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order to Live]- 박연미
살아남기 위한 목표가 삶의 단 하나의 이유가 될 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까.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쓰고 담백한 맛이 난다. 감정을 과도하게 포장하지도 않고 사실 그대로 툭 던져 주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손 위로 누군가 뜨거운 돌을 올려놓을 때 반사적으로 놀라 돌을 던져 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그 뜨거운 돌을 참고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북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막연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는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남과 북이 나뉘고 서로 다른 사상과 체재 속에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깊다. 이제는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녀 삶의 굴곡을 따라 걷다 보면 통일이 되어도 진정한 화합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회주의 체제 이야기를 그린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현실을 그녀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북한 사회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는 신분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과거 지주였기에 삶의 제한선이 그로 하여금 조금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하게 만든다. 중국의 국경 쪽에 위치해서 몰래 물건을 들고 와서 암시장 에서 장사를 한다. 함께 일하는 여직원이 있을 정도로 규모도 조금씩 커진 것 같다. 그로 인해 저자가 어렸을 때는 굶주림에 대한 걱정은 적었으나 경찰에 잡힌 아버지가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삶은 깊은 수렁에 빠진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경찰에게 뇌물을 주기 위해 집을 떠난다. 저자와 그의 언니는 몇 개월을 어른의 도움없이 버텨 낸다. 먹을 게 없어 산의 풀뿌리까지 캐서 먹어야 했던 시절의 암담한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는다. 전기가 부족해 특정 시간만 불을 켤 수 있고,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노동하러 가는 아이들의 일상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수확철이 되면 밭에 떨어진 쌀 이삭들을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으로 일일이 줍는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가지 못하도록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몸을 수색하는 일상이 학교라는 곳이다. 거름이 부족해 학생들은 자신의 인분을 정기적으로 학교에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개를 가지고 있는 집은 쉽게 정해진 분량을 채울 수 있어서 행운이라는 말하는 그녀의 조용한 수다는 슬프기까지 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거의 없고 함께 이동하고 체제에 대한 쇠뇌교육과 김씨 부자를 찬송하는 노래로 채워지고, 수학의 경우 미국인을 비유로 ‘양키가 몇 명 있었는데, 인민 부대가 몇 명을 죽였다. 몇 명의 양키만 남았느냐?’ 같은 예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개인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고 둘씩 짝을 지어 이동하게 하고, 매일 아침 같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정해진 구호를 외치며, 주말이면 동네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의무적으로 한 가지씩 자아비판을 하게 만든다. 철저하게 집단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시스템은 개인의 생각을 집단의 목표에 맞추게 하는 사회 구조다.
강제 노동에서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로 돌아온 저자 아버지의 감옥 이야기는 유대인의 수용소 이야기와 유사하다. 하지만, 여전히 먹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북한 사회에서는 경찰에게 주는 뇌물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함을 보여준다. 경찰 또한 늘 궁핍함이 생활이라 모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 겨울이면 강이 얼어 사람들이 몰래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언니가 먼저 친구와 함께 중국으로 넘어간 것을 보고, 연미는 엄마와 함께 중국을 향한다. 물론 국경을 수비하는 병사에게 미리 뇌물을 주고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중국에서 북한 여자들은 마치 동물처럼 판매되어 농어촌으로 팔려 간다. 일인 200불에서 500불의 가치를 받기 때문에 주저 없이 탈출을 도왔던 것이다. 중개인들은 북한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게 당연하게 여기고, 13살의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저자의 어머니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눈물이 차오른다.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녀만의 처절한 이야기는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농촌으로 팔려간 어머니와 먼저 중국으로 넘어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언니, 그리고 북한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망가진 몸으로 그녀들을 기다리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쓰디쓴 향기를 품어 낸다. 중국에서 불법체류가 드러나면 다시 북으로 이송되는데, 그 이후의 삶은 강제노동과 배고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송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한 물품을 챙기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삶의 구조를 허용하는 시대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중국에서 납치도 당해 보고, 중개인에서 모든 삶의 주도권을 뺏긴 13살의 그녀는 결국, 그로 하여금 북한에 있는 아버지를 모셔오게 만들었고, 다시 어머니를 불러들이게 한다. 암이라는 질병조차 그 이름이 없던 북한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한 줌의 제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산에 뿌려진다.
결국, 중국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북한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행해진다. 그녀와 그녀 어머니의 삶의 테두리는 더욱 줄어든다. 컴퓨터 채팅으로 한국에서 북한 여성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남자 중 한 명의 도움으로 중국에 있는 선교집단과 연락이 되고 몽골로 탈출하게 된다. 그 끝도 없는 추위의 사막을 걸으며 세상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은 연미를 절망하게 한다.
몽골에서 한국 대사관과 연결되는 과정도 지루한 위험을 보여준다. 한국에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탈북민을 위한 적응프로그램들과 그 스태프들의 무미건조한 반응도 서글프다. 워낙 많은 탈북민들이 있고, 그들을 한국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야 하는 일은 한 개인에게는 우주만큼 특별하지만 그곳에 일하는 사람은 일상이기 때문이리라. 겨우 들어와 살지만 북한 억양을 가진 그녀들의 삶은 또 다른 역경의 연속이다.
필사적으로 공부를 하고 영어를 배우고 동국대에 들어가 생존의 하나로 공부를 대하는 자세를 보며 반성이 된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안락한 삶에 대한 감사함이 절로 생긴다. 그녀는 언니 영희를 찾기 위해 방송에 자신을 드러낸다. 주위의 그녀 친구들조차 탈북자인 것을 모를 정도로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녹아드는 일에 온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김 씨 부자 외에 신앙을 통한 신을 알게 되면서 만나는 정신적 충돌에 대한 이야기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결국, 그녀의 언니를 찾고 함께 생활한다. 연미에게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호주, 미국 영국에서 영어로 자신의 지나온 길을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북한에서 그녀를 주시하는 눈들에 그녀를 향하고 있고, 신변에 위험이 생길 수 있음을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적이 그녀의 주위를 배회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연미는 이야기한다. 북한에서 생각을 뺏긴 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북한 사람들에게 연미의 삶이 희망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