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by 조윤효

마른땅에 몇 방울의 물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땅이 비옥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물방울이 많아질 때 비로소 땅은 비옥해지고 그 땅에 무엇인가를 심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과 그림에 대한 이해는 내게 마른땅이다. 한두 번 접하지만 그 진정한 맛을 모른다. 하지만 지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풍성해 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읽게 된다.

알지 못한 다는 것은 그 분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맛을 느끼고자 한다면 가끔 낯선 땅도 밟아야 한다.


책의 부제목인 ‘나는 클래식을 들으러 미술관에 간다’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30명의 화가가 그려낸 30점의 명화와 30명의 작곡가와 30개의 명곡이 책 전반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림과 음악을 연계해서 글을 써낸 저자의 시도가 멋지다. 자신의 삶과 존재했던 시대를 그림과 음악으로 풀어낸 화가와 작곡가들의 연계성을 책으로 써내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시간을 공부해 왔을 것 같다. 처음 만나는 그림도 있고, 익숙한 그림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도 있고, 처음 들어 보는 음악도 많았다. 책 사이사이 명화를 넣어, 관련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큐알 코드까지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해당 소주제에 해당하는 음악을 유튜브에 찾아서 틀어 놓고 읽은 독특한 읽기 체험을 했다. 책 읽는 맛이 달라서 그런지 지루할 수 있는 부분도 쉽게 넘어갔다.


자연, 시공간과 환상, 이상을 갈구하고 고독과 마주하기, 가족을 위해 노래하기, 전쟁 속에서 꽃 피우는 평화, 예술가의 사랑과 죽음이 남긴 것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위해 춤을 추는가’라는 7개의 큰 주제로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익히 알고 있던 화가나 음악가의 몰랐던 개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여인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산드로 보트첼리, 그의 ‘봄’ 그림과 여인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베토벤이 작곡한 ‘봄의 소나타’는 자연을 노래한 예술가들로 그 조화가 아름답다. 봄의 소나타를 들으며 만나는 여신들의 그림이 멋스럽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 ‘사계’와 비발디 곡 ‘사계’또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형식은 다르지만 자연을 대하고 느끼는 방식이 닮아 있다.

바흐와 헨델은 돌파리 의사 때문에 말년에 실명하는 불운을 맞이했다고 한다. 하지만, 헨델은 실명 후 9년 동안이나 작곡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네의 그림 속에서 30대에 요절한 아내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바그너가 26년간 쓰고 작곡한 16시간 연주를 해야 하는 ‘니벨룽의 반지’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영상만으로 20개가 올라 있다. 한꺼번에 듣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나씩 시간을 가지고 만나봐야 할 곡 같다.


물방울을 그린 화가 ‘김창열’의 그림은 6.25 전쟁 전 후를 겪은 사람답게 농도가 진하다. 까만 도화지 위해 단 한 방울의 물방울 그림이 마치 암흑처럼 불안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존재하기 위한 처절한 방식이 물방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타지에서 추운 겨울 폭풍우가 쏟아지는 곳에서 홀로 자신의 후원자를 기다리면서 만든 쇼팽의 ‘빗방울’ 소리도 간절함이 느껴진다.


폴 고갱은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타히티로 갔다. 44세의 그가 13살의 어린 소녀와 결혼하면서 그려낸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 속 인물들이 원주민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고갱으로부터 버림받아진 13살의 어린 신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간첩으로 오인받아 옥살이도 했던 윤이상의 ‘영상’이라는 음악은 시대의 비극을 보여 준다. 한국, 북한이 아닌 하나의 국가로 한민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그는 한때 위험한 사상가로 간주되었었다. ‘강서 대묘 사신도’와 윤이상의 음악은 분단 이전의 한민족의 정서와 기상을 담고 싶었던 소망이 보인다.


예술가들의 고독은 왠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 고독감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인 ‘밤을 새우는 사람들’의 그림과 차이코프스키의 ‘감성적인 왈츠’도 다른 듯 하지만 닮은 느낌이다.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도시의 고독으로 완성된 작품이라는 호퍼의 그림은 왠지 쓸쓸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뒷모습과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과 대화하는 정면 모습조차 고독을 담고 있는 듯하다.


남편을 잃은 여윈 여자는 과부, 부인을 여윈 남자는 홀아비, 부모를 읽은 아이를 고아라고 부르지만, 자식을 여윈 부모에 대한 용어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생각을 부른다. 자식을 여윈 부모를 ‘참척’이라 말하는데 참혹할 ‘참’과 슬픈 ‘척’ 자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 아픔이 그 어떤 아픔과는 다른 처절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는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는 그림이다. 조아키노 로시니의 ‘슬픔의 성모’ 음악과 감상은 그 애달픈 마음이 보인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그의 아들 중 한 명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이 소개되어 있는데, 세월호의 부모들이 떠올랐다.


천재적인 음악가 모차르트의 가족이야기도 새롭다. 천재작곡가인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작곡을 포기하고 자식을 후원했고, 모차르트 음악 연주를 따라다니는 엄마도 타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모차르트가 돌아가진 엄마를 그리며 만든 음악인 ‘작은 별 변주곡’은 엄마를 잃은 아이의 슬픔이 묻어난다.


플롯을 3개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음역을 자랑하는 ‘피콜로’ 연주의 새로운 맛이 신선하다.

세계 전쟁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전쟁 교향곡’은 시대에 대한 예술가들의 저항 메시지를 담고 있다. 거대한 운명의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지만, '한 명의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현실을 작품으로 승화하고, 그들의 깊은 고뇌를 담고 있기에 명화가 되고 명곡이 되는 것 같다.


음악가 리스트는 자신의 앞얼굴보다는 측면 얼굴이 더 낫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연주할 때 옆으로 앉아 연주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관객은 연주자의 앞얼굴이 아닌 측면을 보면서 연주를 듣는 관행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음악과 미술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들과 서로 연계점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음악과 미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예술은 생의 또 다른 존재 방식이다. 그 존재의 방식을 이해하고 읽어 낼 수 있는 힘은 분명 삶의 또 하나의 지혜로 자리 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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