만든 음식들이라고 한다.


에스닉한 음식을 즐겨 먹는 미국 내 백인들을 ‘보헤 미안’으로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수자들의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집단의 생각이 진화적 사고로 확산되는 현상을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밈 meme’이라 표현했다. ‘전염성이 있는 생각, 즉 밈은 말이나 글로 전달되면 잊히기 쉬운 생각들을 피해 좋든 싫든 기억에 남을 만한 생각이 되어 역사에 남겨진다.’


책의 마지막 소제목인 ‘커피가 생명을 구하다’라는 편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커피를 ‘가장 시끄러우면서도 목소리가 없는 난민’으로 부르는 아서 카룰레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진 속 그의 표정이 주는 무게감을 이해하게 해 준다. 스타벅스 원두 구매 담당자이며, 르완다 출신인 그가 들려주는 1994년 100만 명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먹구름 같다. 키가 크고 피부색이 더 밝은 투치족과 작고 피부색이 검은 후투족은 프랑스와 벨기에가 점령하면서 그들을 다른 인종이라는 개념을 심어 주었다. 크고 건장한 투치족만 교육받게 하고, 고용하며 행정관리로 채용하다가 이것저것 따지는 그들을 대신해 이번에는 후투족만이 르완다에서 중요한 인종이라 정하자 두 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모든 정권을 잡은 후투족이 닥치는 대로 100만 명의 투치족을 죽인 것이다. 한국의 정치에서도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인들이 어쩌면 이리도 먼 나라 아프리카와 닮아 있을까.


세계 커피의 생산국인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했던 유럽의 강대국들은 그들에게 의무로 커피나무를 재배하게 했고, 함부로 나무를 훼손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들의 기호 식품이 낭비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커피를 마시면 죽는다는 괴담을 만들어 낸 그들의 커피처럼 시커먼 마음이 슬프다.


케냐에서 우간다로 그리고 다시 르완다 지역을 오가며 살수 밖에 없었던 아서 카룰레트의 이야기는 쓸쓸하다. 우간다만 해도 16개의 언어가 존재하고 그곳에서 4개의 아프리카의 언어를 배운 그는 운이 좋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학위를 받고 일을 하다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왔다. 여전히 갈등을 품고 있는 곳에서 투치족인 그가 커피를 재배하는 후투족을 도와 좋은 품질 개선을 위해 도움을 주는 과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자신의 친지들이 후투족에게 살인을 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투치족인 친지들의 따가운 시선과 언제든 후투족에게 살해당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그는 홀로 걷고 있다. 그의 의도데로 서로 하나된 민족으로 평화로운 삶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매개체가 커피가 되길 바래 본다. 전 인류의 어머니 땅인 아프리카에서 커피가 세계로 펴져 나가고 있다. 커피를 통해 하나가 되듯 그들의 땅에서도 하나 된 지구인으로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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