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위대한 철학자들의 죽음수업]- 몽테규외

by 조윤효

죽음 수업은 곧 인생 수업이다.’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더 크게 보이고,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그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삶을 더욱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을 통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야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몽테뉴, 아우렐리우스, 세네가, 키케로 그리고 톨스토이가 인식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섯 사람모두 죽음 수업이 곧 인생 수업이라고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앎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몽테뉴의 죽음 수업 중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산다’라는 소제목에서는 ‘태어난 첫날부터 그대는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사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발을 신고 채비하라는 말에 그 준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노년을 위해 저축하고, 내년 또는 그 후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삶의 준비에만 익숙해 있다. 죽음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 마치 신이 주신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 마찬가지라는 몽테규의 비유법이 명쾌하다. 아침 8시에 요절한 사람과 저녁 5시 즉 장수한 사람의 삶이 다를까? 짧은 생애를 놓고 행복과 불행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죽음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가까이에서 볼 때 보다 멀리서 볼 때 더 크게 느껴진다.’ 가장 가까이에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한 분이 떠오른다. 그녀를 통해 노년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단계임을 알것 있다. 흰두교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고 기쁘게 맞이할 때, 다음 생은 한 단계 더 높은 삶으로 환생한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윗빠사 명상은 차분하고 기쁘게 죽음을 맞이 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라는 몽테규의 말을 통해 늙음에 대한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늙어서는 안 된다. 노년은 늘 배움에 깨어 있어야 한다. 노련한 경험과 안목으로 인생을 더 깊이 있게 해석해 내는 지혜를 얻기 바란다. 생기가 넘치고 해야 할 일을 자신 있게 해내고 삶의 주도권자로서 자신답게 살아간다면 노년이 아니라 삶의 선배자로서 그 위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고 그 인생의 마지막을 변형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야기한 몽테규는 집 밖에서 말을 타고 여행하듯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한다.


타인을 위한 삶은 충분히 살았다. 이제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 자시을 위해 살자. 인생이 짧을수록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잘살고 잘 죽기 위해 공부한다는 몽테규의 죽음 수업이 매력적이다.

아울렐리우의 죽음 수업 중 ‘내가 세상에 머문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아무 차이가 없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삶의 길이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던 현재라는 것만을 잃을 뿐, 그가 소유할 수 없는 그 밖의 것은 잃을 수도 없다’라고 말한다.

오늘 나에게 임종의 순간이 다가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간주하면 앞으로 주어질 시간들은 계약에도 없는 특별 보너스처럼 간주 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사는 동안 사람들의 찬사와 비난이 칼의 양날과도 같음을 알라고 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격을 갖춘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세네카의 죽음수업 중 기억에 남는 문구들이다.

수명의 짧음이 아니라 시간 낭비가 문제다.’ 인생은 충분히 길고 제대로 잘 활용한다면 위대한 과업을 이루고 남을 정도로 충분하다는 그의 조언을 통해 지금 내 손안에 든 시간과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간 스스로를 위해 쓴 시간을 계산해 보라는 조용한 조언을 통해 다시 한번 나만을 위한 시간의 질을 생각해 보게 한다.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는데 평생이 걸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배우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죽음과 삶의 두 가지 화두는 가슴에 심어 두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죽는 법을 통해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네로의 스승이면서 그에게 죽음을 강요당했던 세네카는 이야기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가치 있는 삶과 멀어진다.’


키케로의 죽음 수업은 담백하다. 죽음의 문제는 노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노인은 이미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사람들이다. 삶이란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사람들의 터전이다. 삶은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잠깐 방문하는 여행지며, 우리는 여행자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너무나 익숙한 톨스토이의 죽음 수업도 귀한 조언들이다. 삶의 목적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모든 새는 항상 둥지를 어디에 틀어야 할지 알고 있다.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지혜롭다는 인간은 왜 새들도 알고 있는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할까?’라고 조용하게 묻는다.


새들도 알고 있는 그 목적을 과연 나는 어떻게 내 삶의 목적을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그의 비유는 익히 알려져 있다. 내가 태어날 때 나는 울고 주위의 모든 사람은 기뻐 웃었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웃음 짓고 주위의 모든 사람은 울었다. 이런 죽음을 꿈꿀 때 인생의 목적을 알고 실천한 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무거운 화두지만 제대로 살아가는 기준을 잡기 위해 필요한 주제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가 이야기한 인생의 목적을 찾고 싶다. 여전히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여행자로서 조용하게 사색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그래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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